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월 되면 일본 유학시절 몸을 녹여주던 따뜻한 국물이 생각난다. 일본 국물요리라고 하면 라멘, 소바, 나베…등이 있겠지만 그중 깔끔한 국물에 여러가지 토핑을 올릴 수 있어 저렴한 가격에도 만족할 수 있는 우동이 으뜸이라 하겠다. 우리에게 우동이란 그저 휴게소에서나 아님 값이 저렴한 기사식당에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정도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재료로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음식은 결코 흔치 않다.
유학시절 학교가 끝나고 힘겹게 이자카야 알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항상 멀게만 느껴졌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빠르고 편하지만 넉넉치 않은 생활비로는 자전거가 나의 대표 이동 수단이었다. 집에 가는 길 한쪽 모퉁이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습기로 인해 밖에선 사람들의 실루엣만 보이지만 냄새로써 그곳이 우동집 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기본 키츠네우동(간장에 졸인 큰 유부가 토핑)을 베이스로 새우튀김, 야채튀김, 우나기(붕장어)등 여러 토핑들이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쇼케이스 위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350엔 기본 우동이 생각 나는 건 무엇일까? 일본에서 생활했던 외부인도 생각나게 만드는 마성의 그 맛! 작은 돈으로 나의 배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 소울푸드다.
“ 우동이란 음식에는 뭐랄까.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 있는 것 같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中
외로운 유학생활이다 보니 가끔은 칼국수가 생각날 때는 비슷한 모양의 이나니와 우동을 먹기도 했는데, 지금 서울에 와있으니 거꾸로 우동 생각이 난다. 그 탱글탱글한 식감이 생각날 때면 서울시청 맞은편 ‘이나니와 요스케’로 가서 후루룩 먹고 온다. 국물의 맛을 중심으로 면을 파는 우리나라 칼국수집 보다 일본은 면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사누키우동은 “국물이 끝내주는” 우리네 국수와 다르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깥쪽은 부드럽게 말랑하면서 딱딱하리만큼 탱탱한, 두 가지의 모순적 질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면발은 잊을 수가 없다. 갓 삶은 면을 그 자리에서 먹는 싱싱함이랄까?
가끔은 하얗고 뽀얗고 통통한 면발이 차가운 그물망 위에 올라와 있는 자루우동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뽀얀 면발을 쯔유에 적셔 먹으면 한 여름 더위에도 시원한 포만감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토핑을 따로 시켜서 튀김을 몇 개 더 먹을 수 있는 날은 더없이 좋았던 그 시절 나의 행복이었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유명한 ‘고독한 미식가’의 후쿠오카 둥근 오뎅 우동은 그야말로 뜨끈한 국물에 부드러운 우동 면발이 조화로운 바로 그 맛이다. 나는 도쿄에 10년 이상 살면서 후쿠오카의 푹 삶은 우동, 너무 부드러워 뚝뚝 끊어지는 그 우동을 후루룩 후루룩 소리내서 먹어본 기억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한 그릇 뚝딱 먹고 나면 뱃속까지 전해오던 그 따뜻함에 추위에 얼어 있던 잠이 풀려 스르르 잠들기도 했다.
사람마다 각자 하나 이상의 “소울푸드”는 있을 것이다. 두부와 야채가 듬뿍 들어간 된장국,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우려낸 사골 곰탕, 맛있게 숙성된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 등 그리 대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는 그것들이 우리의 음식들이다.
우동은 일본인의 국민음식이다. 일본 어딜가나 우동이 없는 곳은 없다. 면발의 굵기와 탱탱함의 정도가 다르고, 생면부터 건면까지 건조 방법도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쯔유에 찍어도 먹고, 살짝 부어 먹기도 한다. 국물에 푹 잠긴 우동을 후루룩 먹은 다음, 국물을 끝까지 마시기도 한다. 토핑만 해도 셀 수 없고, 맛도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다.
오랜 세월을 통해 전수해 온 일본의 우동은 그들의 “소울푸드” 그 자체인 것이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우동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바쁠 때는 빨리 먹고, 퇴근 길 혼자 앉아 사케나 맥주 한 잔 옆에 두고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전해지는 따뜻함이란? 행복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화려한 기술보다는 정성을 다해 만드는 “우동”이야 말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음식이라 말하고 싶다.
P.S ; 장시간 원고를 쓰다가 풀리지 않아 고민했다. 아 역시 나는 글보다 칼을 써야 되는 구나…..
글 남사무엘
現 배민아카데미 전임 강사
現 코리아요리아카데미 국제 요리 대회반 전임강사
現 (주)열정컴퍼니 대표
現 조리협회 상임이사
前 탑쉐프 요리학원 원장 / 서울요리학원 전임강사 / 썬앤푸드 셰프 / 일식 아카사카 과장 / 일본 가와 사키 한식당 서울 셰프 / 일본 (주)주락그룹 일식 셰프/ 일본 오오쿠라 호텔 셰프
도교 핫토리 조리학교 조리학과 졸업을 졸업하고 도쿄에서 10년간 일하며 배웠다.
세계의 각종 요리대회에서 수상한 화려한 경력과 현업에서의 수많은 요리 경험을 토대로 코칭 및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