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도 이런 혹한이 없다. 얼어붙은 속을 녹이려면 국물 요리가 최고다. 부드러운 북엇국도 좋고, 매운 육개장도 속을 홧홧하게 덥혀서 인기다. 중식으로는 단연 짬뽕이다.
그릇째 들고 들이켜면 오장을 꽉 채우는 밀도와 매운맛이 위로 치받는다. 해장하거나 굴풋한 속을 달랠 때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이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풍경이 있다. 목판으로 만든 목가방(철가방은 나중에 등장한다)을 무겁게 자전거 뒤에 싣고, 한 손에는 주렁주렁 노란 양철주전자를 든 배달꾼들이 동네를 다녔다. 요란하게 종을 울리면서. 얼른 비키지 않으면 구슬치기를 하던 아이들이 치일 판이었다.
어쩌다 아버지는 짬뽕을 시키셨다. 속이 헛헛하다, 이러시면 짬뽕을 드시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배달꾼이 총알같이 왔다. 면과 웃기(토핑)만 담긴 사기그릇을 놓고는 찌그러진 양철주전자를 들어서 위에 쭉, 국물을 부었다. 매콤하고도 두툼한 그 국물의 향이라니! 얼얼하고 어리둥절하며, 정수리에서 허리를 타고 내려오던 매운맛의 세례였다. 당시엔 고명도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참했다. 냉동해물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오징어와 조개 따위가 기억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돼지고기였다.
흔히 짬뽕에서는 ‘불 맛’이 중요하다고 한다. 뭔가를 태운 맛이라는 뜻이다. 채소와 고명을 빠르게 볶아서 얹는 게 짬뽕 맛의 비결이다. 돼지 비계를 우선 풀고, 불로 가열하면 자글자글 끓는다. 거기에 돼지고기 저민 것을 넣고 빠르게 볶아서 연기를 자욱하게 올린다. 양파와 호박, 양배추를 넣은 후 다시 볶고 우려 둔 국물을 부어서 내는 게 바로 그 시절의 짬뽕이었다. 늙은 화교 요리사의 고증이니 아마도 1960~1970년대까지 짬뽕의 표준 요리법이었을 것이다. 두툼하고 바특한 국물 위에 두껍게 빨간 기름이 깔리고, 그 위로 불쑥불쑥 솟아난 돼지고기 조각들이 맛있었다. 그래서 짬뽕은 한 그릇이라도 바로바로 볶아야 제맛이 난다.
언젠가 짬뽕 한 그릇을 먹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오징어를 씹었더니, 언제 끓여둔 것인지 그냥 입에서 스르르 풀렸다. 오래 끓인 동물의 근육은 결이 풀려서 씹는 맛이 사라진다. 냉동오징어여서 질긴 맛을 죽이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만, 함께 나온 양파까지 흐늘흐늘한 걸 보면 이제 짬뽕 한 그릇을 잘 먹는 게 어려운 일이 됐는가, 한탄을 하게 된다.
짬뽕은 알다시피 일본에서 시작됐다. 원래는 초마면이나 탕면이란 이름으로 중국에서 먹던 요리였다. 짬뽕을 보면, 북경 쪽의 국수 요리를 닮았다. 일본이 원조 행세하는 라멘이 실은 중국 남부 광둥 지방의 요리인 것과 한 축을 이룬다.
그 중국식 탕면이 일본 나가사키에서 시작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1800년대 후반, 나가사키는 개항지였다. 유럽인은 물론 중국인 노동자와 학생도 많았다. 시카이로(四海樓)라는 식당이 있었다. 주방장 진평순이 당시 중국인에게 팔기 위해, 돼지 뼈와 채소 부스러기로 국수를 만들어 판 게 시초다. 일본인은 메이지유신으로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지만, 뼈와 내장은 먹지 않았다(오사카의 재일조선인이 소곱창 요리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 돼지고기는 살코기를 골라 돈카츠를 만들고, 뼈와 내장은 버리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걸 거저 구해서 중국식으로 국물을 내고, 채소를 볶아 얹어 짬뽕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짬뽕은 해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요리였다.
