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가장 이상한 음식을 꼽으라면 냉면이 꼭 순위에 든다. 차가운 면이 외국에는 없는 데다가, 이도 저도 아닌 닝닝한(?) 국물을 외국인이 이해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거다. 아이들도 대개는 평양냉면 맛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달지도 않고, 뭐 뚜렷한 맛의 족적이 없는 까닭이다.
여름에 장사진을 치는 집은 일단 세 군데다. 콩국수, 삼계탕(주로 복날), 그리고 냉면집이다. 앞의 두 요리와 달리 원래 냉면은 겨울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평양과 서울을 중심으로 냉면집(또는 냉면 메뉴가 있는 집)이 늘면서 점차 여름 음식으로 변해갔다. 물론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평안도)의 겨울 명물이었다. 왜 겨울일까.
우선 메밀이다. 메밀은 봄메밀, 여름메밀이 있지만 대개 초여름 뿌려서 늦가을, 초겨울에 수확한다. 그러니 겨울에 먹기에 알맞다. 한여름까지 메밀이 품질을 유지할 수도 없거니와, 그때까지 남겨놓기도 어려웠다. 왜? 춘궁기 거치면서 그 좋은 곡물을 여름에 먹자고 남길 형편이 아니었다.
원래는 겨울에만 먹던 음식, 여름의 왕이 되다.
둘째, 냉면은 시식(時食)이다. 계절음식, 그것도 겨울에 먹는 관습이 있었다. 메밀이 겨울에 좋고 그 것을 동치미나 김장한 심심한 김치에 섞어 먹었던 것이다. 흔히 냉면의 오리지널로 꿩을 드는데, 그것은 겨울이 되어야 사냥이 가능한 조류였다. 돼지든 뭐든 잡는다 하면 겨울이 제격이기도 했다. 상하지도 않고, 돼지 잡을 만큼 심리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게 겨울이었으니까.
다음으로는 냉면의 본질이다. 차가운 국수이니, 얼음이야 차가운 육수(김칫국이든 뭐든)가 있으려면 겨울밖에 없었다. 여름엔 얼음을 구하기 어렵고 비쌌다. 점차 제빙기가 나오고, 저장 얼음을 파는 이들이 생기고(대동강 얼음을 썰어서 왕겨와 가마니로 덮어 지하에 저장했다가 여름에 시중에 파는 장사꾼들이 있었다) 하면서 여름에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남한의 실향민들은 겨울 냉면이 진짜라고 한다. 초기에는 겨울밖에 손님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근처에 사는 이북 실향민만 왔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먹는 냉면은 과연 얼마나 옛날과 비슷할까. 옛날 조리법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메밀면을 내고, 육수(고깃국, 김칫국이나 동치미, 또는 두 개를 섞은 것)에 말아내는 것이 기본이다.
1920, 30년대에 이른바 ‘조선료리전문가’인 홍승원씨라는 여성이 활약했다. 동아일보 등에 “가튼 재료로 더 맛있게” 같은 코너를 진행했다. 이 양반의 냉면 레시피를 소개 해 본다. 그 중에 재료만 우선 이렇다.
“국수, 정육, 편육, 제육, 오이, 배, 석이, 계란, 잣, 실고추, 식초, 설탕, 간장, 기름, 파, 깨소금, 후추.”
특이한 건 ‘육’을 썰어서 볶은 후 장국(육수)를 내라고 하는 점이다. 기름에 볶은 재료가 올라가고, 조리법이 상당히 복잡하다. 이것이 서울냉면이었을까. 설탕이나 꿀을 넣어 달라면서 배를 얹은 것은 ‘고종냉면’이라고 하여 서울서 인기가 있었다. 고종이 좋아한 냉면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식 냉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통적으로 평양냉면은 더 간결했다. 특히 겨울에 먹는 경우가 많아서 김칫국이나 동치미가 필수였다. 점차 여름음식으로 변하면서 김치 종류를 넣지 않아도 냉면이 되었다. 해방 전부터 영업하던 서울 최고(最古)의 냉면집이 바로 우래옥이다. 이 집은 사철 냉면을 내면서 오직 고기로만 육수를 낸다. 김칫국을 섞지 못한다. 하루 천 그릇 이상, 많으면 2천 그릇 이상 파는 냉면에 넣을 김칫국이나 동치미를 한여름에 조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한 것이다. 그래도 흔적은 남아 있다. 백김치를 한 두 쪽 꼭 얹어 준다.
냉면에 대해 참견하는 면 스플레이너의 시대
평양냉면이 갑자기 서울사람들에게서 유행한 건 아니다. 요새는 ‘면 스플레이너’(냉면에 대해 이것저것 참견하는 이)이니, ‘평뽕’이니 하는 자극적인 말이 돌 정도로 유명하지만 이미 일제강점기 이전에 서울에서는 냉면이 팔렸다. 일제강점기에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더 유행하고, 태평양전쟁시기에 물자부족으로 잠수했다가 해방 후 다시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는 중간에 몇몇 냉면집들이 명멸하고 낭포면옥, 1980년대에 을지면옥과 필동면옥, 평양면옥 등이 생기면서 백가쟁면의 시기를 맞게 된다. 일부 실향민의 향수 음식으로 유행하면서 동시에 서울을 근거로 하는 중산층과 식도락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오장동과 광장시장의 함흥냉면집들도 함께 번성했다.
결정적으로 냉면집들이 성장하게 된 건 우리 경제성장과 맞물려 있다. 외식시장이 거지면서다. 1990년대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동호회와 블로그가 유행하자 더욱 시장이 커지고 애호가들이 늘었다는 게 정설이다.
작년, 올해 서울에는 참 많은 평양식 냉면집이 문을 열었다. 전통의 명가들과 신흥 세력들이 합쳐서 시장을 크게 늘렸다. 냉면은 평양 일대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서울이 가장 큰 시장이다. 일본, 미국, 중국 등 우리 동포와 연결된 곳은 또 그쪽의 냉면집들이 성업한다. 뭐랄까. 냉면은 이제 한민족의 혈통에 흐르는 육수라고나 할까.
글 박찬일 셰프
1965년 서울 출생.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서울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와 종로의 ‘광화문 몽로’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광화문국밥’에서 국밥과 냉면을 팔고 있다.
<한겨레 신문>, <경향신문> 등에 음식 칼럼을 연재 중이며 <스님, 절밥은 왜 그리 맛이 좋습니까>, <미식가의 허기>,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출판하였다.
글 박찬일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