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면의 원조(元祖) 우육면,
전쟁과 이민이 만든 한 그릇의 역사
네 발 달린 것 중에서 식탁 빼고 다 요리해 먹는다는 곳이 중국이라는 말도 있듯이 중국이 누구나 알고 있는 요리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별의별 진귀한 음식 재료들을 사용하고 일품 요리를 만들어 내는 중국에서 소고기만큼은 딱히 떠오르는 대표 요리가 없다. 만약 있다면 소고기 국수인 란저우 소고기라몐 (蘭州 牛肉拉面) 바로 우육면 (牛肉麵)이다.
우육면은 소고기 육수와 국수 위에 얹은 소고기 편육을 일미로 꼽지만 오히려 면발로 더 유명했다고 한다. 란저우 소고기라몐 (蘭州 牛肉拉面)에서 ‘拉’은 중국어로 ‘라’로 발음되며 늘인다는 뜻이다. 한자어에서 뜻을 찾아보면 ‘치다, 때리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늘리고 때린다’를 합쳐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타면’이 된다. 란저우 라몐의 면발은 점성이 높고 부드러우며 쫄깃하고 탄력이 있다. 20세기 일본의 라멘의 어원이 바로 이 란저우의 ‘拉面’이라는 주장은 이미 역사 문화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져 일반론처럼 쓰이고 있다.
이 남다른 면발의 가장 큰 공헌을 한 숨은 공로자가 있었으니 바로 란저우시를 관통하는 황하(黃河)이며, 그 강물의 특성이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다. 황하의 물은 알칼리 성질을 띄고 있다. 우육면의 면발은 바로 그 알칼리성 물이 밀가루와 만나 만들어진 합작품이다. 알칼리성 물이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면서 반죽의 성질을 바꾸어 놓는다. 글루텐과 알칼리수가 만나 엄청난 신축성을 갖게 된다. 바로 란저우 우육면 면발의 탄생인 것이다.

황하(黃河, Yellow river)
중국의 칭하이성 쿤룬 산맥에서 발원하여 쓰촨성, 간쑤성, 닝샤 후이족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 산시성, 허난성을 지나 최종적으로 산둥성 둥잉시에서 발해만으로 유입되며 5,464km를 흐르는 강이다. 강의 길이에 비하면 수량이 적은 편이고 수량은 심각할 정도로 적어서 건기에는 아예 건천이 될 때도 있을 정도이다.
황하의 수질은 흙탕물 수준으로 이미 1000년 전 기록인 한서에서는 ‘물 1말에 진흙 6되일 정도’라고 기록될 정도였다. 또한 황하는 알칼리성 수질로 글루텐의 신축성을 돕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사진출처 : 나무위키

황하 상류에 위치한 란저우 (출처 : 뚱딴지 부부의 눈치코치 중국여행)
깐수성은 중국대륙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몽골과 신장 위구르와 접경지대에 있고 실크로드의 요지였다.

