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는다는 건 단순한 복귀가 아니었다. 나에겐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복학 대신 보컬 입시라는 길을 택한 나는,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무더운 여름을 피할 틈도 없이 하루 12시간 가까이 소리를 내야 하는 곳이었다. 연습실 안은 무대보다 더한 열기로 가득했고, 연습이 끝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특히 한여름의 오후, 그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반복되는 발성 연습과 곡 해석은 체력과 정신력 모두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몇 시간째 똑같은 구절을 반복하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수십 번이나 같은 멜로디를 불렀다. 하지만 점점 목은 잠기고, 집중력도 흐트러져갔다. 나는 거울 속의 초췌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연습실을 나섰다.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학원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일식당 ‘미소야’였다. 평소에도 종종 지나치긴 했지만, 들어가본 적은 없었다. 유독 무기력하고 지쳐 있던 그날,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식당의 문을 열었다.
서늘한 실내 공기가 뺨을 스치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판모밀’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시원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상상만으로도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주문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짝이는 얼음의 국물과 곱게 놓인 메밀면이 나왔다.국물은 간장 향이 진하게 올라왔고, 와사비 한 덩이, 다진 파, 그리고 갈아낸 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배와 와시비를 넣으라는 사장님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넣어보았는데, 그 단맛과 시원함이 국물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살짝 집어 국물에 푹 담갔다. 한 입 넣는 순간, 그동안의 피로와 무력감이 씻기듯 사라졌다. 쫄깃한 면발과 깔끔한 육수, 코끝을 톡 쏘는 와사비의 향. 그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입시 준비라는 현실은 그대로였지만, 그 날의 판모밀 한 그릇은 마치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로도 미소야의 판모밀은 여름이 올 때마다 나의 작은 버팀목이 되었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그 한 그릇의 힘은 점점 커져갔다. 입시는 결국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나를 시험하는 날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여름날, 땀에 젖은 몸으로 앉아 먹던 시원한 판모밀의 맛은 내게 버틸 이유가 되어주었다.
지금 나는 보컬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무대에 서는 프리랜서 보컬로 살고 있다. 완전히 꿈을 이룬 건 아니지만, 그 시절의 나보다 훨씬 단단해졌다.그리고 여전히 여름이 다가오면, 나는 그날의 미소야, 그 면발, 그 육수의 온도를 떠올린다.
이따금씩 주변에서 삶이 버겁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조용히 그들을 데리고 미소야로 향한다. 그리고 판모밀을 앞에 두고, 그 여름날 내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 시간들을 견디게 해준 한 그릇이 내게 있었어.”
어쩌면 사람마다 ‘인생 면요리’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할머니의 잔치국수, 누군가에겐 시장의 칼국수가 될 수도 있다.하지만 내게 있어 인생의 한 시절을 견디게 해준 단 하나의 면요리는, 바로 그 여름, 땀과 눈물로 얼룩진 날들을 다정하게 감싸주던 미소야의 판모밀이었다.
글쓴이 : 이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