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빨아올린 면발이 매끄럽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소양지와 사태, 사골로 끓인 국물은 구수하면서도 시원하다. 미소가 입가에 스르르 번진다. 법가에서는 국수를 ‘스님을 미소짓게 만든다’는 뜻으로 승소라 부른다. 스님이 아닌 범인(凡人)도 매혹시키는 음식, 칼국수다.
서울 혜화동 일대에는 칼국수 명가(名家)가 유난히 많다. 이 동네 칼국수집들은 칼국수 면발이 얇고 가늘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호(商號)에 이름에 표준어 국수가 아닌 경상도 사투리 ‘국시’가 들어가는 집이 많다는 공통점도 있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혜화동 칼국수의 뿌리는 경북 그중에서도 안동”이라고 말했다. 이곳뿐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들어가 칼국수 만드는 법을 가르친 ‘소호정’도 안동국시, 즉 안동식 칼국수를 계승했음을 내세운다. 안동 칼국수는 어떻게 서울로 전해졌을까.
안동국수는 ’건진국수’와 ‘누름국수’ 두 가지 스타일
경북 안동 예미정(禮味亭)은 안동에 무수히 많은 종가(宗家) 음식을 맛보록 안동시가 마련한 체험관이다. 예미정 종가음식상설시연장 반장 이정숙씨는 “안동국시는 건진국수와 누름국수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건진국수는 면을 삶아 찬물에 헹궈 대바구니에 건져놨다가 시원한 국물에 다시 말아 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누름국수는 다른 지역 칼국수처럼 면을 삶은 육수에 그대로 말아서 내는 제물국수다.
국수 반죽은 일반 밀가루 반죽보다 노르스름하다. 콩가루를 섞는 게 안동국수의 특징이다. 건진국수나 누름국수나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국수 반죽을 만드는 건 같다. 계절이나 날씨, 그날그날의 습도에 따라 다르지만, 밀가루와 콩가루를 2대1~3대1 정도로 섞는다. 안동에선 예부터 콩 농사를 많이 지었다. 그래서 콩가루를 활용한 음식이 국수뿐 아니라 다양하게 발달했다.
예미정 종가음식상설시연장에서는 안동국시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안반(두껍고 넓은 나무 판)에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반죽을 놓고 기다란 홍두깨로 민다. 홍두깨와 반죽에 밀가루를 뿌려가며 밀고 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다. 밀가루 반죽이 말 그대로 종잇장처럼 얇게 펼쳐진다. 안반의 나뭇결이 비쳐 보일 정도다. 이정숙씨는 “안동국수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얇을수록 국수가 맛있다고 하셨지요. 양을 늘리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어요. 잔칫날 손님이 들어오시면 ‘손님 한 사람 들어옵니더. 한 번 더 밀어주소’라고 외치기도 했지요.”
이씨와 김씨는 반죽에 밀가루를 뿌려가며 몇 겹으로 접은 다음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썰었다. 손으로 써는 게 맞나 싶을만큼 국수 폭이 좁고 일정했다.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봉제사 접빈객 덕분에 발달한 안동 국수문화
안동에서 국수문화가 발달한 건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 때문이다. 안동에는 종가가 많다.이들 종가(宗家)에서는 제사가 많았고,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종가를 찾는 종친들로 북적댔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다. 종가에서는 조상과 종친과 손님을 잘 모시려고 국수를 대접했다. 요즘이야 가장 싼 음식에 속하지만, 과거에는 밀가루과 엄청나게 귀했다. 비싼 밀가루로 뽑은 국수는 귀하고 비싼 음식이었다.
옛날에는 제분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고운 밀가루를 얻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청마루에 병풍을 펼쳐놓고 한지를 깐 다음 절구로 빻은 밀가루를 부채질해 날려 가루를 얻는 정성을 들였다. 가장 멀리 날아 간 가루가 1등품, 그 다음은 2등품, 가까이 떨어진 가루가 3등품으로, 건진국수는 1등품 가루만 모아 반죽을 했다고 전해진다.
건진국수 육수에는 은어(銀魚)를 사용했다. 매년 여름이면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안동으로 올라오는 은어는 비린내가 없고 수박향이 나서 ‘수중군자(水中君子)’라고도 불린 민물생선이다. 안동 양반집에서는 이 은어를 잡아 말려뒀다가 건진국수 국물 내는 데 사용했다. 면 삶은 육수와 따로 두었던 육수를 반씩 섞는 것도 안동 건진국수의 특징이다.
