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제주도 고기국수
제주 자연사박물관 근처에 가면 제주도 토속음식인 고기국수를 파는 식당이 10여 곳 몰려 있는 국수거리가 있다. 뭍 사람들이 말하는 돼지국수로, 제주도에서는 고기라고 하면 쇠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의미한단다. 술안주로 한 젓갈, 해장으로 한 숟갈 국수와 돼지고기.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요즘 일본의 돈코쓰 라멘이나 부산의 돼지국밥 등이 알려지면서 그리 생소하게 들리진 않는다. 제주도 사람들은 왜 돼지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을까.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의외로 구전되는 얘기도 별로 없었다. 다만 사람들마다 추측할 뿐이다. “제주도에선 원래 돼지로 하는 요리가 많았어. 큰일이 있을 때 돼지를 잡아서 큰 솥에 넣고 끓였는데 고기를 건져먹고 나면 국물만 남았지.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강원도 막국수
막국수란 ‘금방, 바로 뽑은 국수’라는 뜻이다. 또 막국수 하면 으레 춘천이 떠오른다. 하지만 막국수는 강원도 향토음식이고, 냉면처럼 이북 음식이다. 동치미 맛에 후루룩, 춘천식과 다른 ‘오리지널’ ‘오리지널’ 막국수는 비빔장 양념에 비비고 육수를 부어 먹는 춘천식과는 다르다. 육수 대신 동치미에 말아 먹는다. 양양·속초·고성 등지에선 동치미 맛으로 먹는 막국수가 흔하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전에 38선 이북 지역이었고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하다 보니 여전히 오리지널이 강세다. 지금은 군사공항으로 변한 속초 공항을 지나 진전사 방면으로 4㎞ 남짓 들어가면 ‘영광정 메밀국수’가 나온다. 3대째 막국수를 내는 집이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이라서 이름도 윤함흥인 할머니와 며느리 임정자(68)씨가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충청도 생선국수
한반도의 국수는 ‘산에서 내려왔다’는 게 정설이다. 함경도·강원도 등 산간지방에서 중국을 통해 들어온 메밀로 국수를 뽑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충청도 생선국수는 강에서 온 국수다. 생선국수는 면을 먹기 위해 육수를 낸 게 아니라 육수를 먹기 위해 국수를 말아 먹는 음식이다. 어탕국수·어죽국수로도 불리는 생선국수는 금강 상류에서 잡힌 민물고기로 육수를 낸다. 이 고기를 곰탕 끓이듯 푹 고아 육수를 만드는 것이다. 국수는 시중에서 파는 밀가루 면을 쓴다. 펄펄 뛰는 민물고기 아니면 이 맛 날까 생선국수는 금강 줄기를 따라 충북 옥천·영동, 충남 금산, 전북 무주 등지에서 주로 먹는다. 이 지역을 주민들은 칠보단장이라고 한다. 농사를 위해 (금강 상류에) 막아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정선 콧등치기 국수
‘콧등치기 국수’라는 게 있다. 강원도 정선이 내놓는 대표 음식이다. 손으로 밀어서 만든 100% 메밀 칼국수를 ‘훅’ 하고 빨아당기면 뻣뻣한 국수가락이 콧등을 한 번 툭 치고 입으로 쏙 빨려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콧등 한번 때리고 후루룩 넘어가던 그 슬픈 면발 누가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아우라지역 앞 ‘청원식당’ 방순옥(70) 할머니는 현재 정선아리랑 연구소장을 하는 진용선(46)씨가 붙였다고 했다. 방 할머니는 1988년 콧등치기 국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처음 국숫집을 낸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진씨는 손사래를 친다. “할머니 기억이 틀렸어요. 20년 전쯤 청원식당에서 처음으로 콧등치기 국수를 먹었을 때도 그렇게 불렀어요. 나는 단지 재밌는 이름이기에 시로 쓰고, ‘월간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전라도 팥칼국수
“전라도에서는 복(伏)날에 팥칼국수를 먹는다.” 푹푹 찌는 날 더 시원하다 이런 ‘믿거나 말거나’식 제보 하나 믿고, 초복이었던 14일 열차에 몸을 실었다. 벌교로 가기 위함이었다. ‘벌교 장날에 가면 50년째 팥칼국수를 파는 할머니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마침 이날은 벌교읍에 5일 장이 서는 날이었다. 세 번이나 기차를 갈아타고 6시간 만에 도착한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다. 또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벌교장은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전국의 10대 5일장’ 중 한 곳이었지만 이미 지금은 그때의 번화함은 없다. 그 시장에서 전봇대 옆의 담벼락 밑에 있는 팥칼국수 할머니의 ‘좌판’을 발견했다. 테이블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안한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평양냉면
