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면 장인을 찾아서

밀레니얼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들떠 있던 2000년대가 시작된 지 벌써 25년이 지났다. 지금은 Ai와 로봇의 시대, 즉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그런 요즘 새로 시작되는 문화가 낯설지만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는 문화도 있어 아쉽기만 하다.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탕탕 도마를 치며 반죽을 몇 백 개의 갈래로 나누는 ‘수타면’이 그렇다. 옛날 선조들의 문화 유산이 무형 문화재로 전승되어 오듯 그렇게 되려나… 문득 그런 생각에 수타면 장인을 찾기로 했다.
먼저 취재에 나선 이들의 족적을 쫓아 조사를 하였는데 리스트업을 하고 전화를 걸면서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문을 닫았거나 건강상의 더 이상 수타면을 하지 않는다거나, 어떤 사장님께서는 소천(召天)하셨다는 소식도 전해 듣게 되었다. 마음이 바빠지고 발걸음이 빨라지는 이유가 되어 서둘러 공주를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빅데이터를 통해 찾아 본 공주 수타면 맛집은 5곳이었다. 차례대로 방문하여 짜장 짬뽕 탕수육을 취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곳 씩 방문하면서 이번 취재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한성손짜장은 이미 문을 닫았고, 청룡짜장은 임시휴업이다. 수타면으로 유명한 ‘수타’는 건강상의 이유로 쌀면으로 대체한 지 3개월이 되었다고 한다. 김가네 왕짜장도 기계면으로 바꾼 지 1년이 넘었다고 한다.
공주 시내에서 20분 정도 더 내려가면 한적한 이인리 시골 동네에 잡은 노포 중국집 ‘동신원’이 있다. 전화로 취재를 의뢰했을 때는 거절하셨다. 유명해지는 게 부담스럽다는 장인의 고집이었다. 평일 늦은 오후 점심시간이 많이 지난 시간에 찾은 이유이기도 했다. 테이블에 남아 계신 손님들이 떠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가게 안에는 시간이 멈춘 듯 오래 된 오후의 햇살이 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수타면 장인 이규혁 사장님께서 주방에서 나온다. 80세 가까운 나이의 사장님은 마른 체격에 곧은 얼굴로 어쩐 일이냐 말을 섞어 주신다. 얼굴과 손의 주름 사이로 세월과 노고를 새긴 그는 50년 동안 수타면을 고집하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이 애써 찾아 간 날, 몸이 아파서 쉬는 날이었다는 아쉬움이 콘텐츠로 올라올 정도로 수타면을 만드는 작업은 고되고 힘들다. 이규혁 장인의 몸도 벌써 10년 전 암 수술을 겪었고, 다행히도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 보던 그의 아내는 “평소에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그 힘으로 이겨낸 것 같다. 테니스, 탁구, 마라톤, 축구… 뭐든 잘하신다.”고 힘주어 설명한다. 88올림픽 성황봉송 주자로도 활약했다는 장인의 스토리를 자랑한다. 그의 아내도 50년 세월을 주방과 홀에서 함께 해 온 그의 동료다.

툭 튀어 나온 팔목, 씻어도 다 지워지지 않은 밀가루!
이규혁 장인의 손 마디 마디, 주름 하나 하나는 세월과 노고가 새겨진 훈장이다.

고급 생면용 밀가루가 홀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후드는 장인이 매일매일 닦아서 마치 새것과 같이 빛이 난다.
부부의 호흡이 척척 맞는 이 주방은 50년 동안 그들의 무대가 되고 있다.
갑자기 소리가 난다. “탕.탕.탕” 소리를 따라 주방을 기웃대니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다. 춤을 추듯 반죽을 치고 흐름을 따라 면을 가르는 예술적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흔들흔들 장인의 두 팔 사이로 길고 무거운 반죽이 춤추듯 늘어진다. 그리고 도마 위에 치고, 늘어진 반죽을 반으로 접고 또 흔든다.
춤이다. 예술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이다. 사라져 가는 아름다움을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이 곳에서는 탕수육과 간짜장을 주문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거기에 더해 짬뽕, 울면, 수제만두까지 장인의 요리를 맛보려고 주문을 더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탕수육이 나온다. 부먹이냐 찍먹이냐 논쟁이 무의미하다. 부먹이다. 슴슴하기까지 한 그 맛! 옛날 탕수육 그대로다. “부먹 탕수육”을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를 섞은 앞 접시에 “찍먹”한다. 그래야 완성되는 맛이다.
슬쩍 눈가에 묻은 이슬을 감추는 동안 차례로 면요리들이 등장한다. 두께가 일정하지 않은 면발!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지 모르겠다. 얇고 두꺼운 면발을 들어 올리며 장인의 춤사위가 다시 생각난다. 면은 하얀색이다. 마치 칼국수 위에 짜장을 뿌린 듯하다. 울면도 짬뽕도 다 순하다. 뭔가 빠진 것처럼 순하다.
이규혁 장인이 요리를 모두 내어 놓은 후에 하신 말씀은 “힘들어도 나는 수타야! 나 혼자 남았을걸? 수타하는 사람 이제 없어!”
그런데 왜 계속하는가, 힘들지 않으시냐는 우문에 현답을 듣는다. “맛없다는 말, 변했다는 말이 듣기 싫다.”고…
변하지 않는 것이 변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생각난다. 동신원의 간판이 오래 되었지만 낡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서 힘있게 흐르는 수타의 춤사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인의 변하지 않는 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