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경기도 연천 ‘망향비빔국수’
코끝 쨍한 그 국물 … 예비역들 다시 부대 앞으로 군인 월급날이면 120인분 무쳐 머리에 이고 중대별 배달도 무·오이·고추를 항아리에서 오래 숙성시켜 코끝 톡 쏘는 맛 남자들의 악몽 중 최고봉은 ‘군에 다시 입대하는 꿈’이다. 그만큼 군생활이란 ‘대한민국 사나이 인생’의 가장 큰 고비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미 제대한 지 수십 년이 된 예비역 장병들을 부대 앞으로 불러모으는 국숫집이 있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육군 5사단 신병교육대 앞에 있는 ‘망향비빔국수’다. 하사관 교육대부터 지금의 5사단까지 부대가 8번 바뀐 40년 동안 그 자리에서 국수를 비벼내는 집이다. 연천·전곡 일대의 장병들이 주 고객인 터라 ‘군대국수’라고도 불린다. 주말이면 이 일대에서 군생활을 한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진주냉면
진주는 평양과 함께 조선시대 교방문화의 양대 꽃이었다. 이 두 도시의 대표음식이 ‘냉면’인 것도 비슷하다. 당시 한양서 내려온 한량들이 유곽의 기생들과 어울려 입가심으로 먹었던 대표적인 음식이 ‘진주냉면’이다. 60여 년 전부터 진주의 나무전거리(현 중앙시장)에서 냉면을 냈다는 황덕이(80) 할머니는 “서울 돈쟁이들이 냉면 먹으러 차를 몰고 진주까지 왔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해물 육수에 쇠고기 육전 꾸미 “서울에 분점 안 내 … 와서 드세요” 진주냉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구한말 관아에서 일하던 숙수들이 저잣거리로 나와 지금의 중앙시장에 가게를 내면서 대중화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한국전쟁 무렵까지 나무전거리 냉면집은 수정냉면·은하냉면·평화냉면·부산식육식당 등 6~7곳이나 됐다. 외식 장소로 고급 요정이나 장터국밥 정도였던 시절 이곳엔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넓고 깊은 국수 스펙트럼, 은어도 재료가 된다
‘음식은 메모리를 먹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추억하고 싶어 음식을 먹거나 친근해서 습관적으로 먹는다. 우리 음식 문화에서 국수는 또 그렇게 친근한 메모리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왕후장상에서 필부까지 계급을 초월하고 시대를 관통해 사랑 받아온 음식이 국수다. 기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걸 정설로 여긴다. 그 길을 따라 전국 팔도 곳곳에서 치대고 뽑고 삶아냈던 ‘한국의 국수길’을 찾아간다. 한반도 국수 재료는 원래 메밀이었다. 밀가루보다 구하기가 쉬웠던 때문이다. 고려 때 중국에서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웠으나 귀한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를 썼다는 기록이 전한다. 유학자 이시명의 아내 안동 장씨의 요리책 『음식디미방』(1670년)에선 메밀을 으뜸가는 국수 재료로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 안동 건진국수
안동 건진국수는 대표적인 ‘안동 양반님네’ 음식이다. ‘수중군자(水中君子)’로 불리는 기품 있는 생선인 은어를 달여 낸 육수에 가늘디 가는 국수를 말고 실고추, 애호박, 파, 계란 흰자위와 노른자위 등 오색 고명을 얹는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맛도 맛이려니와 쓰인 재료와 말아 내놓는 국수의 품위가 남다른 ‘귀족국수’다. 은어 육수에 콩 섞은 면발 … 기품 있는 양반댁 별미 건진국수는 헛제사밥·간고등어·식혜와 함께 안동의 4대 향토음식으로 꼽힌다. 한데 안동에서도 이 국수를 맛볼 데가 없다. 김준식 안동문화원장은 “20년쯤 전에는 간혹 파는 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가를 맞출 수 없어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 그나마 건진국수의 맥을 이어가는 곳은
“농사 마친 겨울, 남북 모두 막국수로 시름 달래” (천지일보)
반죽을 ‘방금’ 눌러 뽑은 국수농촌서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동치미에 마는 방식 북한 동일 막국수체험박물관에서 막국수 면을 뽑아내고 있는 모습ⓒ천지일보(뉴스천지) 2018.5.12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막국수의 ‘막’은 ‘방금’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반죽을 방금 눌러 뽑은 국수가 막국수죠.”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막국수. 하지만 그 뜻을 모르고 먹는 이가 대부분이다.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 박정숙 해설사는 역사를 알면 막국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해설사는 “막국수는 메밀로 만드는데 면이 너무 연해 뚝뚝 끊어지는 성질이 있다”라며 “과거에는 거칠게 빻아진 상태의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바로 내려서 동치미에 말아서 먹었다”고 설명했다. 막국수는 원래 겨울철에만 먹었다고 한다. 반죽을 직접 눌러서 만들다 보니
