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정의하기 쉽지 않다. 기름에 튀긴 것도 국수이고, 삶은 것도 있으며, 삶아서 구운 것도 국수이기 때문이다. 국수를 ‘물에 붙든다(掬水)’고 해서 국수라고 하지만 실은 더 다채로운 조리법이 있다. 심지어 중국 남부에 가면, 국수를 삶아서 건조하고, 그걸 다시 튀겨서 전분질의 소스를 얹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 음식이 일본 나가사키에 전래되어 ‘사라 우동’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국수라고 하면 어떤 경우이든 “밀가루 반죽을 해서 길게 뽑은 것”이라는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면’이라는 개념에는 심지어 빵까지 포함한다. 즉 밀가루 같은 가루를 빚어 만드는 건 다 면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국수를 우리 민족이 대대로 먹던 오래된 면이라고 인식한다. 즉, 소면 등의 잔치 국수용 국수를 가리킨다. 스파게티, 짜장면, 라자냐, 우동 등은 국수라기보다 그 고유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또 조리법도 물국수(잔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정도를 포함하며 그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길게 뽑은 면”은 다 국수이며, 이미 우리 음식생활에 깊게 들어와 있다. 젊은 세대는 그 폭이 더 넓어져서 학교 급식에 스파게티가 ‘반찬’으로 나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 세대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마카로니 무침 같은 것이다. 이 것은 국수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지만, 넓게는 면에 들어간다. 이탈리아의 면이다. 이것을 물에 삶아서(국수), 마요네즈 소스로 버무려서 밑반찬으로 먹었다. 지금도 회사 급식 등에 흔하게 나온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면 아주 신기해하고, 더러는 황당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면, 즉 국수 요리는 아주 스펙트럼이 넓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오븐과 솥의 차이가 빵과 국수의 차이
대개 빵은 국수와 서로 대척점에 놓고 본다. 빵은 반죽해서 길게 뽑지 않고 뭉친 후 부풀리는 형태이고, 국수는 앞서 말한대로 주로 삶아서 먹기 때문이다. 밀이 인류의 주식이 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에 이미 밀을 경작한 흔적이 있고, 그 전에는 야생 밀을 훑어서 구워서 먹었을 것이다. 점차 밀은 빻아 가루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인류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동안 나온 기술이다. 밀을 빻아서 물에 탄 후 죽을 만들어 먹으면 소화도 잘 되고 맛도 좋았다. 그러나 토기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유약이 발명되기 전이어서 토기로는 보관은 가능해도 물기 있는 죽을 끓일 수는 없었다. 금속문명이 시작되면서 죽을 끓이게 되고, 미각이 더 발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밀을 빻아서 가루를 얻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금도 밀 분쇄는 쌀 도정과 달리 아주 어렵다. 곱게 빻아야 하는데, 이는 아주 고단한 일이다. 하여튼 밀을 껍질 벗기고 빻아 가루를 내어 처음에는 죽을 먹다가 ‘우연히’(?) 빵을 발견하게 되었다. 밀가루에 물을 타서 두었는데 공기 중에 있는 이스트가 붙어서 부풀었던 것이다. 이것을 화덕에 구웠더니 맛이 좋았다, 는 것이 가설이다. 최초의 제빵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국수는 중동 지방에서 처음 발명되었다고 전한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곳을 통해서 국수는 이동하는 상인들의 비상식량으로 쓰였다. 즉 국수를 만들어 말린 후 휴대하고 다니면서 물이 있으면 끓여 먹었다. 이것이 유럽과 아시아에 모두 전해졌다. 이탈리아 스파게티도 아마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났을 것으로 본다. 아시아는 보통 중국을 통해서 한국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하여 동서양에 각기 국수문화가 생겼는데, 유럽에서는 난방 등의 문제로 국수보다는 빵이 더 발달하게 되었다. 즉, 방에 입체적인 오븐 화덕으로 난방을 하는데, 이는 빵을 굽기에 적당하다. 처음 오븐은 개방형이었고, 점차 폐쇄형으로 만들면 빵을 더 빨리 맛있게 구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오븐에는 고기를 넣어 오래 구워 먹는(로스트) 요리도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빵과 고기를 중심으로 하는 식사 관습과 맞았다. 국수가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별로 퍼지지 않은 까닭이다. 반면 아시아는 오븐을 쓰는 관습이 별로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국수를 많이 먹게 됐다. 특히 중국의 북구, 한국, 일본 등에서 국수가 발달했다. 밀이나 메밀 등이 구하기 쉬었기 때문이다.
