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서 피난 온 외할머니와의 유년 시절 추억, 입맛에 새겨진 평양냉면의 인연,
그리고 오늘날 냉면을 둘러싼 문화적 흐름을 섬세하게 풀어낸 에세이”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 다시 냉면의 계절이 찾아왔다는 말이다. 냉면을 사계절 섭취하고 있는 나로서는 특별한 계절의 민감도는 없지만 여러 매체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접하면 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냉면이라는 말이 차가운 면이라는 말인데, 결국 국수라는 대범주에 속하는 말이자, 대단히 상업적인 단어인 듯한 느낌이 들어 유난히 가격이라는 거대 범주에 늘 항상 “비싸다”라는 개념으로 등장하는 게 어느덧 냉면이 되어버렸다.
나는 왜 냉면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뭐 특별히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결국 이 문제의 시발점은 피난을 내려오신 우리 외할머니부터 시작된 흐름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개성에서 피난을 내려오셔 군산에 터를 잡으시고, 일본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셨다가 다시 돌아와서 군산을 떠나 지금은 대전에 살고 계신 우리 외할머니. 올해 나이로 97 세이시니 참으로 장수를 하신 분이신데, 올해 초 인사를 드리러 대전을 내려갔을 때에도 할머니의 뇌는 너무나 건강해서 대화나 심지어 친척분들의 문자도 착착 보내주시고 계셨던 그 외할머니말이다.
어릴적 외할머니가 성북동의 우리집에 함께 살던 때가 있었고, 늘 우리는 주일 교회를 다녀왔다가 돌아오는 길에 냉면이라는 음식을 자주 먹었던 것 같다. 어릴적에는 사실 오장동이니 평가옥이니 우래옥이니 라는 타이틀의 종류보다는 “또 냉면인가?”하는 탄식으로 끌려가서 먹었던 그 음식의 냉면. 그 냉면을 먹던 나는 결국 어릴적 혀에 인이 박혀 대학교 때도 사회를 나와서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언제나 작은 쾌감을 선사하는 음식이 바로 냉면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으로 귀결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외할머니는 개성에서 전쟁을 피해서 내려오신 분이셨으나, 평양냉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나 “이북 만두는 이렇게 크지 않아!” 하는 메시지들 그리고 늘 만두나 평양냉면 먹을 때 4“우아하게 먹으라”라는 훈계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어릴적 음식의 추억은 혀로만 느껴지는 게 아니리라 생각이 든다.
나에게 인이 박혀버린 평양냉면을 먹다 보면 어느덧 주변 사람들이 “냉면에 대한 이야기좀 해봐줘!”라고 가볍게 말하고 나는 어릴적 외할머니의 이야기나 그 이후에 북에서 펼쳐졌던 평양냉면 소식들을 더해서 전하는 일명 평양냉면 파수꾼이 되었음을 새삼 느낀다. 그러한 힘으로 10 여 년 전 만들었던 평양냉면의 소셜그룹은 이제 다양한 각계각층의 운영진이 참여하여 이제 나혼자 만들어가는 게 아닌 우리가 모두 만들어가는 중형 모임이 되어버렸다.
진짜 평양냉면과 가짜 평양냉면은 없고, 결국 언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시대적 변화와 함께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처럼 냉면도 늘 변했다. 외할머니가 어릴적부터 드시던 냉면이 평양식인지 개성식인지 함흥식인지는 모르지만, 오장동보다는 평래옥을 더 자주 갔던 것을 기억해보면 육향이 베어 있는 냉면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 서울식 평양냉면을 더 기억하시라 생각이 든다.
북한도 90 년대 후반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홍수와 가뭄에 이은 식량 위기로 메밀면이 순메밀보다는 언감자가루나 겉메밀가루 등을 섞어서 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다시 요즘 유튜브나 북한발 뉴스의 국영식당이나 옥류관의 영상을 보면 많이 밝아지고 있음을 느낄 때, 아 북한도 이제 식량이 조금은 안정화 되었구나 혹은 예전 다시 뽀얀 메밀면으로의 진행을 하고 있구나 하고 변화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오고 있다. 어릴적 외할머니와 지겹게 먹던 그 냉면의 인은 이제 내 주변인들을 전파 시키고 있지만, 계속해서 좋은 냉면집들을 찾을 수 있는 요즘 이 시대가 너무 행복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주변에도 좋은 냉면집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노포도 좋다. 신생집들도 좋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흐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다양한 냉면을 섭취해보시길 추천해본다. 평양냉면이던, 함흥냉면이던, 진주냉면이던, 포천냉면이던, 밀면이던,막국수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끔 신생 냉면집을 가서 테스트를 하면서 혼자 먹는 그 장소에서 문득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무척 그리워질 그순간말이다.
글쓴이 : 김지인 (jeein.kim@grampus.co)
– 무심한 듯 담담한 너 – 평양냉면(平壤冷麵)을 사랑하는 사람들 커뮤니티 개설자
– 현, 그램퍼스(주) 공동창업자 및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