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국수주의자 박찬일 찬바람에 흘린 땀 ‘모리국수’ 후루룩
어려서 기억나는 한 장면. 엄마가 저녁 준비를 마쳤다. 밖에서 놀던 작은 누이를 불러오라고 하셨다. 나는 집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누나, 엄마가 우동국수 먹으래.” 엄마에게 매를 맞았다. 끼닛거리 모자라 우동국수 먹는 걸 동네방네 소문냈다는 거였다. 진실을 말하면 원래 역풍을 맞는 법이다. 우동국수란 우리가 아는 그런 국수가 아니다. 소면과 같은 반죽이되, 넓적한 우동 면처럼 만들었다.충남 예산의 옛날식 제면소인 ‘쌍송국수’에 갔더니 같은 면이 있었다. 반가웠지만, 사지 않았다. 먹고 싶지 않아서다. 가는 국수, 즉 소면이나 중면은 맛있는데 왜 우동국수는 그렇게 싫었을까. 우선 이 국수로는 별미인 비빔국수를 만들지 않는다. 대개 신 김치를 넣고 푹 끓이는 용도다. 그야말로 끼니를 해치울 때 엄마가 삶았다. 걸쭉한
박찬일 셰프의 푸드오디세이 : 치명적인 물리력의 맛
노도고시라는 말이 있다. 일본말에 노도는 후(喉), 즉 목구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국수류를 먹을 때 목이 얼얼하도록 빡빡하게 먹는 걸 뜻한다. 주로 메밀국수(소바)를 먹을 때 그런 표현을 쓴다고 하는데, 어떤 탐미적인 이는 이를 ‘교살의 맛’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맛이나 미학에서 극도의 퇴폐미를 강조하는 걸 즐기는 일본인다운 해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국수를 먹을 때 좀 넉넉하게 양을 밀어 넣으면(오래 씹지 않고) 이런 노도고시의 맛이 느껴진다. 우리말에는 과문한 탓인지 적당한 표현이 없는 듯하다. 노도고시를 거론하는 일본인 말고 내 친구도 그런 유의 쾌감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눈물이 나오게 목이 메어야 맛있다”고 말한다. 국수나 짜장면을 먹을 때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런 건 아마도
박찬일 셰프가 들려주는 세계 누들 스토리 : 스파게티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손으로 먹던 스파게티 스파게티와 파스타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건 이제 대개 알게 됐다. 파스타 >> 스파게티란 뜻이다. 파스타는 워낙 종류가 많다. 대략 200여 종이 지금도 유통된다. 파스타는 지방별로 다채롭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먹는 스파게티는 주로 남부 지방에서 먹었다. 점차 북부에도 퍼져 나갔지만, 여전히 북부에서는 더 넓적한 면을 좋아한다. 파스타는 생면과 건면으로도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 국수와 다른 바 없다. 생면은 유통기한이 짧고, 대개는 걸쭉하고 진한 소스랑 어울린다. 건면은 유통기한이 길다. 보통 3년 이상인데, 실은 10년이 되도 상하는 법이 드물다. 수분함량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른 파스타를 옛날 사막을 건너던 대상(隊商)들도 가지고 다녔다. 가볍고, 안 상하고, 맛도
‘국수’ 선물의 의미
‘국수’는 귀한 음식 최근 천 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택시운전사’의 아주 중요한 장면에 잔치국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작은 버스터미널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가볍게 한 그릇 뚝딱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하고 값 비싸지도 않은 잔치국수는 우리가 아는 한 서민의 음식이었다. 국수 메뉴를 지금처럼 흔하게 먹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6.25 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밀가루를 원조 받았는데 그러면서 국수가 소박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밀이 잘 자라지 않아 밀로 만든 음식은 생일, 회갑연, 혼례 등 경사스러운 날에 손님을 대접하던 귀한 음식이었다. 고서(古書)들을 보아도 황제나 고관의 생일잔치 때에나 국수를 먹었다는 기록들이 자주 보인다. 과연 밀가루가 귀했기 때문에 밀로 만든 국수가 귀한 음식이었을까?
