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면국지
우리동네 면국지 면 요리를 좋아한다. 서정’면’이란 별명까지 얻은 적도 있다. 그러니 동네에서 면 요리 잘하는 집을 찾는 건, 집에서 가까운 마트나 병원을 알아두는 것만큼이나 필수적인 행위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철공소 골목이 집 주변을 감싸고 있다. 요즘 에야 철공소 사이사이 들어선 술집, 맛집, 카페들 덕에 ‘뜬 동네’가 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저 평범한 동네였다. 그 평범한 동네에 나름 자부할 만한 면 맛집이 있어 다행이다. 그중 세 곳에 대한 얘기를 풀어볼까 한다. 꼽고 보니 한국, 중국, 일본 면 요리가 하나 씩이다. 이름하여 ‘우리 동네 한중일 면국지’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한 면 요리는 내 기억에 칼국수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먹는 겨울면
중국에서 먹는 겨울면 겨울이 되면 자연스럽게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된다.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손끝을 녹이고, 속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 중 국수는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 국수는 단순히 먹는 음식을 넘어,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 있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철, 중국 사람들에게 국수 한 그릇은 따뜻함과 동시에 위로를 주는 음식이다. 북방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뜨끈한 국물, 허난성 농부들의 보양식, 쓰촨성의 얼얼한 매운맛은 각각의 지역적 특성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한 그릇의 면요리에는 지역의 고유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북방의 차가운
일본에서 먹는 겨울면
일본에서 먹는 겨울면 겨울은 면 요리의 최대 수요 시기다. 여름에도 차가운 소멘이나 냉면이 인기가 있지만, 겨울에는 따뜻한 우동, 소바, 라면의 수요가 증가하고 생면이나 삶은 면, 즉석 면의 소비가 늘어난다. 일본의 면 제조업체 중에는 창업 당시에 얼음 제조업을 했다. 여름에는 얼음을 만들고 겨울에는 얼음 수요가 없어지자 우동을 만들었다는 곳도 있다. 이는 냉장고나 냉동고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다. 냉장고나 전자레인지가 없던 시절부터 겨울에는 따뜻한 면 요리가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겨울 면 요리의 대표 주자인 「나베야키 우동」 일반적인 우동은 삶은 우동에 따뜻한 국물을 부어 먹는 방식인데 반해 나베야키 우동은 여러 가지 재료와 면을 1인용
한국에서 먹는 겨울면
한국에서 먹는 겨울면 한국의 겨울은 매섭다. 한국의 여름은 뜨겁고 무덥기로 유명하며 이어지는 겨울 또한 만만치 않다. 그 뜨거운 여름 우리가 냉면으로 더위를 식히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겨울이 닥치면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국숫집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날씨가 아무리 춥다 한들 뜨거운 국물에 말아먹는 한 그릇 국수는 그 추위를 한껏 덜어준다. 한국인의 서민 메뉴 우동 일본의 우동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동은 근대화 시기를 거쳐 6·25 이후 밀가루가 대량으로 공급된 이후 에야 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식단이 되었다. 서민들의 한 끼 식사의 공간인 ‘포장마차’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일 중 국물 삼국지
한 일 중 국물 삼국지 한민족은 국물의 민족이다. 찬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유일한 민족이다. 냉면, 밀면, 쫄면은 물론이고 소스에 찍어 먹는 소바도 한국인은 쯔유 국물에 말아먹는다. 국수와 국물의 만남은 동아시아 면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한 일 중의 국물 면식 문화는 깊게 연관되어 있다. 중국은 닭과 돼지와 건어물을, 일본은 해산물을 기본으로 돼지를, 한국은 소와 돼지, 나물, 된장, 해산물을 고르게 사용해 국물을 낸다. 국물의 탄생 중국에서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철학의 근간이다. 중국 철학의 기본을 이루는 오행(五行)과 오미(五味)는 한 짝으로 움직이는데 오행과 오미의 근간은 조화다. 오미의 완성형 음식으로 국이 등장한다. 다른 여러 성질들을 한데 녹여 먹는데 국은 최적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두리반 앞에 엎드린 나의 칼국수
