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 중 국물 삼국지
한민족은 국물의 민족이다. 찬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유일한 민족이다. 냉면, 밀면, 쫄면은 물론이고 소스에 찍어 먹는 소바도 한국인은 쯔유 국물에 말아먹는다. 국수와 국물의 만남은 동아시아 면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한 일 중의 국물 면식 문화는 깊게 연관되어 있다. 중국은 닭과 돼지와 건어물을, 일본은 해산물을 기본으로 돼지를, 한국은 소와 돼지, 나물, 된장, 해산물을 고르게 사용해 국물을 낸다.
국물의 탄생
중국에서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철학의 근간이다. 중국 철학의 기본을 이루는 오행(五行)과 오미(五味)는 한 짝으로 움직이는데 오행과 오미의 근간은 조화다. 오미의 완성형 음식으로 국이 등장한다. 다른 여러 성질들을 한데 녹여 먹는데 국은 최적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기원전 700년경부터 약 250년간의 역사가 쓰여 있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0년에 편에는 “화합[和]이란 국을 끓이는 것과 같다.”라 하였다.
긴 국수와 도교
중국의 민간 종교는 도교가 근간을 이룬다. 기술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길고 가는 국수가 만들어진 것은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도교의 철학이 바탕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불로장생을 기본으로 하는 도교는 길고 좁은(長瘦, 장수) 것을 먹으면 장수(長壽)한다고 믿었다.
한나라의 실존 인물이던 삼천갑자(18만년) ‘동방삭’(東方朔)(BC 154-BC 93)의 장수면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인중이 길면 장수한다’라는 이야기들이 나올 때 동박삭이 인중이 길어 장수한다면 800세를 팽조(彭祖)란 신선의 얼굴은 얼마나 길까’라고 이야기하며 모두가 즐겁게 웃은 이야기에서 얼굴(面) 같은 발음인 면(麺)도 길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면을 먹으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 때부터 잔치 때 먹는 면을 장수면(長寿麺)이라 불렀다. 이렇게 면과 국수가 중국의 오미조화와 장수에 대한 철학으로 국물 국수가 만들어졌고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의 중요한 음식이 된다.
중국의 국물
중국에서 국수는 북쪽은 주로 비벼 먹고 남쪽은 국물과 함께 먹는다. 국물의 종류는 워낙 다양하지만 닭과 돼지를 기본으로 섞어 쓴다. 중국 최고의 국물은 상탕(上湯)으로 친다. 상탕은 남쪽 요리의 본거지인 광둥 요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육수로 주로 상어 지느러미 요리, 제비집 요리, 심지 요리 및 야채 요리에 사용된다. 국물은 맛이 없고 맑고 투명하며 색은 연한 갈색이다. 수프를 끓이는 데 사용되는 원료는 늙은 암탉, 돼지 살코기, 진화 햄, 돼지 용골, 닭발, 흰 후추 알갱이, 용안 과육 및 생강 등이다.
일반적인 육수는 까오탕(高汤)으로 부른다. 까오탕은 일반적으로 닭, 오리, 햄, 해산물, 버섯 및 기타 원료로 만든 육수를 말한다. 중국 요리의 속담에 ‘닭이 없으면 향이 나지 않고, 오리가 없으면 신선하지 않으며, 껍질이 없으면 걸쭉하지 않고, 배가 없으면 희지 않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 최고의 국물로 꼽히는 상탕 上湯
고급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거품과 잡티를 정성스럽게 걷어내면서 만드는 국물이다.
까오탕은 두가지로 나눈다. 처음 나오는 국물은 터우탕(頭湯)이라 하는데 터우탕은 대개 유백색이며 맛이 진하고 향이 좋다. 두번째 끓이는 것은 얼탕(二湯)이라 한다. 색이 옅고 강하지 않으며 감칠맛은 분명히 ‘까오탕’만큼 좋지 않으며 일반 요리의 준비나 국물에만 사용된다.
얼탕은 쓰촨 요리의 고급 국물 중 하나로 주로 쓰촨 요리의 전통 요리인 ‘끓인 배추’, ‘맑은 제비집 조개 알’과 같은 쓰촨 요리의 일부 중급 및 고급 요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맑은 국물’의 주요 특징은 맑고 바닥이 보이며 부드럽고 맛이 좋다.
(좌) 가쯔오부시로 불리는 가다랑어 포를 만드는 작업 / (우) 국수의 국물이 되는 재료들
일본의 국물
국물은 일본 요리의 기본이다. 일본의 국물을 뜻하는 다시(出汁)는 니다시지루(煮出汁)에서 온 말이다. 일본 국물의 근간인 가쓰오부시(鰹節)나 다시마(昆布) 같은 농후한 국물은 원래는 부유층의 문화였다. 서민층은 경사 등의 일상적인 날을 제외하고는 생선이나 야채의 국물에서 생기는 담백한 국물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가쓰오부시나 다시마가 서민들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일본의 육수는 서일본(간사이)과 동일본(간토)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는 강한 맛을 기본으로 한다. 다랑어를 말려 쓰는 가쓰오부시가 생선의 향기(냄새)가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는 강한 맛과 향의 간장을 사용한다. 간사이의 ‘오다시’(국물)는 소재의 풍미를 살리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다시마를 메인으로 멸치나 가다랑어 등을 사용한 조합의 국물이 특징이며, 어디까지나 이 풍미(맛)가 메인이며 간장의 사용은 아주 소량, 풍미를 입히는 데 그친다. 사누키 우동의 본향 시고쿠는 주로 멸치를 사용한다. 현대에는 라멘이 국물 음식의 중심이 되면서 돼지 육수가 가장 친숙한 육수로 등극하게 된다.
한국의 국물
한국의 국물의 기본은 소(牛)다. 양반들은 소고기 살코기로 곰탕 같은 기름지고 맑은 국을 기본으로 했고 서민들은 소뼈 등 부산물로 탁한 설렁탕 국물을 주로 먹었다. 해안의 서민들은 생선을 기본으로 된장을 풀어 먹었고 산간 지역에서는 나물에 된장을 풀어 먹었다. 국수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경상도에서는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했다.
냉면은 지금은 소육수를 기본으로 하지만 평양에서는 돼지, 닭, 꿩, 소고기를 따로 혹은 따로 섞어 사용했다. 예전에는 동치미 등의 김치국물은 국수의 기본 국물이었지만 냉면은 이제 소고기 육수가 대세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 돼지국밥이 대중화되면서 돼지육수가 한민족 음식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분식 장려 운동의 결과로 대중 외식이 된 칼국수는 경상도식 멸치 육수를 기본으로 한다. 강원도에는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을 활용한 장국에 말아 먹는 장국수 문화도 번성 중이다.
온돌문화와 국물을 중시하는 철학과 적은 재료를 여럿이 나눠 먹기 위한 육수 문화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대중화된 국물 문화의 나라로 등극하게 한다.
글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 역사 문화 연구자
한·중·일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저서로 《음식강산 1, 2, 3》 《한식의 탄생》 《만두》 등 다수가 있다. 《조선일보》에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음식의 계보> <박정배의 미식한담> 등을 연재했고, 《중앙일보》에 <박정배의 시사음식>을 연재하고 있다. KBS 1TV <밥상의 전설>과 <대식가들>, SBS PLUS <중화대반점>에 고정 패널로 넷플릭스 <한우 랩소디>, <냉면 랩소디>등에 자문 및 출연했다. <소고기의 모든 것> <국물연구회> <국수학교> <음식 글쓰기> 강좌를 기획 하고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