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조선 [권순홍의 맛집] 경기 하남 – 팔당 원조칼제비칼국수
우리는 살면서 가끔 햄릿이 되어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닥칠 때가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고민의 순간은 주로 면요리 앞에서 아닐까? 예를 들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그것은 영원한 숙제이며 물냉이냐 비냉이냐 또한 여름마다 풀어야 할 문제와도 같은 것이다.
칼국수를 먹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고민에 빠진다. 칼국수와 만두, 칼국수와 수제비는 고전적인 형태의 고민이며 요즘엔 비빔칼국수냐 국물칼국수냐 그 문제 또한 쉽게 풀 수 없는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럴 때 고객 맞춤형 정답을 내놓는 식당들이 생기며 새로운 방식의 메뉴들이 생겨났는데, 단순히 반반 섞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물 안에서 춤을 추듯 어우러져 우리의 침샘자극 메뉴가 되고 있다.
1. 칼싹두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칼제비
손으로 찢어서 국물에 뚝뚝 던져 넣는 수제비는 어떤 반죽은 얇고, 어떤 반죽은 밀가루 씹는 맛이 두꺼워 리드미컬하다. 수제비와 칼국수가 하나의 국물 베이스에 함께 삶아질 때 우리는 탱고 음악에 몸을 맡기도 춤추는 면과 수제비의 하모니를 맛보게 된다.
그런데 칼제비의 어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밀가루 반죽을 손대중으로 떼어내어 물에 넣고 끓인 음식을 일러, ‘손 수(手)’자를 써서 ‘수제비’라 한다. 반면 손으로 떼어내지 않고 밀방망이로 밀어 고르게 된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어서 물에 끓인 음식을 ‘칼제비’라고 했다. 그런데 ‘수제비’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데 ‘칼제비’라는 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칼국수’가 차지했다고 한다.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을 국수처럼 길게 썬 것이고, 반죽을 깍두기처럼 굵직한 조각으로 썰어서 물에 끓인 것은 ‘칼싹두기’라고 하는데 이러한 칼국수와 칼싹두기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 바로 ‘칼제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칼싹두기는 사라지고 수제비만 남았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어원과 다르게 지금은 메뉴명이 된 것이다.
2. 할머니들의 억척스런 생활력으로 태어난 칼만두
‘칼만’이라고도 줄여 부르는 칼만두국은 만두국과 칼국수가 결합된 원주만의 독특한 면문화다. 만두는 6·25 전쟁 이후 원주가 중부 내륙의 중요 거점지로 부각되고 1군사령부·지사, 미군 기지 등 군사시설이 들어오면서 피란민과 상인들이 원주역 앞에서 빚어 팔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 시장 주변에 손만두와 칼국수를 팔던 노점상들이 시장 안에 점포를 두고 영업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원주의 중앙시장 만두거리와 칼만두를 원주의 명물로 만든 주인공은 바로 노점상에서 시작해서 시장을 지켜 온 할머니들이다.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과 좋은 맛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고, 또 서민들이 많이 찾아 와서 그 음식을 믿고 사먹는 사이 시장은 어느새 활기를 띠고 지역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원주는 칼만두와 치악산에서 많이 잡히던 꿩이 들어간 꿩만두의 원조라 자부하기도 한다. 원주는 만두를 주제로 한 지역축제로 성공시키며 만두를 지역의 특색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원주 만두 축제는 10월 말에 열린다.
미군 기지와 가깝게 자리한 도시의 위치가 원조 받은 밀가루 유통의 거점이 되고 그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으로 서로를 이롭게 했으니 스토리텔링 또한 훌륭하다.
©선홍색 김치만두가 들어간 원주 칼만두
3. 지구 온난화가 빚은 인기메뉴 칼비빔면, 비빔칼국수
날씨가 더워지면 밥보단 면 요리가 더 생각나고 새콤달콤한 음식만 찾게 된다. 두툼한 칼국수 면에 싱싱한 채소와 새콤달콤한 양념장 을 넣어 만든 ‘비빔칼국수’는 여름철 별미다. 이례적으로 우리나라는 2024년 여름이 추석 이후까지 이어졌다. 그런 이유로 비빔칼국수, 칼비빔면의 인기가 지속되면서 여름 뿐 아니라 사계절 메뉴가 되고 있다.
두툼하고 쫄깃한 식감의 칼국수 면에 맛깔 나는 양념장을 더한 비빔칼국수는 쫄깃하고 탱글탱글해 식욕을 자극한다. 각종 채소를 채 썰어 얹기도 하고 낙지나 문어, 골뱅이, 소라 같은 해산물 혹은 차돌박이나 부채살 등을 고명으로 얹는 레시피도 SNS에 올라온다. 참을 수 없는 침샘자극 식욕자극 야식메뉴다.
새콤달콤 침샘을 자극하는 문래동 비빔칼국수
© 세콰노의 머거머거
참고 문헌
–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 박남일
– 대한민국 누들로드, 김미영
– 음식 강산
➁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 박정배
글 박현진
누들플래닛 편집인
IMC 전문 에이전시 ‘더피알’의 PR본부장이자 웹진 <누들플래닛> 편집인을 역임하고 있는 박현진은 레오버넷, 웰컴퍼블리시스,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코래드 Ogilvy & Mather에서 근무하며 20년 동안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경험했다. 켈로그, 맥도날드, CJ제일제당, 기린프로즌나마, 하이트진로 등 국내외 다수 식품 기업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였으며, ㈜한솥에서 브랜드 담당자로 근무한 경력과 F&B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