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 뚝딱 비우면 속 든든하고 뜨뜻한 ‘잔치국수’와 매콤한 양념과 매끈한 면발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비빔국수’. 이렇게 맛이 서로 다른 국수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둘 다 값싸고 푸짐한데다 소면을 사용하니, 언뜻 달라보이지만 알수록 공통점 많은 형제 같기도 하다.
과거 비빔국수 양념은 간장, 잔치국수 국물은 소고기
비빔국수는 ‘동국세시기’ ‘시의전서’ ‘부인필지’ 같은 조선시대 문헌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한민족이 즐겨 먹은 면요리다. ‘국수비빔’ 또는 ‘골동면(骨董麵)’이라고도 불렀다. ‘골동’이란 뒤섞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비빔밥을 예전엔 골동반(骨董飯)이라고 불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벼 먹는 국수이면 그 어떤 종류이건 상관 없이 비빔국수라고 부를 수 있지만, 과거에는 비빔국수 양념으로 주로 간장을 사용했다.
문헌에 나오는 비빔국수 만드는 법은 대개 이러하다. 소고기를 양념해 볶고, 오이는 채썰어 소금을 뿌려 절였다가 헹구어 꼭 짜서 참기름에 볶고, 표고버섯은 불리고 채쳐 간장과 참기름에 볶는다. 마른 국수를 삶아 건져 물기를 뺀 다음 준비해둔 재료와 섞고 간장, 참기름, 깨소금, 설탕을 넣고 비벼 그릇에 담고 달걀지단, 실고추, 볶은 섞이버섯 따위를 고명으로 올렸다.
잔치국수는 국수장국, 온면(溫麵)이라고도 했다. 장수한다는 축원을 담아 길(吉)한 일 그러니까 잔치를 벌일 때 대접했다. 여기서 잔치국수란 이름이 나왔다. 혼인잔치 음식으로 특히 중요했지만 돌상이나 제상에도 올리는 게 관례였다.
소고기 장국을 끓여 기름을 깨끗하게 걷어낸 맑은 국물에 국수를 말았다. 거기에 달걀지단과 석이채, 실고추, 호박이나 파.미나리 따위 나물을 웃기로 얹었다. 흰 국수와 노란 지단, 검은 석이채, 붉은 실고추, 푸른 채소가 어울려 오방색이 되도록 한 것이다.
대중화 계기 된 6.25전쟁과 미국 밀가루 원조
비빔국수건 잔치국수건 국수 재료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으나, 메밀로 많이 만들었다. 메밀이 비교적 흔했기 때문이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맛보긴커녕 보기도 어려웠다. 한반도는 서늘하고 건조한, 밀이 잘 자라는 재배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고려에는 밀이 귀해 성례(成禮)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고 했고, 조선 후기 편찬된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에는 ‘국수는 본디 밀가루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든다’고 나온다. 밀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사치재였다. 국수 자체가 잔칫날이나 먹던 귀한 음식이지 요즘처럼 늘상 먹을 수 있는 흔하고 값싼 음식이 아니기도 했다.
한국의 국수문화는 6.25전쟁을 거치며 밀국수 중심으로 혁명적 변환을 한다. 일제강점기 밀가루 생산과 소비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서긴 했다. 조선총독부는 식량 증산을 위해 소맥(小麥)을 우량 품종으로 심도록 권유했다. 특히 1930년대 말 전쟁 체제에 돌입한 일제가 혼식을 장려했고, 연간 200만 석의 밀이 한반도에서 생산됐다.
하지만 국수가 지금처럼 흔한 먹거리가 된 계기는 미국의 구호용 밀이었다. 1956년 미국의 PL480호에 따라 원조 소맥이 11만4000톤이나 무상으로 들어왔다. 그토록 귀하던 밀이 흔하디 흔해졌다. 1959년 국내에 이미 22개 제분공장이 가동되면서 연간 가공능력이 130만 톤에 달하게 되었고, 밀가루를 이용한 분식이 본격적으로 대중음식으로 자리잡는다. 이어 1960년대 중반 쌀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분식 장려운동을 펼치면서 국수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전통 잔치국수의 현대적 계승, 구포국수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도 이때 현재의 맛과 모양을 갖추게 된다. 우선 잔치국수와 비빔국수에 사용되는 국수의 재료가 밀로 통일되다시피 한다. 원래부터 국수 재료로는 밀가루만한 것이 없었는데, 가격까지 메밀이나 감자보다 훨씬 싸졌으니 밀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다. 밀국수 중에서도 소금을 넣고 기름을 발라 가늘고 길게 뽑은 소면(素麵)이 대세가 된다.
비빔국수는 양념이 이전까지 주로 간장에서 고추장으로 바뀌었다. 음식 전문가들도 언제 어떻게 간장에서 고추장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나, 더욱 달고 맵고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쪽으로 한국인 입맛이 변하면서 비빔국수 양념도 간장이 고추장에 주도권을 내주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잔치국수 국물의 재료로는 멸치가 소고기 등 다른 재료를 압도하게 된다. 멸치는 100년 전만 해도 육수 재료로 쓰이지 않았다. 일부 내륙지역에선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씁쓰름한 내장 맛 때문에 지금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멸치를 국물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때다. 일본에서는 국물과 사료로 멸치 수요가 많았다. 수출되지 못한 멸치가 조선에서 육수용으로 팔려나갔다. 해방 이후 일본과의 국교 단절로 수출이 막히자 전량 국내 소비로 전환됐다. 서민들은 자연스럽게 싼값에 시중에 풀린 멸치를 국물 재료로 선택했다.