나가사키 짬뽕이 나중에 한국에 와서, 해물을 유달리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춰 해물 짬뽕이 시작된 게 맞는 듯하다. 참고로 시카이로는 지금도 성업 중인데, 명성은 있으나 맛은 다른 현지 명가들에 비해 별로다. 관광객의 순례지처럼 됐을 뿐, 맛있는 집은 아닌 셈이다. 항구가 보이는 전망이 좋다는 점 정도가 매력이다. 다만 건물 안에 작은 짬뽕 박물관이 있으니, 짬뽕 원류를 더듬어가는 재미는 있다.
짬뽕은 그 시절 큰 인기를 끌고, 나가사키의 명물이 됐다. 이즈음, 조선 반도가 일제 치하가 되면서 일본인들이 넘어왔다. 그들과 함께 일본식 중국 요리도 건너왔을 것이다.
짬뽕은 해방 후 매운맛을 얻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좀 놀라운 하나의 구도를 보게 된다. 일본에서 중국인이 시작하고, 그게 한국으로 넘어와서 대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실. 일본에선 나가사키 짬뽕이 한국처럼 인기가 대단하지 않다. 나가사키의 지역요리 정도로 본다. 반면 원조도 아닌 한국은 거의 한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짬뽕이 토착화됐다. 참으로 신기한 ‘국수의 동양 삼국지’가 아닌가.
그런데 특이한 걸 최근 나가사키 여행에서 발견했다. 어떤 나가사키 짬뽕집에 갔더니, 놀랍게도 한국어로 ‘한국 고춧가루로 만든 매운 짬뽕’이라고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도 한류랄까, 하나의 문명의 순환을 연상케 했다. 한국형 짬뽕이 원조 지역으로 넘어가 행세하는 것이라니. 사람들은 맵다고 하면서도 아주 잘 먹었다. 도쿄에서 한국식 김치찌개가 인기 있는 걸 보면 결코 한 지역에만 국한된 유행은 아닌 듯했다. 그걸 바라보는 나는 참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요새 짬뽕의 재발견이랄까, 열광하는 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고생하며 일일이 하나씩 고명을 볶고 진한 맛을 내던 집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5대 짬뽕이니 뭐니 하는 유행어도 생겼다. 그 집들을 순례하는 ‘맛객’들도 있다고 한다. 국수와 매운맛, 한국인으로서는 뗄 수 없는 강력한 유혹인 것이다.
공주의 한 짬뽕 명가라는 곳에 일부러 찾아들었다. 천변의 허름한 집, 그다지 친절해 보이지 않는 무뚝뚝함 뒤로 오랜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의 여유가 있었다. 평범한 면에 무난한 고명과 국물이었지만 한 가지 눈에 꽂히는 것이 있다. 11시 20분~1시 40분, 딱 2시간 남짓이 이 집의 영업시간.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영업시간이 아닐까. 노부부가 운영한다는데, 그 여유와 고집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요리 메뉴도 없고 면만 두어 가지를 하니 준비시간도 별로 필요 없을 터. 저녁시간을 놀리고도 먹고살 수 있는 이 동네의 환경과 어깨를 짓누르지 않는 임대료가 상상이 된다. 아아, 이런 게 진정 삶의 한 모습이 아닌가.
박 셰프의 선택
서울의 어느 중국집이 짬뽕을 잘하느냐, 분분한 의견이 있다. 나는 기호대로 몇몇 집을 다닌다. 홍익대 근처에 있는 초마(송탄 영빈루라는 짬뽕 명가의 분점, 02-7661-8963), 압구정동 광림교회 옆에 있는 외래향(02-518-4891)의 짬뽕도 수준급이다. 동네마다 잘하는 집들이 있을 것이다. 칼바람이 얼굴에 부딪는 요즘, 잘 만든 짬뽕 한 그릇이 구미를 당긴다.
글 박찬일 셰프
1965년 서울 출생.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서울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와 종로의 ‘광화문 몽로’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광화문국밥’에서 국밥과 냉면을 팔고 있다.
<한겨레 신문>, <경향신문> 등에 음식 칼럼을 연재 중이며 <스님, 절밥은 왜 그리 맛이 좋습니까>, <미식가의 허기>,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출판하였다.
글 박찬일 셰프
원문 : 매일경제 (2013-01-21)
링크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48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