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고시라는 말이 있다. 일본말에 노도는 후(喉), 즉 목구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국수류를 먹을 때 목이 얼얼하도록 빡빡하게 먹는 걸 뜻한다. 주로 메밀국수(소바)를 먹을 때 그런 표현을 쓴다고 하는데, 어떤 탐미적인 이는 이를 ‘교살의 맛’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맛이나 미학에서 극도의 퇴폐미를 강조하는 걸 즐기는 일본인다운 해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국수를 먹을 때 좀 넉넉하게 양을 밀어 넣으면(오래 씹지 않고) 이런 노도고시의 맛이 느껴진다. 우리말에는 과문한 탓인지 적당한 표현이 없는 듯하다.
노도고시를 거론하는 일본인 말고 내 친구도 그런 유의 쾌감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데, 그는 “눈물이 나오게 목이 메어야 맛있다”고 말한다. 국수나 짜장면을 먹을 때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런 건 아마도 동물에게도 있을 듯싶다. 동물들도 음식을 먹을 때 뭔가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듯 쾌감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나만 그렇게 보이는지 몰라도.
국수는 확실히 물리력의 맛이다. 똑같은 밀가루를 물로 반죽해서 어떤 것은 수제비가 되고 어떤 건 빵이 된다. 또 같은 반죽으로 국수를 밀 수 있다. 그런데 뭐는 좋고 뭐는 싫다는 호오가 갈린다. 음식을 화학과 생물학적 견지로만 보면 수제비든 국수든 바뀐 게 없다. 뜯어서 삶았느냐 밀어서 칼로 썰어 삶았느냐의 차이다. 그런데 이걸로 맛의 경계가 전혀 달라지니, 참 맛이란 오묘하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국수를 그렇게 노도고시, 식도의 통증을 유발하도록 먹는 행위를 보면 어쩌면 국수가 공간의 음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국수가 양념을 치고, 혀로 맛을 느끼는 것이 전부라 아니라 공간에 존재하면서 맛을 낸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국수를 먹을 때 국수 가락은 입 밖에서 길게 들어오려고 하고, 입안에도 걸치고 있으며, 이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길에도 존재한다. 긴 국수 가락이 바깥, 입, 목구멍이라는 세 가지 공간에서 동시에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먹어야 국수를 제대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공간감각에 대해 각별한 분들이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그런 공간감을 중시하지 않는다. 우선 ‘훅’ 빨아들이는 음식이 아니다. 국수를 후루룩 먹어도 되는(결례가 아닌)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그 밖의 나라도 대개는 동양권일 것이다. 서양에서는 음식 먹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예의다. 그래서 국수 먹기도 아주 불편하다. 파스타는 포크로 돌돌 말아서 한입에 쏙 넣어야 한다. 후룩후룩 먹었다가는 눈총을 받는다. 어차피 국제적 룰이니 따라줘야 하는데, 심지어 비행기 기내식도 그런 룰이 적용된다. 보통 이코노미석에서 치킨누들 같은 요리가 많이 제공되는데 이걸 후룩거리며 먹으면 좀 결례가 된다. 하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국수를 통쾌하게 먹을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이렇게 국수를 얌전히 먹으면 세 가지 공간에 국숫발이 동시에 존재하는 쾌감도 느낄 수 없다.
파스타는 먹을 때 다른 면에서 물리적인 맛이 있다. 국수의 표면이 까슬까슬한 것이다. 스파게티를 먹을 때 유심히 느껴보면 알 수 있다. 스파게티 표면에는 무수한 흠집이 나 있다. 이것 역시 물리적인 맛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다. 표면이 너무 매끄러우면 소스(특히 오일소스)가 잘 붙지 않고 흘러내린다. 싸구려 스파게티일수록 대개 이런 흠집이 적어서 매끈하다. 국수라면 으레 매끈해야 맛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반대인 것이다. 흠집이 소스를 붙들고 입까지 운반해주는 노릇을 해야 맛이 좋다고 느끼게 된다.
스파게티를 사서 표면을 만져보면 까슬한 것이 좋은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표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유압식 구리 노즐이 좋다. 그래서 어떤 스파게티 봉지에는 ‘브론즈 노즐’이라고 크게 써서 선전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구리 노즐은 비싸고 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서 구리 노즐을 쓴 스파게티는 값이 올라간다.
우리 국수에도 이런 까끌까끌한 표면을 강조하는 종류가 있다. 메밀면이다. 장안의 좋은 냉면집에서는 국숫발을 들이켤 때 입안에서 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속메밀만 갈아서 쓰면 이런 정도가 약할 것이고, 아무래도 겉메밀이 섞이면 까슬한 느낌이 더 살아난다. 냉면은 이런 느낌을 받아야 좋은 면이라는 기분이 든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강남의 평양면옥이 이런 면의 물리적 맛이 가장 잘 살아 있는 듯하다. ‘텁’ 하고 한 입 냉면발을 입에 물면 오톨도톨한 국수의 표면이 입안에 그대로 감지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는데, 역시 맛이란 꼭 화학적인(감칠맛 등) 맛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글 박찬일 셰프
1965년 서울 출생.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서울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와 종로의 ‘광화문 몽로’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광화문국밥’에서 국밥과 냉면을 팔고 있다.
<한겨레 신문>, <경향신문> 등에 음식 칼럼을 연재 중이며 <스님, 절밥은 왜 그리 맛이 좋습니까>, <미식가의 허기>,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출판하였다.
글 박찬일 셰프
원문 : 매일경제
링크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553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