특히 부산, 통영, 김해, 마산 등 멸치가 많이 잡히는 경남 일대에서 멸치 국물을 사용한 잔치국수가 성행했다. 이 경남 일대에서 먹는 잔치국수의 완결형이 바로 ‘구포국수’이다. 부산 서쪽 끄트머리 김해로 넘어가기 직전 낙동강 하구에 있는 구포에는 국수공장이 많았다. 구포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섞인 짭조름한 바람과 풍부한 일조량이란 조건 덕분에 쫄깃하고 쉬 불지 않는 국수의 생산지로 이름 높았고, 이곳 소면은 아예 ‘구포국수’란 이름으로 브랜드화됐다.
질 좋은 구포국수에 질 좋은 멸치로 뽑은 국물을 더하니 맛 좋은 잔치국수가 탄생할 수밖에. 구포국수는 경상도 사람들이 ‘정구지’라고 부르는 초록빛 부추와 검은 김, 갈색의 참깨, 노란 단무지, 붉은 양념장을 올린다. 지단과 석이채, 실고추, 채소로 오방색을 맞춘 과거 잔치국수의 현대적, 경상도적 변형이다. 문화 유전인자란 얼마나 지독하게 강렬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최고의 구포국수를 낸다고 꼽히는 가게는 구포에서 낙동강을 너머 김해 대동마을에 있는 ‘대동할매국수’이다. 메뉴는 ‘국수’ 딱 하나다. 주문하면 갓 삶은 소면에 부추와 김, 깨, 단무지, 양념장만 스텐레스 대접에 담겨 나온다. 멸치 육수는 딸려 나온 양은 주전자에 담겨있다. 뜨끈뜨끈한 육수를 부으면 진한 멸치향이 피어오른다. 여기에 정신 확 들도록 매운 땡초를 더하지 않는 경상도 사람이 드물다. 멸치 내장의 쌉싸래한 맛이 도는 깊고 구수한 국물에 땡초가 들어가니 한층 경쾌하다. 구포시장 ‘이원화구포국시’, 부산 금정구 ‘구포촌국수’, 경남 밀양의 수제 소면 제조장 ‘수산국수’ 맞은편에 있는 ‘대복식당’도 구포국수 명가(名家)로 꼽힌다.
경기불황으로 두 번째 전성기 맞은 비빔국수와 잔치국수
국수는 1980년대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다양한 먹거리가 생겨나면서 차츰 외식문화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러다 경기불황이 닥치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수를 간판 메뉴로 내세운 식당이 늘어났다. 잔치국수와 비빔국수가 두 주인공이다. 비싸지 않으면서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보다 더 경쟁력 있는 메뉴는 드물다.
비빔국수 유행을 주도한 건 경기도 연천에 있는 식당 ‘망향비빔국수’가 큰 역할을 했다. 사발에 소면을 담고 새빨간 국물을 흥건하게 끼얹어 낸다. 과거 비빔국수보다 국물이 훨씬 묽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풀면 국수가 양념과 쉽게 섞인다. 야채수를 넣고 만든 비빔장이 톡 쏘면서도 칼칼하고 달콤해 은근히 중독성 있는 맛이다. 비비기 귀찮거나 고추장의 텁텁한 맛을 싫어하는 이들이 꽤 많은데, 이를 망향비빔국수에서 해결하면서 히트를 쳤다. 요즘 인기인 비빔국수집들은 모두 이 식당 스타일을 따른다.
망향비빔국수와 스타일이 바르면서 인기를 끄는 가게도 물론 많다. 서울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있는 ‘영일분식’은 큼직하게 찢은 김치와 썰지 않은 상투를 그대로 넣어 투박하게 무쳐준다. 양념은 고추장이 아닌 간장과 고춧가루로 맛을 내 칼칼하면서도 깔끔한다. 여의도 ‘진주집’은 콩국수로 유명하지만 쫄면처럼 쫄깃한 면발과 매콤새콤한 양념의 조화가 좋은 비빔국수도 맛있다. 제일평화시장 ‘비빔국수집’은 눈물 콧물 쏟으며 먹을만큼 맵지만 희한하게 자꾸 기억이 난다.
잔치국수 잘하는 가게는 경남 말고도 많다. 서울 용문동 ‘맛있는 잔치국수’, 공릉동 ‘소문난 멸치국수’, 의정부 ‘부흥국수’, 논현동 ‘미정국수’, 중앙시장 ‘할머니국수’, 남대문시장 ‘일류분식’, 인왕시장 ‘언조국수’, 망원동 ‘원조잔치국수전문’, 행주산성 ‘원조국수집’, 운길산 ‘처음처럼’ 등 대강 떠오르는 것만 꼽아도 이만큼이나 된다.
글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