수제비가 국수에 밀린 이유
그렇다면,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하여 끓여 먹는 것은 수제비 같은 형태도 있는데 왜 만들기 어려운 국수가 훨씬 발달했을까. 그것은 결국 맛이다. 국수는 수제비보다 더 많은 양념을 움켜쥘 수 있다. 국수가 양념(소스, 육수)과 접촉하는 표면적이 수제비보다 훨씬 더 넓기 때문이다. 수제비도 별미로 먹지만, 국수가 대세가 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도 굵은 면보다는 얇은 면, 가느다란 면이 더 많다. 이것 역시 빨리 삶아서 연료를 절감하는 것 외에 맛과 관련된 이유도 있다.
국수는 모양이 비슷해 보이지만, 절묘한 맛의 물리적 과학이 숨어 있다. 우선 표면 문제다. 국수를 거칠게 뽑아야 더 많은 양념을 묻힐 수 있다. 그래서 고급 스파게티는 청동으로 된 장비를 쓴다. 청동은 표면이 거칠어서 그 장비를 통과한 스파게티의 표면도 거칠다. 또 국수의 단면 모양도 영향을 준다. 일본의 메밀국수인 소바, 사누키 우동의 단면은 날카롭게 직선으로 잘려 있다. 칼이나 절단기로 썰기 때문이다. 이 날카로운 면이 식도를 지날 때 자극을 주기 때문에 더 맛있다고 일본 미식가는 말한다. 실제로 이들 가게에 가서 단면을 유심히 보시기 바란다. 칼국수도 그런 국수의 일종이다. 칼로 썰었으므로 단면이 직각으로 잘려 있다. 특히 된 반죽을 하면 그 효과가 더 강하다. 맛이란 꼭 화학적인 맛만 있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촉각으로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국수는 모양이 비슷해 보이지만, 절묘한 맛의 물리적 과학이 숨어 있다. 우선 표면 문제다. 국수를 거칠게 뽑아야 더 많은 양념을 묻힐 수 있다. 그래서 고급 스파게티는 청동으로 된 장비를 쓴다. 청동은 표면이 거칠어서 그 장비를 통과한 스파게티의 표면도 거칠다. 또 국수의 단면 모양도 영향을 준다. 일본의 메밀국수인 소바, 사누키 우동의 단면은 날카롭게 직선으로 잘려 있다. 칼이나 절단기로 썰기 때문이다. 이 날카로운 면이 식도를 지날 때 자극을 주기 때문에 더 맛있다고 일본 미식가는 말한다. 실제로 이들 가게에 가서 단면을 유심히 보시기 바란다. 칼국수도 그런 국수의 일종이다. 칼로 썰었으므로 단면이 직각으로 잘려 있다. 특히 된 반죽을 하면 그 효과가 더 강하다. 맛이란 꼭 화학적인 맛만 있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촉각으로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글 박찬일 셰프
1965년 서울 출생.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서울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와 종로의 ‘광화문 몽로’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광화문국밥’에서 국밥과 냉면을 팔고 있다.
<한겨레 신문>, <경향신문> 등에 음식 칼럼을 연재 중이며 <스님, 절밥은 왜 그리 맛이 좋습니까>, <미식가의 허기>,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출판하였다.
글 박찬일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