예미정에서는 구하기 어려워진 은어 대신 마른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국물을 낸다. 예미정뿐 아니라 안동의 다른 국수집에서도 마른멸치로 국물을 뽑는다. 여기에 준비해뒀던 국수를 넣고 펄펄 끓여서 그릇에 담고 지단 따위 꾸미를 얹어 누름국수를 준비한다.
안동 누름국수는 입술에 닿을 때 촉감이 밀가루로만 만든 국수보다 훨씬 매끄럽다. 달걀로 반죽해 밀어 뽑는 이탈리아 생(生) 파스타와 비슷하다. 씹으면 콩가루 향이 구수하게 올라온다. 쫄깃함은 일반 칼국수보다 덜하다. 좋게 말하면 더 부드럽지만, 나쁘게 말하면 뚝뚝 끓기는 느낌. 모두 콩가루를 섞어 생기는 특징이다. 시간이 지나도 면이 덜 불었는데, 미리 준비해뒀다가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누름국수에 콩가루를 섞게 된 이유이고 한 것으로 짐작된다.
안동시 삼산동 ‘선미식당’은 안동에서 칼국수를 처음으로 메뉴로 내놓은 식당이다. 많은 안동 사람들은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을 왜 식당 가서 사먹겠느냐”며 의아해했지만, 주인 김옥주(77)씨는 올해로 42년째 식당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6000원짜리 ‘칼국수조밥’을 주문하면 국수에 조밥과 반찬까지 10여 가지나 딸려 나와 황송할 정도다. 면발은 얌전하고 멸치 국물은 투명하게 맑은 것도 건진국수 스타일이다. 안동에서 국수를 파는 식당은 대개 이곳처럼 건진국수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형태의 국수를 내고 있다.
분식장려와 함께 태어난 서울의 칼국수 명가
박정희 정부는 1969년 분식을 장려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정했다.같은해 성북동에 ‘국시집’이 문 열었다. 이름부터 국수의 경상도 사투리인 국시지만 수육과 삶은 문어, 생선전이라는 경상도 잔칫상의 전형적인 메뉴를 칼국수와 함께 판다는 점에서도 경북 안동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 집뿐 아니라 ‘혜화칼국수’ ‘손칼국수’ ‘명륜손칼국수’ ‘밀양손칼국수’ 등 일대에 있는 식당들은 비슷한 상차림을 갖추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시집에서 일하다가 독립하거나 다른 이에게 비법을 물려주면서 비슷한 가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혜화칼국수가 생선전 대신에 생선튀김과 석쇠에 물기 없이 구운 ‘바싹불고기’를 내는 등 집집마다 칼국수와 함께 먹는 ‘사이드메뉴’를 조금씩 다르게 해 개성을 살리고 있다.
성북동 칼국수집들이 맛집으로 유명해지면서 인파가 몰려 번잡한 반면, 성신여대입구역 태극당 뒷골목에 있는 밀양손칼국수는 옛날 국시집의 한적하면서 정성 들여 만든 음식으로 대접 받는 느낌이 남아있다. 이 식당에서 칼국수 만드는 장면을 지켜봤다.
칼국수 면발을 얇고 가늘게 써는 건 안동식 칼국수와 같다. 하지만 콩가루는 섞지 않는다. 이는 강남의 칼국수 명가 ‘소호정’도 마찬가지다. 콩 풋내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데다가, 콩가루를 섞으면 아무래도 밀가루로만 반죽할 때보다 쫄깃한 맛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국물은 은어는 물론이지만 지금도 안동이나 대구 등 경상도에서 칼국수에 흔히 쓰는 마른멸치가 아니라 소 양지나 사태와 사골을 섞어서 뽑는다. 밀양칼국수 주인 박일남씨는 “더 맛있게 만들려고 그런 거지”라고 했다. 칼국수를 상품화하면서 고급·비싸다는 인식이 있는 소고기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안동에서는 흔히 먹는 건 누름국수. 안동식 누름국수는 국수를 삶은 육수에 그대로 먹는 제물국수 스타일이다. 반면 밀양손칼국수에서는 커다란 냄비에 주문이 들어온만큼씩만 국수를 넣고 끓여낸 다음, 그릇에 담고 국수를 끓인 육수와 사용하지 않은 육수를 반씩 섞었다. 안동 건진국수 방식을 계승한 셈이다. 이렇게 하면 면에서 전분이 배어나와 국물이 텁텁해지는 제물국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서울 성북동 칼국수와 안동국수는 이렇게 비슷한 듯 다르게, 시대와 지역에 맞게 칼국수 면발처럼 유연하고 탄력있게 적응하며 발전하고 있다.
글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