“냉면 얘긴 잘못 꺼냈다가 몰매 맞는다.” 음식 전문지에서 10여 년 가까이 일했다는 한 전직 기자의 말이다. 전문가·일반인 할 것 없이 냉면을 놓고 벌이는 논란이 뜨겁기 때문이다. 이는 냉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각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추와 무에 물을 많이 부은 김칫국에 잘사는 집은 고기를 삶아 붓고, 못사는 집은 동태를 삶아 육수를 낸 뒤 섞었지” 동치미 대신 고기 국물 … 희미해진 오리지널 ‘평양의 맛’ 논란의 진원지는 서울이다. 그런데 서울냉면은 없다. 논란의 중심은 평양냉면이다. 시원한 육수에 쫄깃한 메밀 면을 말아먹는 그 냉면이다. 그런데 왜 평양냉면이 이렇게 서울에 와서 자리를 깔고 논란을 벌이는 것일까. 그 연유를 찾아가 봤다.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부산 밀면
부산 밀면은 찬 국수다. 중면 굵기의 국수에 차게 식힌 육수를 부어 먹는다. 육수는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집은 김치국물을, 또 다른 집들은 쇠고기 육수나 돼지뼈 육수를 부어주기도 한다. 국수도 어느 집은 쫄깃하고, 또 어느 집은 덜 쫄깃하기도 하다. 이렇게 집마다 맛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부산 밀면이라고 부른다. “메밀이나 고구마 전분 구하기 어려워 당시 흔했던 미군부대 구호품인 밀가루로 면발 내고 사골 고아 육수 만들었죠” 6·25 때 낙동강 건넜어요, 냉면과는 사촌뻘이지요 이 국수는 부산 향토 음식이지만 뿌리 깊은 전통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6·25 전쟁 통에 피란민과 섞여 들어온 음식이다. 이북에서 온 피란민들이 그리운 고향 음식, 냉면을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경기도 연천 ‘망향비빔국수’
코끝 쨍한 그 국물 … 예비역들 다시 부대 앞으로 군인 월급날이면 120인분 무쳐 머리에 이고 중대별 배달도 무·오이·고추를 항아리에서 오래 숙성시켜 코끝 톡 쏘는 맛 남자들의 악몽 중 최고봉은 ‘군에 다시 입대하는 꿈’이다. 그만큼 군생활이란 ‘대한민국 사나이 인생’의 가장 큰 고비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미 제대한 지 수십 년이 된 예비역 장병들을 부대 앞으로 불러모으는 국숫집이 있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육군 5사단 신병교육대 앞에 있는 ‘망향비빔국수’다. 하사관 교육대부터 지금의 5사단까지 부대가 8번 바뀐 40년 동안 그 자리에서 국수를 비벼내는 집이다. 연천·전곡 일대의 장병들이 주 고객인 터라 ‘군대국수’라고도 불린다. 주말이면 이 일대에서 군생활을 한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진주냉면
진주는 평양과 함께 조선시대 교방문화의 양대 꽃이었다. 이 두 도시의 대표음식이 ‘냉면’인 것도 비슷하다. 당시 한양서 내려온 한량들이 유곽의 기생들과 어울려 입가심으로 먹었던 대표적인 음식이 ‘진주냉면’이다. 60여 년 전부터 진주의 나무전거리(현 중앙시장)에서 냉면을 냈다는 황덕이(80) 할머니는 “서울 돈쟁이들이 냉면 먹으러 차를 몰고 진주까지 왔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해물 육수에 쇠고기 육전 꾸미 “서울에 분점 안 내 … 와서 드세요” 진주냉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구한말 관아에서 일하던 숙수들이 저잣거리로 나와 지금의 중앙시장에 가게를 내면서 대중화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한국전쟁 무렵까지 나무전거리 냉면집은 수정냉면·은하냉면·평화냉면·부산식육식당 등 6~7곳이나 됐다. 외식 장소로 고급 요정이나 장터국밥 정도였던 시절 이곳엔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넓고 깊은 국수 스펙트럼, 은어도 재료가 된다
‘음식은 메모리를 먹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추억하고 싶어 음식을 먹거나 친근해서 습관적으로 먹는다. 우리 음식 문화에서 국수는 또 그렇게 친근한 메모리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왕후장상에서 필부까지 계급을 초월하고 시대를 관통해 사랑 받아온 음식이 국수다. 기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걸 정설로 여긴다. 그 길을 따라 전국 팔도 곳곳에서 치대고 뽑고 삶아냈던 ‘한국의 국수길’을 찾아간다. 한반도 국수 재료는 원래 메밀이었다. 밀가루보다 구하기가 쉬웠던 때문이다. 고려 때 중국에서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으나 귀한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를 썼다는 기록이 전한다. 유학자 이시명의 아내 안동 장씨의 요리책 『음식디미방』(1670년)에선 메밀을 으뜸가는 국수 재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