경제미식가 김석동
대한민국 경제의 구원투수였으며 ‘대책반장’ ‘소방수’ ‘해결사’ 라는 수식어를 갖고 계신 이 분을 만나다니 꿈인가 싶었던 순간이었지만, 강의를 듣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느꼈던 것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의 뿌리깊은 자존감을 열정적으로 깨우쳐 주시고, 대한민국의 피에 녹아 있는 DNA의 우월함을 증명해 주셨다. 그리고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그 미래를 향한 응원,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알려주실 때 반짝였던 그 청년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면사랑 직원들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미래로 가는 길을 비춰주는 혜안과 열정에 벅찬 감동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김석동님은 현재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제부도 토박이 우리밀 칼국수
지금도 군침도는 제부도 칼국수 맛집, 별거 없다고 먹었는데 계속 생각나는 이유 빛 바래고 오래된 간판이 역사일까? 흔적일까? 입구부터 남다른 포스를 풍기는 외형은 맛집일 확률이 높다. 일요일은 휴무이고, 영업은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단 4시간! 그것도 살짝 찢어진 종이…. 첫인상은 강하고 국수 맛은 순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찐이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진짜 들어가도 될까 싶었지만 맛집 찾기 신공으로 찐을 알아보는 데는 틀림이 없었다. 정결한 내부는 응답하라 1988의 그때 그 느낌이 살아있는 듯 했고, 보리차가 따뜻하게 인사하며 반겨주는 정겨운 느낌이 좋다. 메뉴판은 맛집을 증명하듯 겨울과 여름 계절메뉴와 칼국수, 보리밥, 왕만두가 전부였다. 그리고, 눈에
한·중·일 나라별 제면법 소개
중국에서는 국수를 ‘친다’하고, 한국에서는 국수를 ‘뽑는다’, ‘누른다’고 하고, 일본에서는 국수를 ‘썬다’고들 한다. 왜 나라마다 국수 제면에 대한 표현이 다를까? 궁금한 이야기를 풀어 재미있는 나라별 제면법을 소개해보도록 한다. 국수를 ‘치는’ 중국 중국 진대(晋代 5-6세기)에 쓰여진 농서 [제민요술(濟民妖術)]에 수인병(水引餠)이 인류 최초로 문헌상 남아있는 국수 제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밀가루를 조미한 육즙으로 반죽하여 젓가락 굵기로 다듬어 1척 길이로 자르고 물속에서 숙성된 면을 손가락으로 얇게 눌러 부추 모양으로 만들고 냄비에 넣어 삶는 것” 이라 했다. 이 수인병이 끓는 물 속에 들어가 탕면이 되었다. 수인병이 지금의 수타면이 된 것이다. 국수가 가늘고 긴 디자인으로 그 식감과 탱탱함으로
짬뽕과 짜장면에 담긴 한·중·일 삼국교류사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햄릿의 고민이 이보다 더했을까. 점심 시간 중식당에서 고민 끝에 선택한 메뉴가 짜장면이건 짬뽕이건, 두 음식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단무지(다쿠앙)가 딸려 나온다는 거다. 왜 중식당에서 일본 절임 음식인 단무지가 나올까. 여기에는 가까이 접해 있기 때문에 서로 문화의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역사가 담겨 있다 1 일본 나가사키 ‘시나우동’에서 ‘짬뽕’이 되기까지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인 짬뽕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1800년대 말 나가사키 중식당 '시카이로(四海樓)' 창업자 천핑순(陳平順)이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돼지뼈 육수로 만든 싸고 푸짐한 면요리가 짬뽕의 시초라는 것.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1905년 나가사키 지역 신문에
국수는 귀한 몸
산문(山門)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부른다. 스님(僧)을 미소(微笑)짓게 한다는 뜻이다. 사찰에서 ‘스님, 죽 끓여드릴까요?’ 물으면 아무도 대답 않지만, ‘스님, 국수 삶아 드릴까요?’ 라고 하면 모두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고 한다. 이처럼 국수는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승소라는 말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면식문화는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고려시대 ‘조면사(造麵寺)’란 절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았다고 ‘고려사’에 나온다. 국내 최초 국수 관련 기록이다. 조면사는 강원도 춘천에 있었다. 절은 사라졌지만 절터에 남은 ‘조면사지탑’은 고려사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국수는 스님뿐 아니라 한반도 사람 누구나 미소 짓게 한 음식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 국수는 엄청나게 귀하고 비싼 음식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트러플(송로버섯)이나 캐비아, 푸아그라에 버금가는
동북아시아 누들로드
중국의 르네상스 시대, 송나라 송(宋)나라는 농업과 상업, 과학과 행정이 발달했던 옛 중국의 전성기였으며 북송과 남송을 합해 319년간(960 ~ 1279년)이어진 왕조이다. 북송의 수도인 하남성(河南省, 허난성) 개봉(開封,카이펑)은 오늘 우리가 알아볼 한·중·일 동북아시아 누들로드의 시작이다. 중국은 송대(宋代)에 부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시대에 농업의 발달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송나라 초기인 980년 610만 호, 1085년에는 1540만 호, 1102년 4550만 호, 1207년에는 8000만~9000만 호 수준으로 불어났다. 송나라는 유럽이 1800년대에 도달한 도시인구의 수준을 그 시대에 이미 만들었다. 송나라 한림학사였던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12세기 수도 개봉(開封,카이펑)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한 작품이다. 가로 5m가 넘는 규모 또한 매우 큰 그림으로서 송나라 수도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그림에 묘사된
밀가루의 세계사
밀의 시작, 메소포타미아 문명 밀은 쌀, 옥수수와 함께 인류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물로 세계인구의 30%가 밀을 주식으로 먹는다 한다. 밀은 기원전 8000~9000년 경 서아시아 지방에서 재배가 시작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캅카스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3000~4000년 경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수메르인들이 야생 밀을 심어 본격적인 밀농업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도 문명, 황하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으로 일컬어 지고 있다. 이들 고대문명은 거대한 강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었듯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이집트는 세계 최장의 나일강, 인도는 인더스강, 중국은 황하다. 그 중 밀과 가장 관련있는 고대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곳을 흐르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가 각각 페르시아만을 향하다가 하류에서 합류한다. 이 두
4000년의 가늘고 긴 면(麵)의 대장정
2005년 10월, 중국 간쑤성(甘肃省)과 칭하이성(青海省)의 경계에 위치한 중국 라지아(兰家)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가 발견되었다. 이 국수는 약 4,000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이 최초의 국수의 발생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이곳이 중국에 편입된 것은 청나라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실크로드가 위치한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경계다. 라지아의 국수는 그동안 밀=국수라는 등식에도 의문을 갖게 한 세계사적인 발굴이었다. 라지아의 국수는 기장, 특히 조(Foxtail Millet)와 수수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청동기 시대의 그 지역 사람들이 조를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국수는 매우 얇고 섬세한 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직경은 약 0.3cm, 최대 길이는 50cm에 이른다. 국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