한겨레-국수주의자 박찬일 국숫발은 돌고 돈다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에 중국의 면을 전해주었다는 얘기는 설에 불과하다. 이탈리아가 면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납작한 ‘라자냐’를 먹은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고, 자연스레 면이 생겨났을 것이다. 넙데데한 반죽을 보면, 누구든지 집어 뜯거나(수제비), 칼로 가늘게 썰(국수)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마르코 폴로 이전에 이미 이탈리아 반도에 국수가 있었다는 문헌도 있으니,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고유한 국수 문화였을 것이다. 아랍에서 전래되었든 자생적으로 생겼든 말이다. 국수는 정말 재미있는 음식이다. 빵이나 국수는 다 같은 밀가루로 만든다. 그런데 빵이란 것은 원래 밋밋한 가루이던 밀이 물과 이스트를 만나 발효되어 부풀면서 입체감을 갖는다. 반면 국수는 평면적이다. 이는 어쩌면 동서양을 가르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경향신문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메밀시대”
올해처럼 냉면이 화제가 된 적이 드물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오던 ‘노포’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냉면집들이 속속 등장했다. 냉면에 대한 새로운 시장층이 생겼다. 젊은이들이다. ‘밍밍하기만 한’ 평양냉면 육수의 맛을 음미하고 이해하려는 세대가 생겨난 것이다.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서 ‘냉부심’(평양냉면의 맛을 안다는 자부심)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냉부심(?)의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특유의 육수 맛을 감지하는 것이다. 매콤 새콤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알 듯 모를 듯한 풍미를 사랑하는 능력이다. 시쳇말로 ‘행주 빤 물’ 같다는 혹평의 그 육수가 맛있어지는 단계다. 다른 하나는 메밀 함량이 높은 면에 대한 애호다. 그동안 메밀 값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평양냉면이라고 이름붙이고 실은 전분과 밀가루로 만든 면에 메밀은 넣는 둥
박찬일 셰프가 들려주는 세계 누들 스토리 : 수타면
알고 보면 다 같은 형제, 중국의 수타, 일본의 족타, 한국의 칼국수, 이탈리아의 임파스토 아 마노. 라면은 원래 수타면이었다 요즘도 더러 볼 수 있지만, 중국집에 가서 탁자에 앉으면 귀가 울리도록 큰소리가 들렸다. 목청 좋은 주인이 주방에 넣는 알 수 없는 중국어 발음의 주문, 그리고 쿵쿵 울리는 거대한 소음이었다. 소음이라기보다, 마음을 밑에서 울려주는 묵직한 반복음이라고 해야겠다. 바로 반죽 치는 소리였다. 그때는 그런 말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이걸 수타면이라고 불렀다. 처음 우리 땅에서 중국의 면이 시작되었을 때는 거의 수타면이었을 테니, 따로 ‘수타’라는 소리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 수 때릴 타. 실은 이 말은 중국인보다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쓴
매일경제 – 박찬일 셰프의 푸드 오디세이 ‘불 맛’으로 완성되는 짬뽕
혹한도 이런 혹한이 없다. 얼어붙은 속을 녹이려면 국물 요리가 최고다. 부드러운 북엇국도 좋고, 매운 육개장도 속을 홧홧하게 덥혀서 인기다. 중식으로는 단연 짬뽕이다. 그릇째 들고 들이켜면 오장을 꽉 채우는 밀도와 매운맛이 위로 치받는다. 해장하거나 굴풋한 속을 달랠 때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이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풍경이 있다. 목판으로 만든 목가방(철가방은 나중에 등장한다)을 무겁게 자전거 뒤에 싣고, 한 손에는 주렁주렁 노란 양철주전자를 든 배달꾼들이 동네를 다녔다. 요란하게 종을 울리면서. 얼른 비키지 않으면 구슬치기를 하던 아이들이 치일 판이었다. 어쩌다 아버지는 짬뽕을 시키셨다. 속이 헛헛하다, 이러시면 짬뽕을 드시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배달꾼이 총알같이 왔다. 면과 웃기(토핑)만 담긴 사기그릇을 놓고는 찌그러진 양철주전자를 들어서 위에
박찬일 셰프가 들려주는 세계 누들 스토리 ; 인간은 왜 국수를 먹었을까
국수는 정의하기 쉽지 않다. 기름에 튀긴 것도 국수이고, 삶은 것도 있으며, 삶아서 구운 것도 국수이기 때문이다. 국수를 ‘물에 붙든다(掬水)’고 해서 국수라고 하지만 실은 더 다채로운 조리법이 있다. 심지어 중국 남부에 가면, 국수를 삶아서 건조하고, 그걸 다시 튀겨서 전분질의 소스를 얹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 음식이 일본 나가사키에 전래되어 ‘사라 우동’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국수라고 하면 어떤 경우이든 “밀가루 반죽을 해서 길게 뽑은 것”이라는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면’이라는 개념에는 심지어 빵까지 포함한다. 즉 밀가루 같은 가루를 빚어 만드는 건 다 면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국수를 우리 민족이 대대로 먹던 오래된 면이라고 인식한다. 즉, 소면 등의 잔치 국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