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정 5대 짬뽕 명가
고춧가루를 사용하면서 짬뽕은 드디어 선명한 붉은빛과 강렬한 매운맛을 갖게 됐다. 육수 재료도 돼지뼈보다 가벼운 맛을 내는 닭뼈와 시원한 맛을 내려고 해산물을 사용하면서 ‘원조’인 나가사키 짬뽕과 확연히 달라졌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신한 짬뽕은 비로소 전국적으로 세를 넓힌다. 그 속도와 파워가 폭발적이었다. 오랫동안 짜장면과 더불어 중식당 식사를 책임지던 ‘우동’을 순식간에 메뉴판에서 몰아냈다.
한국 중식당에서만 볼 수 있었던 메뉴로, 일본 우동과는 전혀 관계 없다. 우동은 나가사키 짬뽕과 국물과 들어가는 재료가 같다. 하지만 재료를 기름에 볶은 다음 국물을 붓고 끓이는 짬뽕과 달리, 처음부터 국물에 넣고 끓인다는 점이 다르다. 볶지 않아 덜 기름지고 담백하다.
전국 중식당을 평정한 짬뽕은 지역별로도 맛이 분화했다. 그리하여 “어디 짬뽕이 최고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더니, 마침내 ‘짬뽕 5대 천왕’이 등장했다. 짬뽕 5대 명가는 모두 서울이 아닌 지방에 흩어져 있다. 혹자는 “5대 짬뽕은 지역별 안배를 거쳐 경기·충청·경상·전라·강원도에서 각 1곳씩 뽑힌 것일 뿐”이라고도 한다. 또는 “조리법이 워낙 달라 이미 짬뽕이 아닌 제3의 음식이 돼버렸다”는 시식평도 있다. 어쨌든 인터넷에서는 아래 다섯 집을 ‘5대 짬뽕’으로 통칭하며, ‘짬뽕 순례기’를 올리는 이들이 그득하다.
01 강릉 교동반점
강원도 강릉 교동에 있는 ‘교동반점’ 짬뽕은 매우 맵다. 매운 고춧가루로 낸 국물과 고명 위에 뿌린 후춧가루가 섞이면서 텁텁하고 뻑뻑하게 맵다. 서울 무교동 낙지볶음 수준이다. 짬뽕이 처음 나왔을 때는 고명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면을 다 먹고 공기밥을 추가로 말아서 다 긁어먹을 때까지 홍합과 바지락, 오징어가 끊임없이 숟가락에 걸려 올라온다. 돼지고기는 다른 집보다 잘게 썰어져 해물들 사이에 숨어있다. 야채를 국물과 함께 오래 삶았는지 매운맛 끝에 단맛이 매달려 있다. 면에는 차지다 못해 떡을 먹는 듯한 쫄깃함이 살아있다.
처음 국수를 뜰 때 시작된 매운맛이 마지막 국물을 훑을 때까지 계속 상승해, 숟가락을 놓을 때 즈음엔 입술 주위 반경 3cm까지 얼얼하다. 하지만 요즘 인기인 ‘불닭볶음면’처럼 ‘폭력적 매운맛’은 아니다. 이 매운맛이 이 집 짬뽕의 핵심인 듯하다.

강릉 교동반점 짬뽕은 홍합, 바지락, 오징어가 가득하고 매운맛이 일품이다.
02 공주 동해원

공주 동해원 짬뽕은 강렬한 첫인상에 비해 맵지 않고 칼칼하다.
충남 공주 ‘동해원’은 토종닭 백숙집처럼 보인다. 중국 음식점의 지리적·조형적 요소를 모두 파괴한 파격적 외양. 메뉴는 짬뽕과 짜장 두 가지로, 각각 ‘면·밥·곱’이라는 하위 메뉴가 있다. 시뻘건 짬뽕이 시뻘건 그릇에 담겨져 나온다.
국물은 빨갛지만 묵직하지 않고 오히려 맑은 편이다. 그 덕에 국물 속에 잠긴 고명이 일부 들여다보인다. 매서운 비주얼에 비해 국물은 그다지 맵지 않고 칼칼하다.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새로운 맛이다. 그러나 국물에 담긴 면이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면의 편차가 심하다는 평가가 있다.
03 군산 복성루
전북 군산 ‘복성루’ 짬뽕은 고명 양에서 나머지 4곳을 압도한다. 홍합과 바지락, 투박하게 썰어져 올라온 돼지고기 살코기, 다리가 통째로 들어간 오징어, 온갖 야채가 수북하게 쌓인 채 나온다.
“이것이 짬뽕이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국물은 칼칼하고 매운 편이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깊은 맛이다. 고명이 워낙 많아 이를 천천히 먹다 보면 국수가 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면의 상태는 좋다.

군산 복성루의 짬뽕은 고명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04 평택 영빈루

평택 영빈루의 짬뽕은 고명과 불맛이 일품이다.
경기도 평택시 신장동 ‘영빈루’ 짬뽕은 비주얼이 가장 평범하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릇에 흔히 보는 색깔의 국물과 국수가 나온다. 잘고 단정하게 썬 돼지고기 고명이 올라온 게 눈에 띌 뿐이다. 하지만 국물과 고명, 면을 순서대로 먹어보면 왜 이곳이 5대 명가에 속하는지 깨닫는다.
국물이 우아하게 맵고 깊다. 국물이 혀에서 목으로, 이어서 뱃속으로 들어갈 때, 먹는 이의 의지가 아니라 국물이 자의(自意)로 묵직하게 밀고 들어간다는 느낌이다. 돼지 살코기와 잘게 칼집 낸 오징어 몸통을 주로 한 고명의 불맛도 훌륭하다. 국물이 적고 면에 매운맛이 잘 배 있어 뒷맛이 매운 편이나 더부룩하지 않고 깔끔하다.
05 대구 진흥반점
대구 ‘진흥반점’ 짬뽕은 맵고 짠 편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에도 테이블마다 얼음물이 놓여 있다. 해물과 돼지고기가 고명의 주를 이루는 것은 다른 명가들과 다를 바 없지만, 숙주나물이 들어가고 부추가 넉넉히 얹어진다. 간간한 국물과 불맛이 풍부한 고명이 어울려 전국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이 집만의 국수 요리가 됐다.

대구 진흥반점의 짬뽕은 숙주나물과 부추가 넉넉히 얹어진다.
이들 5대 명가 외에도 짬뽕 잘하는 식당이 전국에 널렸다. 종류도 삼선짬뽕, 홍합짬뽕, 굴짬뽕, 옛날짬뽕, 냉짬뽕, 고추바지락짬뽕, 부대짬뽕, 크림짬뽕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값비싼 바닷가재를 통째로 올리고 “명품 짬뽕”이라 내세우기도 한다. 짬뽕만 내는 전문 식당이나 자체 상호를 브랜드화 한 짬뽕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짬뽕 전성시대다.

글 김성윤 작가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2000년 입사해 기자 경력 대부분 음식 분야를 취재해왔다.
세계슬로푸드협회가 설립한 이탈리아 미식학대학(UNISG)에서 ‘이탈리아 지역별 파스타 비교 분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커피 이야기’ ‘식도락계 슈퍼스타 32’ ‘세계인의 밥’ ‘이탈리아 여행 스크랩북’ ‘음식의 가치’(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