한겨레신문-국수주의자 박찬일 – 미트 소스에 버무린 넓적한 생면 파스타
이탈리아하면 역시 피자와 파스타가 갑(?)이다. 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며, 일상의 음식이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내가 이탈리아에 갈 때 아내에게 했던 약속이 있다. “스파게티 세 개만 배워 올게. 돌아와서 국수 장사하자.” 나는 지금처럼 뭐 거창한 요리사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동이나 짜장면처럼 간단한 음식을 배워도 개업하는 걸로 생각했다.(우동과 짜장면도 깊게 들어가면 쉬운 음식은 아니다. 대체로 간단히 배워서도 그럭저럭 흉내는 낼 수 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아내도 그러라고 했다. 그 세 가지가 뭐냐면 크림 스파게티, 토마토 해물 스파게티, 미트 소스 스파게티였다. 그런데 이탈리아 요리학교에 이 세 가지 스파게티가 커리큘럼에 없는 것이었다. 그저 한국에서 먹는 스파게티였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런 스파게티를 먹지 않았다.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음식 이야기 – 일본 모리오카 3대면
일본 소도시 모리오카에 냉면집만 400곳1954년 함흥 출신 한국인이 처음 선보여한국 냉면처럼 시원한 육수에 달걀·편육 얹어 쫄깃한 면과 사골로 우려 낸 육향 '일품''한입 분량' 완코소바·'일본 짜장면' 자자멘도모리오카 3대면으로 불려 함께 맛볼만 이야기는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혼슈의 북단, 이와테현의 도시 모리오카(盛岡). 이 도시 외곽의 한 식당. 나는 당시 ‘일본 방문의 해’를 맞아 이 지역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안내자가 말하기를 “이곳에 한국식 냉면이 있습니다. 그곳을 취재합니다”라고 했다. 한국 냉면이? 동포가 많은 오사카와 도쿄도 아니고 멀고 먼 모리오카에? 변용웅 씨가 운영하는 ‘뿅뿅사’라는 냉면집에 들어섰다. 거기서 처음으로 이른바 ‘모리오카 냉면’을 먹었다. 특이했다. 쫄깃한 밀가루와 전분면, 묵직하고 진한 육수, 깍두기를 올린 고명까지. 우리가 아는 평양냉면과는
평냉 마니아들, 여기 아시나요
평양냉면은 밍밍하고 무미(無味)한 음식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평양냉면의 심심함은 섬세함으로 재인식되고 있다.최근 개업한 서울과 수도권 일대 냉면집 중 음식 전문가들 사이에서 괜찮다고 꼽히는 다섯 곳을 선정했다. 생생한 비교를 위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식했다. 요즘 잘나가는 평양냉면집 5곳, 직접 먹어봤다 평양냉면은 오랫동안 비주류 음식이었다. 같은 이북 출신이지만 함흥냉면은 매콤함과 달콤함이라는 대중성을 무기로 대한민국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외식 시장의 주류로 편입했다. 반면 평양냉면은 밍밍하고 무미(無味)한 음식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억센 서도(평안도·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나이 지긋한 실향민들의 음식으로 여겨졌다. 이름난 평양냉면집은 6·25를 전후로 월남한 서북 출신들이
박찬일 셰프가 들려주는 세계 누들 스토리 : 냉면, 아 냉면
겨자와 식초를 넣으면 평양식이 아니다? 북한에 가서 풍물과 관광지를 취재해 유튜브에 올리는 서양인들이 있다. 그 비디오를 보면 평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채로운 외식거리가 있다. 햄버거는 물론이고 피자도 있다. 피자가게의 직원을 인터뷰한 영상은 흥미롭다. 본토의 맛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유학가서 배웠다고 자랑한다. 화면에서 보이는 실력은 그다지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식은 맞아 보인다. 냉면에 대해 취재하는 서양인에게 설명하는 관광안내원도 있다. 물론 유창한 영어를 쓴다. 그 장면이 아주 특이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양냉면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개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내원은 육수에 겨자와 식초, 매운 양념을 마구 친다. 그래야 진한 맛이 난다고 직접 먹어본 남한사람의 증언과 일치한다. 북한의 냉면집은 전세계에
글쓰는 셰프 박찬일의 세계음식 이야기 : 중국 ‘납면’을 ‘라멘’으로…세계인 입맛 잡은 일본
발로 밟아 반죽 사누키 우동에서 전통 깊은 소바까지 후루룩~ '면의 천국' 면발 얇은 후쿠오카 포차의 돈코츠 라멘 살짝 덜 익힌 맛으로 서민들 허기 달래 전후 미국의 값싼 밀 공급으로 우동 발전 300~400년 역사 자랑하는 고급 소바집도 일본, 많이도 다녔다. 취재도 많았지만 다른 목적이 있었다. 국수! 면을 먹으러 갔다. 세계 3대 면의 고향이 있다. 한국을 빼면 이탈리아 중국 일본이다. 다양하기로는 중국이 최고다. 일본은 그 압축판으로 보면 된다. 한국의 면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일본에 전해주기도 했다(원진스님이 일본의 소바, 즉 메밀국수를 전한 건 거의 정설이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 유럽의 면 문화를 흡수했다. 그리고 재빨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구를
박찬일 셰프가 들려주는 세계 누들 스토리 : 냉면의 시대, 차가운 육수가 통쾌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가장 이상한 음식을 꼽으라면 냉면이 꼭 순위에 든다. 차가운 면이 외국에는 없는 데다가, 이도 저도 아닌 닝닝한(?) 국물을 외국인이 이해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거다. 아이들도 대개는 평양냉면 맛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달지도 않고, 뭐 뚜렷한 맛의 족적이 없는 까닭이다. 여름에 장사진을 치는 집은 일단 세 군데다. 콩국수, 삼계탕(주로 복날), 그리고 냉면집이다. 앞의 두 요리와 달리 원래 냉면은 겨울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평양과 서울을 중심으로 냉면집(또는 냉면 메뉴가 있는 집)이 늘면서 점차 여름 음식으로 변해갔다. 물론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평안도)의 겨울 명물이었다. 왜 겨울일까. 우선 메밀이다. 메밀은 봄메밀, 여름메밀이 있지만 대개 초여름 뿌려서 늦가을, 초겨울에 수확한다. 그러니 겨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