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기자의 면(麵) 이야기 : 독특한 향을 지닌 베트남 쌀국수에 대하여
쌀국수는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 지역에서 밥만큼이자 즐겨 먹는 주식이다. 쌀국수를 만들려면 우선 쌀을 곱게 가루 내야 한다. 쌀가루를 물과 섞어 우유처럼 뽀얀 쌀가룻물을 만들어 뜨겁게 가열한 금속판 위에 전 부치듯 얇게 편다. 꾸둑꾸둑 마르면 판에서 떼어내 차곡차곡 쌓아 가늘게 썬다. 냉면처럼 가는 것부터 칼국수 정도 굵기, 이탈리아 라사냐(lasagna)처럼 넒적한 것까지 면발이 다양하다. 쌀국수의 대명사, 베트남 퍼보 한국에서는 쌀국수라고 하면 베트남 퍼(pở), 더 정확히는 소고기 국물에 만 ‘퍼보(phở Bò)’를 흔히 떠올린다. ‘포’라고 더 널리 불리지만, 현지 발음은 퍼에 가깝다. 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다. 프랑스 점령 시기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채소와 고기를 푹 곤 프랑스 음식
잔치국수, 전통 음식일까
원조 밀가루가 음식문화 혁명 이끌고 국수 시장의 성장에 기여…근대식 국수 제조공장도 일제시대에야 도입됐다국수는 밀가루 문명에서 크게 번성했지만, 밀(가루)이 거의 나지 않는 한반도에서 대표적 음식 문화가 되는 특이한 역사의 아이러니도 낳았다.다양하게 요리되는 수많은 국수는 이제 우리 음식 문화의 대세를 이루었다. 몇 해 전 KBS의 이욱정 프로듀서(PD)가 제작한 <누들로드>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를 불러온 적이 있다. 음식을 다룬 프로그램으로는 이색적일 만큼 스케일이 컸고, 주제도 특이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란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관심사가 될 수 있지만, ‘일개’ 국수를 다루면서 그것도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급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관심을 끌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는 여세를 몰아 올해 <요리인류>라는 <누들로드>의 확장판이랄까, 완성판이랄까 하여튼
미식의 본고장 ‘에밀리아로마냐’를 가다
진짜 ‘볼로네제 파스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면이 입에 착착 달라붙고, 씹으면 고소한 계란과 짭짤하고도감칠맛 나는 파르메산 치즈의 폭탄이 이어진다.남북 2천㎞에 달하는 지형이 지방마다 고유의 볼거리·먹거리 만들어내…세계 부호와 유명 배우들이 찾는 최고의 육가공품 제조 사진/박찬일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이 미식의 본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은 데는 풍부한 물과 초지 등 지역·환경적 요인이 컸다. 이 지방의 명물인 파스타 프레스카는 국수가 아닌 만두 형태로도 요리된다. 필자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느낀 것이지만 한국인 관광객들은 어떤 정형화된 관광 패턴을 갖고 있었다. 로마에서 며칠간 숙박하면서 로마와 바티칸을 둘러본다. 당일치기로 나폴리와 폼페이(간혹 카프리 섬 포함) 유적지를 본 후 역시 당일치기로 피렌체를 보는 식이었다. 더러는 밀라노를
지중해식 해물요리의 진미
홍합은 토종 아니라 유럽에서 왔다유럽의 식생활 문화는 종교적 영향 커…지중해를 낀 지형 탓에 해물 먹거리 ‘풍부’ [사진] 스파게티는 다양한 재료로 요리된다. 지중해를 끼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해물 스파게티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이탈리아 식당 주방장을 한 지도 13년이 흘렀다. 한국 외식업의 급격한 성장세에 투신한 세월이었다. 청담동과 논현동, 가로수길, 홍대 앞 같은 첨단 유행지역이 그 무대였다. 재미있게도 한국인이 이탈리아 식당에 거는 기대랄까, 선입견이 있다. ‘마늘을 많이 쓰고 매우며 해물요리가 많다’.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무슨 소리인가. 그건 이탈리아 요리가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이다. 국토는 아래위로 길고 통일된
김성윤 기자의 면(麵) 이야기 : 일본인도 푹 빠진 라멘의 매력
라멘은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일본요리라고 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담백하면서도 깔끔한 음식과는 전혀 다르다. 국물은 기름지고 농후하다. 국수는 매끄럽고 쫄깃하다. 인간의 미각을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위험하지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치명적 매력의 팜므파탈(femme fatale) 같다. 재료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담백한 맛을 추구해온 일본요리에서 어떻게 이토록 어두운 매력을 지닌 이단아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평생 반듯하게 살았던 모범생 같은 일본인들이었기에 팜므파탈의 한 번 유혹에 어처구니 없이 쉽게 무너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중국 산시성에서 ‘라몐’으로 태어나다 일본 라멘은 중국이 고향이지만 이국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짜장면과 비슷하다. 라멘의 고향은 중국 산시성(陝西省)이다. 산시성은 국수의 종주국을 자부하는 중국에서도 ‘국수의 고향’이라 불린다. 국수 종류가
