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대왕의 삼남인 안양군(安陽君)의 현손(玄孫) 옥담 이응희. 농사를 짓는 틈틈이 책을 읽고 시를 짓는 것을 낙으로 삼아 지냈던 옥담이 평생 수리산 아래에 살면서 향촌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글을 담았다.
언제부터 먹었을까? 어떻게 먹었을까? 어느 순간에 먹었을까? 우리가 지금 즐겨먹는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날 때 우리는 옛 문헌을 찾고 음식의 여정을 생각한다. 칼국수에 대한 궁금증도 다르지 않다.
조선 중기의 선비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음식에 관한 한시를 많이 지었다. 그가 지은 『옥담시집(玉潭詩集)』에는 ‘면(麵, 국수)’이란 제목의 한시가 실렸다. “어떤 사람이 국수를 만들었나(何人作麵食), 좋은 맛은 무엇보다도 매우 깊네(佳味最深長). 반죽을 눌러 실처럼 가늘게 천가락을 뽑고(按罷千絲細), 칼로 실처럼 썰어 만 가락을 만드네(刀成萬縷香). 손님 대접해 배를 실컷 채우니(剩飽佳賓腹), 능히 군자의 배가 불렀음을 짐작할 수 있네(能爲君子腸). 세 사람이 함께 먹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不待三人食),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네(其言信不妨).”
이응희가 “반죽을 눌러 실처럼 가늘게” 뽑는다고 읊조린 국수는 ‘사면(絲麵)’이다. 조선 시대 요리책에서는 ‘사면’을 적당한 묽기의 녹두즙에 가까운 반죽을 만들어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은 바가지에 넣고 눌러서 만든다고 적혀 있다. “칼로 실처럼” 썰어 만드는 국수는 칼국수다. 알다시피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을 나무판에 놓고 홍두깨로 얇고 넓적하게 민것을 둘둘 말아 큰 부엌칼로 가늘게 썰어 낸 것이다. 이응희는 사면을 ‘천 가락’, 칼국수를 ‘만 가락’이라고 대응하여, 밀로 만든 칼국수가 사면보다 더 맛있음을 강조했다.
山家要錄. 조선 초기, 1450년대(세종)
왕실 어의 전순의(全循義)[1]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현존 가장 오래된 농서이자 요리책.
현재 서울의 (사)우리문화가꾸기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칼국수의 제조법을 가장 먼저 기록한 조선 시대 요리책은 세조의 어의(御醫) 전순의(全循義)가 편찬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국수의 이름은 ‘창면(昌麵)’이다. “밀가루를 아주 곱게 빻아, 고운 모시를 깐 체에 여러 번 내린다. 물로 반죽하여 탄환(彈丸, 새를 잡기 위해 활에 달아 쏘던 작고 둥근 물건)처럼 자른다. 참기름에 담갔다가 꺼내서 판 위에놓고, 반 자(약 7cm) 남짓한 대나무로 만든 화살집을 가지고, 매우 얇도록 민 다음, 칼로 길게 자른다. (국수의) 양 끝을 잡고 얇아지도록 당긴다. 싸리나무 채반 위에 나란히 늘어놓고,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잘 둔다. 손님이 오면 바로 청장(淸醬, 갓 담근 간장) 물에 꿩고기나 닭고기를 넣어 끓이고 국수를 넣는다.”
사실 조선 중후기의 요리책에서는 창면을 오미자즙에 녹두 녹말로 만든 국수를 띄워 마시는 음료로 적고 있다. 전순의가 이 칼국수를 왜 ‘창면’이라고 이름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칼국수 가락을 다시 손으로 얇아지도록 당겼으니 매우 투명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든 생국수를 그늘에 말린다 하니 지금의 건면과 같은 국수다. 손님이 오면 꿩고기나 닭고기를 넣고 끓인 장국에 건면을 삶아 말아낸다. 그 맛을 상상하니 입 속에 침이 고인다.
밀가루 반죽으로 칼국수를 낸다는 기록은 밀국수가 시작된 중국의 문헌이 앞선다. 고대 중국에서는 칼로 자른 국수를 ‘절면(切麵)’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6세기 북위의 가사협(賈思勰)이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 9권에 나오는 절면은 오늘날 우리가 중국의 북부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칼국수 도절면(刀切麵) 제조법과 다르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바둑돌 크기로 잘라서 찜통에 쪄낸 다음, 그것을 얇게 펴서 만든 국수가 절면이다. 중국 국수의 시대가 열린 12세기 송나라 때 나무판에 밀반죽을 얇고 넓게 펴서 중국식 큰 칼로 ‘실처럼’ 썰어낸 칼국수가 큰 인기를 끌었다.
조선 시대 문헌에서는 칼국수를 수라화(水喇花), 절면, 착면(着麵), 도제비(刀齊非) 등으로 적었다. 그런데 수라화는 앞에서 소개한 『제민요술』의 절면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드는 밀칼국수다. 『산가요록』에는 “여름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판에서 얇게 밀고, 마치 작은 못 모양으로 썰어, 삶아 익힌 다음, 찬물에 담그고, 다시 물을 갈아서 차갑게 될 때까지 몇 번을 반복한다. 생강, 마늘, 식초, 간장에 비벼서 상에 올린다.”라고 ‘수라화’ 제조법을 적어 놓았다. 한반도에서 초여름에 난 겨울밀로 만든 칼국수다. 작은 못 모양이 『제민요술』의 바둑돌과 비슷하지만, 요리법이 똑같지 않다.
