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호르몬과 국수
기후가 변해도, 세대가 달라져도, 삶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인간은 여전히 따뜻한 국수를 앞에 두면 마음을 열게 마련이다. 이 평범한 행위 뒤에는 우리 뇌가 음식을 해석하는 매우 정교한 방식이 숨어 있다. 음식이 인간을 위로하는 방식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벌어지는 감정의 잔잔한 변화는 뇌 속의 화학적 무대에서 일어나는 작은 공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로토닌, 도파민, 그리고 따뜻한 온도가 유발하는 신경계의 안정과 활력. 우리 뇌 속에서 펼쳐지는 이 생화학적 공연을 따라가 보자. 탄수화물, 세로토닌의 문을 열다. 우리는 힘들고 마음이 복잡할 때 유독 국수가 당긴다. 부드러운 탄수화물이 주는 포만감 때문이라고
소면의 과학, 물은 소면의 생명이다
물은 소면의 생명이다 40년 전 처음 국수 공장을 차릴 때에는 국수의 생산은 기술이 뛰어난 국수 기사들이 도맡았고, 나는 공장 전반의 경영을 맡아서 운영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뛰어난 국수 기사들일수록 이직이 많았고, 그 때마다 조금씩 제면 기술을 배워야 했다. 60대가 되어 고향 거창으로 다시 내려와 내가 꿈꾸는 국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물에 대해서, 국수와 물의 관계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는 점이다. 소면의 품질과 맛은 반죽, 건조, 삶는 과정에서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과학적인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보기에 단순한 한 줄기 소면은 결국 이 물의 과학과 기술의 총체다. 물이 곧 반죽의 생명이며, 반죽의 생명이 곧 소면의 시작이다.
가늘고 긴 소면 삼국지
일제시대 대구 최초의 국수공장 소곡제면소 ©도심재생문화재단 제법 규모가 컸던 1948년 소표국수 공장 ©소표국수 홈페이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면을 즐기는 나라가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동아시아 3국이다. 면식 문화는 동아시아가 공유한 미각의 공통 언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면을 끓이고 담는 방식도 각기 다르고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소면, 일본의 소멘, 중국의 용수면은 모두 ‘가는 면’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나라별 기후와 노동의 방식,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모양으로 다양한 층위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소면, 건면 제조 100년사 한국의 ‘국수 문화’는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먹는 건조 소면(乾麵)의 역사는 사실 100년 남짓이다.
가장 만만한 국수가 품은 가장 위대한 서사
잔치국수 한 그릇에 소환된 다정한 기억들과 오감의 향연 국수는 밥보다 만만하다. 밥이 너무 모호하다면, 만만한 백반정식보다 만만하다. 그리고 냉면보다는 칼국수가 만만하다. 칼국수보다는 잔치국수가 만만하다. 그러니까 잔치국수는 그 만만한 국수들 중에서도 제일 만만한 급이다. 먹기 쉽고, 만들기 쉽고, 결정적으로 값이 싸다. 냉면 한 그릇이 만 오천 원을 넘어 이만 원에 육박하는 요즘, 이사 온 동네 시장 골목에서 난데없이 ‘잔치국수 전문 - 육 천원’이라는 문구를 맞닥뜨렸을 때의 반가움이란. 다음 순간 지금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를 따질 새도 없이 일단 가게 문을 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필 가게 안은 교회 집사님들 모임으로 왁자하다. 소란하고 열성적인 무리들 옆에서 혼자 좀 뻘쭘하긴 하지만, 잔치국수
소면의 미학_기술이 장인의 손끝을 닮아갈 때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종종 인간의 손길이 사라질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술 진보의 목표는 오히려 ‘사람을 얼마나 닮아갈 수 있는가’로 향하고 있다. 제면 기술의 진화·발전 또한 그렇다. 소면을 만드는 기계들은 장인의 손을 닮고자 발전해왔다. 장인이 날마다 반죽의 표정을 읽고 바람과 온도를 가늠하던 경험, 손끝으로 늘리고 두드리며 면의 결을 완성하던 기술을 어떻게 그대로 구현해 낼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결국 기술의 진정한 발전이란 인간의 섬세함을 이해하고 그것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소면 한 올에도 그런 이야기와 시간이 흐르고 있다. 기계로 빚는 장인의 기술 소면의 반죽은 그날의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조금만 건조해도 부러지고, 조금만 눅눅해도 흘러내린다. 소면을 반죽하는 기술이 얼마나
1300년의 시간을 짓다. 일본 수연소면 취재기