넉넉하고 따뜻한, 추억을 일깨우는 ‘칼국수’ 국수를 먹어야지 생각하니 마음이 넉넉해지고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 칼국수 두 개요, 주문을 하고 나니 속이 따듯해지면서 엄마의 두리반 앞에 엎드린 내가 보인다 첫눈이라도 오실 것 같은 날 가난했던 엄마를 만나러, 간이 조금씩 세지는 할머니 칼국수 먹으러 간다 -권혁소 시 <할머니 칼국수> (『우리가 너무 가엾다』, 2019, 삶창) 전문 생각과 마음 날씨처럼 마음이 을씨년스럽다. 호주머니는 가볍고 발걸음은 무겁다. 그런 날 배까지 헛헛하면 올깍 서러워 지기 십상이다. ‘국수를 먹어야지!’ 가만한 생각만으로 마음이 넉넉해지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그토록 소박한 행복에 들뜬 시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여기 칼국수 두
칼국수와 함께 춤을
©시니어조선 [권순홍의 맛집] 경기 하남 - 팔당 원조칼제비칼국수 우리는 살면서 가끔 햄릿이 되어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닥칠 때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고민의 순간은 주로 면요리 앞에서 아닐까? 예를 들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그것은 영원한 숙제이며 물냉이냐 비냉이냐 또한 여름마다 풀어야 할 문제와도 같은 것이다. 칼국수를 먹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고민에 빠진다. 칼국수와 만두, 칼국수와 수제비는 고전적인 형태의 고민이며 요즘엔 비빔칼국수냐 국물칼국수냐 그 문제 또한 쉽게 풀 수 없는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럴 때 고객 맞춤형 정답을 내놓는 식당들이 생기며 새로운 방식의 메뉴들이 생겨났는데, 단순히 반반 섞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물 안에서
안동의 건진국수와 누름국수
안동의 종가에서 만드는 안동국수. 제사 때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는 음식이다. © 경북일보 안동국수의 면은 콩가루와 밀가루의 합작품이다. 안동지역은 콩 재배 면적이 1890 헥타르(2022년 기준, 농업기술센터 자료)에 이른다. 토질과 배수가 뛰어나 옛날부터 우수한 품질의 콩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바로 안동이다. 그래서 안동국수에는 콩가루가 들어간다. 콩가루가 들어간 반죽은 일반 밀가루로만 된 반죽보다 경도가 강해 뭉치고 밀 때 힘이 많이 들어가고 어렵다. 또한 밀고 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 밀가루 반죽이 말 그대로 종잇장처럼 얇게 펼친다. 안동국수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안동국수는 경상도 방언으로 국수를 ‘국시’라고 해서 안동국시라고도 부른다. 다만 따뜻한 국물로 내놓으면 (안동)국시
옛 문헌에 실린 칼국수
성종대왕의 삼남인 안양군(安陽君)의 현손(玄孫) 옥담 이응희. 농사를 짓는 틈틈이 책을 읽고 시를 짓는 것을 낙으로 삼아 지냈던 옥담이 평생 수리산 아래에 살면서 향촌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글을 담았다. 언제부터 먹었을까? 어떻게 먹었을까? 어느 순간에 먹었을까? 우리가 지금 즐겨먹는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날 때 우리는 옛 문헌을 찾고 음식의 여정을 생각한다. 칼국수에 대한 궁금증도 다르지 않다. 조선 중기의 선비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음식에 관한 한시를 많이 지었다. 그가 지은 『옥담시집(玉潭詩集)』에는 ‘면(麵, 국수)’이란 제목의 한시가 실렸다. “어떤 사람이 국수를 만들었나(何人作麵食), 좋은 맛은 무엇보다도 매우 깊네(佳味最深長). 반죽을 눌러 실처럼 가늘게 천가락을 뽑고(按罷千絲細), 칼로 실처럼 썰어 만 가락을
칼국수의 변주곡
할머니의 칼국수부터 브랜드 칼국수까지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 밀 수확기인 여름 즈음에나 맛볼 수 있었던 칼국수는 귀한 별미 요리였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밀가루가 흔해 지면서 어느 집에서나 언제든지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식단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이들이 과거 어머니가 별미로 만들어 주시던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칼국수는 여름 음식이었는데 북쪽 지방에서는 추운 겨울에 찬 냉면을 먹고 남쪽 지방에서는 더운 여름에 뜨거운 칼국수를 먹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라 하겠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홍두깨 방망이라 불리는 칼국수 밀대가 하나씩은 있었다. 방안 아랫목에 앉아서 밀가루를 반죽해 넓게 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얼굴에 밀가루 묻혀보던 시절, 부엌에서 멸치국물 냄새가 솔솔 풍기는 그 따스함이 생각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