음식디미방(사진)은 1670년경 조선 시대 안동 지역에서 살았던 석계 부인 안동 장씨 정부인(貞夫人) 장계향이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의 재령 이씨 종가로 시집온 후 75세 때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요리책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한글로 쓰인 요리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의 『음식디미방』에는 밀가루와 녹두가루 반반씩 섞어 반죽하여 만든 칼국수 요리법이 나온다. 이름은 ‘별착면’이다. 이 책에는 녹두가루로만 만든 반죽덩어리를눌린 후 칼로 썬 ‘착면’ 요리법도 적혀 있는데, 아마도 이것의 특별한 요리법이라서 ‘별착면’이라고 이름 지은 듯하다. 반죽을 나무판에서 매우 얇게 밀어 칼로 썰어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별착면’은 깻국이나 오미자국에 말아 먹는 여름 칼국수다.
메밀로도 칼국수를 만들었다. 1592년 11월 서울에서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으로 여행을 갔다가 ‘임진왜란’ 발발 소식을 듣고 졸지에 여기저기 피란을 다닌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은일기 『쇄미록(鎖尾綠)』에서 “1595년 12월 8일, 이광춘을 불러 메밀가루로 만든 칼국수(刀齊非)를 대접하고 소주 한 잔을마시게 하여 보냈다.”라고 적었다. 전쟁 중에 밀 수확이 여의치 않아서 메밀로 칼국수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서울 사람 홍석모(洪錫謨, 1781~1850)가 1849년에 펴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음력 6월에 겨울밀이 생기면, 서울 사람들은 “오이와 닭고기를 넣고, 어저귀국[白麻子湯]에 만” 어저귀국밀칼국수와 “미역국에 닭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밀국수를 넣고” 익힌 닭미역국밀칼국수를 먹는다고 적었다. 19세기 초반 한여름에 귀한 밀가루를 구할 수 있었던 서울의 부유층이 즐겼던 별미 밀칼국수다.
맛있는 국물에 만 밀칼국수 요리법은 1890년대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한글 요리책 『시의전서(是議全書)·음식방문(飮食方文)』에서 온전히 정착되었다. 이 책에는 요사이 사람들
이 익숙하게 아는 칼국수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요리법의 제목은 아예 ‘밀국수’다.
“찻되(작은 되)로 4되 반죽하(려)면 밀가루를 가는체에 곱게 쳐서 달걀 8~9개 깨어 섞어 반죽할 때 물을 보아가며 쳐서 반죽을 눅도(무르지도) 되도(되지도) 아니하게 많이 주물러서 얇게 밀어 접을 때 가로 싸서 실같이 썰어서 물이 팔팔 끓을 때 술술털어 넣고 삶되 조리자루로 곱게 가만히 저어 솥뚜껑 잠깐 덮었다가 물이 너무 넘으려면 (솥뚜껑) 열고 냉수를 술술 쳐서 건져냉수에 두세 번 씻어 사리는 주먹만치 쥐어 놓느니라. 닭국을 끓이되 백숙 고아 뼈 추리고 고기 찢어 파나 부추나 넣어 양념하여 간을 맞추어 잘 끓여 밀국수를 말고 위에는 외와 호박을 채쳐볶은 것과 계란 얇게 부치고 석이와 고추 다 채쳐 얹어 쓰라.”
요사이 말로 하면 닭칼국수다. 『시의전서·음식방문』에는 닭칼국수말고도, 밀칼국수 요리법 두 가지가 더 나온다. 하나는 “깨볶아 물 섞어 갈아 체에 밭쳐 소금 타 간 맞추어 밀국수”를 만‘깻국밀칼국수’다. 또 다른 하나는 “콩을 담가 불려 삶아 데쳐 가는 체에 밭쳐 소금 타 간 맞추어 밀국수”를 만 ‘콩국밀칼국수’다.
음식디미방(사진)은 1670년경 조선 시대 안동 지역에서 살았던 석계 부인 안동 장씨 정부인(貞夫人) 장계향이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의 재령 이씨 종가로 시집온 후 75세 때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요리책이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난 밀이 들어오면서 밀칼국수는 일상이 되었다. 대부도 남쪽에서 가장 먼저 바지락칼국수집을 연 한 음식점 대표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국에서 온 밀가루를 배급으 로 받자, 집에서 곧잘 끓여 먹던 바지락국에 칼국수를 넣어 먹었다고 했다. 『산가요록』의 창면, 『동국세시기』의 어저귀국밀칼국수와 닭미역국밀칼국수, 『시의전서·음식 방문』의 닭밀칼국수, 그리고 대부도의 바지락밀칼국수까지, 우리나라 칼국수의 힘은 칼로 실처럼 만가닥을 썰어낸 밀국수와 맛있는 국물에서 나왔다.
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음식을 문화와 역사학, 사회과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문화인류학(민족학) 박사.
《음식 인문학: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2011), 《식탁 위의 한국사: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2013, 베트남 및 일본에서 번역출판),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2018, 타이완에서 번역출판), 《조선의 미식가들》(2019), 《백년식사: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2020), 《음식을 공부합니다》(2021),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2022, 중국에서 번역출판), 《분단 이전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 일제강점기 북한 음식》(2023), 《글로벌푸드 한국사》(2023)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