란저우의 상징이자 명물이 된 우육면 (출처 : 뚱딴지 부부의 눈치코치 중국여행)
기마민족과 우육면
중국 어느 길가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란저우소고기라몐(蘭州牛肉拉麵)은 중국에서 유명한 면요리 중 하나로 란저우 지역의 대표적인 회족(回族, Hui) 음식이다. 회족식 터번을 두른 회족들이 면반죽을 나무 테이블에 두들겨가며 즉석에서 수타면을 뽑아 소고기 국물에 삶아내는 면요리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담백하고, 깔끔한 맛과 풍부한 영양이 특징이다.
오늘날 란저우 우육면은 중국 전역에서 흔히 먹을 수 있지만, 그 유래는 단순한 한족 음식이 아닌 기마민족과 실크로드의 융합에서 시작된다. 란저우는 고대부터 기마민족의 이동 통로이자 실크로드의 요지였다. 서역(西域)에서 온 유목 민족과 상인이 끊임없이 왕래했던 도시로 회족을 통해 중앙아시아 이슬람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흩어져 있지만 주로 북서부 지역에서 살고 있는 후이족들은 중국 체제에 융합된 ‘좋은’ 무슬림으로 환영받아 왔다. 깐수성 회족의 사진 (출처 : Birrter Winter)
후이족이라고 불리는 이 회족 유목민들에게 소고기는 주된 단백질 자원이었다. 또한, 손으로 뽑는 면, 즉 수타 방식의 면은 유목민에게 이동식 요리로 적합했다. 거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향신료(팔각, 큐민, 고수 등)가 더해져 란저우소고기라몐이 탄생했던 것이다. 건조한 중국북방의 기후에서 비롯된 면 요리문화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소고기를 즐기는 이슬람권 문화까지 어우러진 면요리 한 그릇,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육면의 출발이다.
란저우의 우육면을 표현하는 글귀는 ‘一淸二白三綠四紅五黃(일청이백삼록사홍오황)’으로 맑은 탕, 흰 무, 녹색 고수, 붉은 고추기름, 노란 면발을 의미한다. 1915년 란저우 회족인 마바오즈(馬保子)가 요즘 스타일의 우육면을 처음 만들었다는데 ‘聞香下馬 知味停車’ 즉 그 냄새를 맡으면 말에서 내리고 그 맛을 알면 차를 세운다 할 정도의 명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간 우육면
1949년 중국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배한 장개석(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는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 기술자, 상인들을 데리고 대만으로 이주한다. 그 규모는 약 200만 명에 이른다. 이 대규모 이주는 단순한 정치적 이동이 아니라 중국 대륙의 방대한 음식문화, 조리 기술, 지역별 식재료까지 함께 건너온 문화의 이주이기도 했다.
이 중에서도 란저우 우육면 즉 중국 대륙의 소고기 국수 문화는 국민당 군인들의 입맛을 따라 대만으로 넘어왔다. 국민당 계열 이주민들이 모여 살던 ‘眷村(쥐앤춘, 군속촌)’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이민자 공동체이자 문화 보존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군 간부나 병사들을 위한 군 급식소나 작은 식당들이 운영되며 대륙의 향토 요리인 우육면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식사 이상으로 고향을 떠난 이들에게 위안이자 유일한 ‘고향의 맛’이었다.
1960~80년대 대만의 도시화와 함께 우육면은 노점, 간이식당, 전통시장 내 식당을 통해 폭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육면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대만인이 즐기는 보편적 외식 메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정부는 ‘대만 문화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우육면은 ‘대만다움’을 표현하는 음식으로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장개석
장제스 (1887년 10월 31일~1975년 4월 5일), 중화민국의 1.2.3.4.5대 총통
대만 우육면의 대표적인 스타일,
홍샤오 우육면(紅燒牛肉麵)
‘홍샤오 우육면(紅燒牛肉麵)’은 간장, 고추기름, 향신료(팔각, 정향, 회향, 계피 등)를 넣고 진하게 끓인 붉은 국물이 특징이다. 맑고 투명한 육수(청탕) 기반의 본토 스타일과 대비되는 진하고 농후한 맛이 특징이다. 대만식 우육면은 혀가 마비되는 화한(麻) 매운맛보다는 맵지만 부드럽고 감칠맛이 도는 ‘대만식 매운맛’을 지향한다. 맵지만 부드럽고 감칠맛이 도는 맛! 간장과 향신료를 조화롭게 배합해 짠맛·매운맛·단맛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 국물이다.
고기는 주로 양지머리, 사태, 힘줄 등을 사용해 오랜 시간 푹 삶아내 부드럽고 촉촉하다. 두툼한 큐브 형태로 썬 고기가 국물 위에 얹혀 나온다. 거기에 절인 겨자채(酸菜), 청경채, 숙주, 파, 고수, 매운 고추소스(辣油) 등 토핑이 얹어지는데 무거운 육수의 맛을 중화하고 향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대의 대만 우육면은 개인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 대륙 본토 스타일의 맑은 국물(清燉牛肉麵) 스타일도 있고, 치즈·마라·카레 등을 더한 퓨전 스타일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대만 홍샤오 스타일의 우육면
2025년 대만에는 각 도시마다 ‘원조’를 자처하는 우육면집들이 줄지어 있다. 공항에 내리면 ‘대만에 왔다면 반드시 우육면!’이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매년 ‘전국 우육면 경연 대회(全國牛肉麵大賽)’가 개최되며 유명 셰프, 일반 식당, 스타트업 브랜드까지 참가해 비법 레시피와 자기만의 스타일을 겨룬다. 우육면은 이제 대만의 국민 음식, 문화 아이콘, 그리고 소프트 파워의 일부가 되었다. “대만을 알리는 음식 콘텐츠”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뿌리를 더듬어보면 그 안에는 대륙을 떠나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가 깊게 배어 있다. 대만의 우육면은 단지 국수가 아니다. 그것은 1949년이라는 격동의 해에 역사의 경계에 선 사람들, 민족, 신념, 삶의 방식이 함께 떠난 한 편의 서사다. 그리고 그 서사는 오늘도 대만의 어느 식당의 끓는 냄비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란저우 우육면은 란저우를 떠나 대만의 대표 음식이자 문화 아이콘이 되었으며 베이징, 상하이는 물론이고 서울, 파리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언제나 초원과 사막에서 말을 타고 국경을 넘던 민족들, 종교와 생활이 섞이던 실크로드의 시장통에 남아 있다. 기마민족이 남긴 말발굽의 궤적이 지금 세계인의 식탁 위에서 한 그릇의 국수가 되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참고 문헌
Taiwan Panorama (대만 영문 공식 홍보 매체) 〈Taiwan Beef Noodles: A Taste of Home and Heritage〉
Taipei Times – Tracing Taiwan’s Beef Noodle Soup to its Roots
중국 음식문화의 역사 (윤덕노 지음)
다큐멘터리
Flavorful Origins: Lanzhou Beef Noodles (2019) 넷플릭스 오리지널 푸드 다큐

글 박현진 편집인
누들플래닛 편집인
IMC 전문 에이전시 ‘더피알’의 PR본부장이자 웹진 <누들플래닛> 편집인을 역임하고 있는 박현진은 레오버넷, 웰컴퍼블리시스,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코래드 Ogilvy & Mather에서 근무하며 20년 동안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경험했다. 켈로그, 맥도날드, CJ제일제당, 기린프로즌나마, 하이트진로 등 국내외 다수 식품 기업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였으며, (주)한솔에서 브랜드 담당자로 근무한 경력과 F&B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