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켜준 은인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유학 시절 꿈을 생각하며 수련하던 곳이면서도 외로움이 밀려오는 수많은 밤들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식당을 운영하다가 7년이 흐른 어느 때쯤 그 곳이 그리워 무작정 찾아갔던 날을 기억한다. 그 곳엔 신기하도록 변함없이 똑같은 모습의 이탈리아가 있었고, 함께 일했던 스테파노, 파비오, 마르코, 페데리코, 판티도 그대로 있었다.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이탈리아의 냄새, 토스카니의 언덕과 나무들, 시원한 저녁 바람도 그대로 있었다.나에게 파스타란 바로 그 이탈리아의 그리운 기억이자 간직하고 싶은 감각의 추억이다.
어디를 가도 어디를 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파스타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면요리이자 요리라 할 수 있다. 흔히 스파게티라고 불리는데 사실 파스타는 반죽한 면의 모든 종류를 뜻하고 있다. 이탈리아 단어 Pestare(반죽하다)에서 비롯된 파스타는 지금도 새로운 종류가 나오고 있으며 대중적인 면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다. 면의 종류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요리법이 존재하며 각지역의 특산물과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면은 크게 건(乾)면과 생生면 그리고 속을 채운 형태로 나눌 수 있다. 건(乾)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고 시중에서 가장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면의 종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파게티의 점유율이 면 중에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20% 내외만 소비되고 있다. 그만큼 아직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는 면의 종류가 많이 존재한다. 건(乾)면의 모양은 주로 사물을 본 따서 이름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끈을 의미하는 단어 스파고에서 유래된 스파게티, 머리카락이란 뜻의 가장 얇은 면 카펠리니, 기타줄 같은 도구를 통해 만든다고 해서 키타라, 펜의 끝 모양을 닮은 펜네, 나비 모양의 파르팔레, 조개 모양을 닮은 콘킬리에, 귀 모양의 오레키에테 등 모양을 보고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다양한 모양의 면을 1%내외의 소금을 첨가한 물에 삶아내고 파스타를 완전히 익히는 것이 아닌 면을 갈랐을 때 심지가 살짝 남아있는 알 단테 상태로 만들어 낸다. 다만 이 알 단테도 날것에 가까운 알 단테부터 부드러운 알 단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生)면의 경우 아주 최소한의 재료를 넣어 맛을 만들어 낸다. 밀가루 계란 물 소금 올리브유를 반죽하여 덩어리를 만들어 준 후 면을 만들어 준다. 반죽이 탄력성을 가지려면 글루텐이 적절히 함유되어 있어야 하는데 글루텐은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으로 구성된다. 글리아딘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적어 그 상태로 유지하기 쉬운 성분이다. 파스타 반죽을 만들어 늘렸을 때, 그 상태를 유지하기 쉬운 것은 다른 밀가루보다 글리아딘의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스타 반죽에는 제빵용 밀가루보다 파스타 전용의 이탈리아 밀가루(듀럼밀)를 사용한다.
취향에 따라 휴지를 하는 경우도 있고 반죽을 할 때 야채의 즙이나 먹물 버터 등을 넣어 각양각색의 면을 만들어 낸다. 특히나 생生면은 준비한 양, 보관상태, 계절 등에 따라 같은 레시피라도 조금씩 차이가 생겨난다.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는 정확한 계량을 통해 반죽 및 제면을 하지만 현지 이탈리아인들은 대충 눈대중을 통해 반죽을 만들어 낸다. 그야말로 손맛인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의 칼국수처럼 생면 파스타는 손끝의 감각과 눈대중이 중요한 대목이다.