1300년 동안 역사를 이어 온 장인의 혼 「수연소면」 ‘여름에 먹는 면’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일본인에게 물어보면 80%가 “소면(そうめん)”이라고 답할 것이다. 소면의 원료는 밀가루와 소금, 재료만 보면 우동과 다를 바 없지만 소면의 특징은 그 가늘기에 있다. 일본의 농림규격(JAS)에서는 지름 1.3mm 미만의 면을 소면으로 정의한다. 산지에 따라 ‘소면’이라 불리더라도 굵기와 식감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 시코쿠 도쿠시마현의 ‘한다 소면’은 일반적인 소면보다 굵어 지름이 약 1.5mm 정도이며 보통 우리가 아는 소면은 지름 1mm 전후의 면을 말한다. 소면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수연소면(手延べそうめん)’과 ‘기계제면 소면’이다. 차이는 바로 제조 방식이다. 수연소면은 반죽을 손으로 여러 번 늘려 가늘게 만드는 전통 방식, 반면 기계제면 소면은 반죽을
혈당 스파이크를 낮추는 지중해식 식사법
맛 뿐 아니라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과학적인 미식(美食), 지중해의 식사법이 주목받고 있다. 코스요리 속 숨겨진 건강 이탈리아와 지중해 지역의 식탁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철학이 있다.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여러 코스를 나누어 즐기는 식사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전채 요리, 파스타나 리조토, 메인,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순서는 단순히 미식가를 위한 코스가 아니라, 우리 몸의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식사의 법칙과도 같다. 혈당 스파이크란 식사 직후 혈당이 급격히 상승했다가 곤두박질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피로감, 집중력 저하, 나아가 당뇨병 위험과도 직결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혈당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 식습관 관리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파스타 면수의 과학
파스타 면수의 과학 요리 유튜브나 레시피에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그 말. “면을 건진 다음, 면수 한 국자 꼭 남겨두세요.” 그저 멀겋고 뜨거운 물일 뿐인 면수를 왜 굳이 남기라고 하는 걸까? 언뜻 보면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이 한 국자가 파스타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감칠맛, 질감, 향기, 영양의 균형까지 면수 한 국자가 요리의 모든 퍼즐을 맞추는 마지막 조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탈리아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리법, ‘만테카레(Mantecare)’가 있다. ‘휘저어 거품을 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만테카레(Mantecare)는 오일 베이스 소스에 면수와 파스타를 넣고 휘저으며 소스의 농도와 질감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알리오 올리오는 올리브유에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볶고,
볼로냐, 면의 천국
볼로냐 파스타, 어디까지 먹어봤니? “오 볼로냐 사람의 피에 흐르는 고유한 부드러움이여.볼로냐 사람들은 찬사를 받을 가치가 있다.”-보카치오 『데카메론』 중에서- “볼로냐.” 이구동성이었다. 내가 2019년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인턴을 끝내고 어디로 여행을 갈지 이탈리아인 셰프와 친구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있었다. 최소 하루 12시간의 고된 노동을 견딜 희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볼로냐를 꼽았다. 의외였다.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를 놔두고 볼로냐라니.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다. 자다가도 음식 이야기라면 벌떡 일어나는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도 볼로냐는 ‘미식의 수도’로 불린단다. 이탈리아 모든 가정의 냉장고마다 꼭 있다는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의 집산지가 볼로냐다. 탈리아텔레, 라자냐 같은 파스타, 모르타델라, 프로슈토 같은 이탈리아 햄, 레드 스파클링 와인인 람부르스코도 볼로냐가 원산지다. 그해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즐기는 방법
파스타의, 파스타를 위한, 파스타에 의한 주방 이탈리아 사람들은 찬장에 별도의 공간이 있다. 오직 파스타만을 위한. 마치 오랫동안 한국에 '쌀독'이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대여섯 종류 이상의 마른 파스타가 모양 별로 있고, 어떤 집은 열 종류가 넘는 걸 갖고 있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부엌 가구를 설계할 때 이 공간을 만들면서 디자이너는 고심을 한다. 어디에 배치할지, 공간의 크기는 얼마나, 어떻게 하면 유니크하게 구성할지 애를 쓰는 것 같다. 파스타 저장 공간이라고 명시하지는 않더라도 누가 봐도 그걸 넣어두고 쓰기 좋은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다. 냉장고에도 별도의 저장칸이 있어서 생파스타가 들어 있곤 한다. 한국의 야채칸 이라고나 할까. 파스타를 손으로 밀어서 만드는 건 오랫동안 이탈리아 가정의 중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