유지상 기자(前 중앙일보 음식전문 기자)의 맛탐험 세계 名국수 : 밥만 먹고 못산다, 후루룩 대한민국
밥만 먹고 못산다, 후루룩 대한민국누구에게나 친숙한 우리네 국수 이야기 지난달 27일 오후 1시쯤 함흥냉면 골목으로 불리는 서울 오장동 거리, '흥남집', '함흥냉면집', '신창면옥' 등 냉면집 세곳 모두 북새통이다. 집집마다 현관에는 냉면을 먹고 나오는 사람과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뒤엉켜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다. 간신히 안으로 헤집고 들어가 보니 종업원들이 냉면 쟁반을 들고 이리저리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저렇게 바삐 움직이다가 혹시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래도 냉면을 받아들고 열심히 "쭈욱 쭈욱" 면발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만족스러운 듯하다. "우리 식구들은 워낙 국수를 좋아해 일주일에 한두번은 냉면이나 칼국수로 식사를 합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가족 나들이 삼아 별식으로 즐기기도 하지요." 오랜만에 짬을 내
하영인의 ‘혀끝에 척’
파스타의 왕좌 '스파게티' [프라임경제] 단지 가만히 있을 뿐인데 괜히 공허한 마음이 든다. 입이 심심해 주변을 둘러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먹는 게 곧 쉬는 것이자 낙(樂). 필자 포함,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우리 혀끝을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탐구해본다. '소스가 듬뿍 묻은 면을 포크로 돌돌 말아 한입에 쏙…' 먹고 싶지만, 한입 크기 양 조절에 실패하기 십상인 스파게티(Spaghetti). 사실 필자는 스파게티 면의 뚝뚝 끊어지는 식감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맛깔나게 생긴 비주얼과 브로콜리부터 베이컨 등이 담긴 진한 소스의 맛을 선호하는 편이다. ▲ 시선을 홀리는 아름다운 스파게티들. 스파게티는 100% 경질밀(단단한 밀)과 달걀을 이용해 만들어졌으며, 끓는 물에서 건져낸 뒤에도 잘
김성윤 기자의 면(麵) 이야기 : 일본인들의 소울푸드, 우동
‘뭐 이런 동네가 있나?, 일본 가가와(香川縣)현에 갔을 때 들었던 이런 의문이다. 논 한가운데 우동집이 태연하게 서 있고, 좁은 길을 따라 30여 분을 산속으로 들어가면 우동가게가 갑자기 나타난다. 산을 넘어도 우동집, 개천을 건너도 우동집이다. 시골 깡촌 출신으로 일본열도를 장악한 사누키 우동 가가와현은 사누키(讚岐·さぬき라고도 쓴다) 우동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사누키는 가가와현의 옛 이름. 오사카에서 세토내해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2개 넘고 고속도로를 3시간 달려야 닿는 시코쿠(四國)섬에 있다. 인구가 10만여 명에 불과한, 그야말로 ‘깡촌’이다. 하지만 가가와현에서 소비되는 밀가루 양은 일본 최고 수준이다. 우동 덕분이다. 이곳 사람들, 중독됐나 싶을 정도로 우동을 먹어댄다. 1년 동안 먹는 우동의 양이 일본 평균보다 7배나 더 많다. 아침에도 우동, 점심에도 우동,
김성윤 기자의 한국의 면(麵) 이야기 : 귀한 손님을 대접하던 안동국시
후루룩 빨아올린 면발이 매끄럽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소양지와 사태, 사골로 끓인 국물은 구수하면서도 시원하다. 미소가 입가에 스르르 번진다. 법가에서는 국수를 ‘스님을 미소짓게 만든다’는 뜻으로 승소라 부른다. 스님이 아닌 범인(凡人)도 매혹시키는 음식, 칼국수다. 서울 혜화동 일대에는 칼국수 명가(名家)가 유난히 많다. 이 동네 칼국수집들은 칼국수 면발이 얇고 가늘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호(商號)에 이름에 표준어 국수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 ‘국시’가 들어가는 집이 많다는 공통점도 있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혜화동 칼국수의 뿌리는 경북 그중에서도 안동”이라고 말했다. 이곳뿐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들어가 칼국수 만드는 법을 가르친 ‘소호정’도 안동국시, 즉 안동식 칼국수를 계승했음을 내세운다. 안동 칼국수는 어떻게 서울로 전해졌을까. 안동국수는 ’건진국수’와 ‘누름국수’ 두 가지 스타일 경북
김성윤 기자의 한국의 면(麵) 이야기 : 은은한 메밀의 향이 느껴지는 ‘막국수’
유구한 한국 식문화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국수는 메밀로 만드는 음식이었다. 밀가루 국수가 대세가 된 건 비교적 최근 그러니까 1960년대부터로 약 50년에 불과하다.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밀은 덥고 습한 여름과 매섭게 추운 겨울을 가진 한반도 자연환경과 잘 맞지 않았고 많이 재배되지 않았다. 귀하고 비싸서 ‘금가루’라고 불릴 정도였다. 6·25가 끝나고 미국이 밀가루를 원조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밀가루가 흔하고 싸졌다. 반면 기후나 토질을 그리 따지지 않는 ‘성격 좋은’ 메밀은 한반도 전역에서 잘 자랐고,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주로 메밀로 뽑은 국수를 즐겼다. 메밀로 만든 국수 중 대표적인 것이 막국수와 평양냉면이다. 지금이야 두 국수가 별개로 구분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평양의 명물 냉면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