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식대가 여경래 셰프를 만나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 위치한 홍보각에서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여경래 셰프를 만났다. 여경래 셰프는 요리 인생 50년, 세계중식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모두가 인정하는 중식 대표이자 중식의 대가이다. 그가 ‘흑백요리사’에 심사위원도 아닌 참가자로 출연한다는 점이 화제였는데 심지어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와의 1대 1 대결 끝에 탈락했다. 이때 여경래 셰프는 깔끔하게 승복하고 후배를 인정해주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그 모습 그대로 꾸밈없고 소탈하지만 그의 웃음 뒤에는 수없이 쌓아 올린 땀방울이 모여 윤슬처럼 빛나고 있다.
그의 요리 철학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1. 중국요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셰프님께 중국요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저는 한국인 어머니와 대만 국적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5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어린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제가 중국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건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어머니께서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화교였기에 직업을 선택할 여지가 많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요리를 하던 초창기에는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일이 나에겐 운명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기왕 할 거면 최고로 잘하자’는 마음이 생겼죠. 또 중식이 나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을 즐기면서 했고 그러다 보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20대 초반에 주방장의 자리에 올랐어요.
Q2. 결코 쉬운 길을 걸어오신 것 같지 않습니다. 내성적인 모습은 전혀 없는데 어떻게 성격이 바뀌셨나요?
제가 사람의 단점이나 그런 걸 잘 보는 편이에요. 그게 결코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항상 긍정적으로 살자고 스스로 다짐한 다음부터는 생각만 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훈련을 하고 또 했습니다. 소심한 성격을 바꾸려고 저 혼자서 담력 훈련 같은 것도 했어요. 3년 동안 버스 타고 다니면서 서울역이나 고속터미널 같은 곳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막 미친 사람처럼 외쳤어요. 남들은 이상하게 쳐다보는데 저는 “예쓰! 해냈다!” 그런 게 있었거든요. ‘내 안에 있는 나를 끄집어 내자’고 다짐했었죠. 내성적인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대인관계나 소통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했던 일이에요. 그 이후에 강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유머를 연습하고 강의에 내공을 쌓으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Q3. 전설의 칼판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얘기 좀 들려주세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중식계에서 '전설의 칼잡이'라고 부른다고요. 그건 제 스승들께서 가르쳐 주셔서 열심히 했을 뿐이라 별로 이야기 꺼리가 없는데요. 오학지, 왕출량 사부님께 배웠습니다. 제가 시력이 좋지 않거든요. 옛날에 제가 배울 때는 안경 쓰면 건방지다는 말을 들어서 안경도 못썼거든요. 나쁜 시력을 극복하기 위해 칼질을 더 열심히 했어요. 진짜 그것 뿐입니다. 제가 칼판장이 된 것도 20대 초반이니까 꽤 빨랐죠. 그러던 어느 날, TV나 이런 데서 중식하면 불이 확 피어오르는 웍질 중심으로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불판을 하기 시작했고, 저는 면판에서 수타도 했었어요.
Q4. 요즘 TV출연을 많이 하시는데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있죠. 사실 요즘 “아빠하고 나하고”라는 TV프로그램을 찍고 있는데 제 아들이랑 같이 출연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인터뷰하면서 속 마음을 털어놓는데 한 번도 그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상상도 못했어요. 아버지 칭찬이 그렇게 그리웠다고 하더군요. 제가 다른 제자들에게는 칭찬을 많이 해주는 편인데 아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더라구요. 저는 갈등이나 위기 이런 걸 좋아하지 않아서 늘 긍정적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승화시키고… 그런 게 나만이 살아가는 하나의 지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우리 아들이 저를 어려워 한다는 말을 듣게 되더라구요… 방송을 통해서 아들을 더 이해하게 되고 가까워지니 요즘 그 프로그램 촬영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Q5. 셰프님의 제자이자 현재 중식 업계에서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는 박은영 셰프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또 어떤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저는 요리도 인성이 좋아야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근면 성실해야 해요. 어떤 분야이든 같겠지만 중식도 팀웍으로 하는거에요. 팀웍이 좋으려면 결국 인성이 기본이 되어야 해요. 박은영 셰프는 제가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발굴한 인재입니다. 중식계에 여자 요리사가 거의 없는데 그것도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그렇겠죠? 방송을 봐서 알겠지만 박은영 셰프는 편견을 깰 만한 대단한 재능과 깡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됩니다.

Q6. 끝으로 중식의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제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중요한 얘기에요. 저는 제자들에게 20대 까지는 오로지 주방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30대가 되면 사업을 시작하라고 해요. 자기 가게를 차리고 운영해보라고 해요. 그래야 요리만 바라보지 않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요. 또 30대는 실패해도 괜찮은 나이거든요. 두려워 하지도 말고, 현실에 안주하지도 말고 한 번 해봐라! 그럼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이요. 저희 어머니께서 말씀 하셨던 ‘기술’이 있으니 다시 일어설 수도 있잖아요. 부딪혀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뭐든요.
그의 일정이 적혀 있는 스케줄러에는 하루에도 몇 개의 약속이 있다. 주말에도 일을 한다. 이번 주에는 안동에서 새벽 6시부터 일하신다고 한다. 벌써 몇 년 째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꿈을 물었더니 “쉬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바쁘다. 그의 나이 66세에 지치지 않는 비결은 “긍정의 힘”이다. 다들 학교에 가는 시간 혼자 주방에서 칼에 베이면서 일을 배우던 소년이 눈물을 삼키다 깨달은 철학이다.

홍보각의 짬뽕
해산물의 신선도가 매우 인상적이고 국물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면은 직접 뽑아서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하다. 약간 납작하게 뽑아서 국물이 잘 배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