이 반죽을 통해 전동 밀대 혹은 밀대로 밀어내어 스파게티, 탈리아텔레, 라자냐, 타야린 등의 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이 반죽을 얇고 길게 뽑아 내고 속을 채워 토르텔리니, 아뇰로티, 라비올리 등의 만두형의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들어가는 속 재료는 치즈, 고기, 야채, 해산물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재료들이 채워지곤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건乾면과 생生면들은 토마토소스, 오일소스, 버터소스, 크림이 첨가된 소스, 육수를 이용한 소스 등 수많은 소스와 재료들과 합쳐지게 된다.
소스에 삶은 면을 넣어 다시 가열하여 소스에 면이 베이게 하는 조리법, 삶아 놓은 면에 만들어진 소스를 부어 가볍게 비벼내는 조리법, 소스와 면을 섞어낸 후 오븐에 구워 내는 조리법 등 한그릇의 접시가 완성될 때까지 수많은 선택이 필요하다. 잘 삶아 낸 스파게티와 올리브유만 버물어 내는 값싼 요리부터 트러플을 면 반죽에 넣고 면을 만든 후 요리해 접시에 담아내고 다시 트러플과 금가루까지 듬뿍 뿌려낸 요리까지 파스타는 가격까지 천차만별이다.
생生면 파스타는 건(乾)면에 비해 더 많은 공정과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재료를 정성껏 반죽하고, 쉬었다가 다시 반죽한다. 하지만, 그 공정에 드는 인건비와 노동력 때문에 생生면 파스타를 주력으로 하는 레스토랑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 친구들’을 중심으로 생生면 파스타 레스토랑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N개의 목적, N개의 취향을 장착한 MZ세대들이 한 가닥 한 가닥 장인정신이 깃든 생生면 파스타 미식 카테고리를 부흥시키고 있다. 파스타 생生면 오마카세, 생生면 파스타 Bar 등 다채로운 구조의 레스토랑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 만그릇의 파스타를 만들어 냈다. 매일매일 면을 반죽하고 삶아 내고 반복함이 어쩌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조금 덜 익어도 좋고 조금은 많이 익어도 좋다. 파스타 한그릇을 휘파람을 불며 준비하는 하루는 당신에게 일상의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주방에서 파스타를 만들며 그 때 그 이탈리아의 소리들을 기억한다.
“아침마다 들려오던 본조르노!
손님이 들어오면 홀에서 들려오던 차오~보나세라!
깜짝 놀라 소리치며 하는 맘마미아~!
그리고 나의 이름 레오나르도!”
그 중에서 가장 그리운 친구는 지금 그 곳에 없는 나의 자전거 로시난테! 하지만 기억한다.
로시난테와 함께 했던 나의 이탈리아, 나의 파스타!
글 이재훈 셰프
이탈리아 요리 명문인 ICIF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현지 식당뿐만 아니라 국내 유명 식당에서 경험을 쌓았다. 또한 각종 쿠킹 클래스와 행사뿐만 아니라 잡지와 방송국에서 섭외 1순위로 꼽을 만큼 다양한 재능과 요리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재훈 컴퍼니(까델루뽀, 에노테카 친친, 비스트로 친친, 진심선농탕)의 대표로 있다.
효자동의 맛집을 꼽으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까델루뽀’는 이재훈 셰프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식당이다. 특이하게 한옥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하고 있는 그의 요리를 먹어 본 이라면, 누구나 빙그레 미소를 띠며 행복한 맛이라고 엄지를 세운다.
SBS 「웰빙 맛 사냥」 / KBS 「성공예감」 / 올리브TV 「글로벌 테이스티로드」 / KBS 「생생 정보통」 / MBC 「생방송 오늘 저녁」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 EBS 「최고의 요리비결」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부산원아시아 페스티벌 초청 셰프 / 한국 장사랑 페스티벌 초청 셰프 / 세계 뮤직 푸드 페스티벌 초청 셰프 / EU SPS 초청 셰프 / 에이미쿠킹, 현대카드, 포잉 쿠킹 클래스 강의 / 세종대 초빙 강사 / LG 시그니처 키친 헤드 셰프 / 평창 VIP 디너 셰프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