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odle Places
평냉 마니아들, 여기 아시나요
평양냉면은 밍밍하고 무미(無味)한 음식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평양냉면의 심심함은 섬세함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최근 개업한 서울과 수도권 일대 냉면집 중 음식 전문가들 사이에서 괜찮다고 꼽히는 다섯 곳을 선정했다. 생생한 비교를 위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식했다.
요즘 잘나가는 평양냉면집 5곳, 직접 먹어봤다
평양냉면은 오랫동안 비주류 음식이었다. 같은 이북 출신이지만 함흥냉면은 매콤함과 달콤함이라는 대중성을 무기로 대한민국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외식 시장의 주류로 편입했다. 반면 평양냉면은 밍밍하고 무미(無味)한 음식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억센 서도(평안도·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나이 지긋한 실향민들의 음식으로 여겨졌다. 이름난 평양냉면집은 6·25를 전후로 월남한 서북 출신들이 수십 년 전 시작한 노포(老鋪)들로 정체돼 있었다.
분위기는 2010년대에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평양냉면의 심심함은 섬세함으로 재인식됐다. 평양냉면을 찾는 이들이 특히 젊은 층에서 크게 늘었다. 덕분에 평양냉면을 전문으로 내는 식당이 지난 2~3년간 여럿 문 열었고, 곧 열기 위해서 준비가 한창이다.
최근 개업한 서울과 수도권 일대 냉면집 중 음식 전문가들 사이에서 괜찮다고 꼽히는 다섯 곳을 비교 시식했다. 생생한 비교를 위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울 여의도 정인면옥, 마포 청춘구락부, 경기도 성남 분당 능라도, 청담동 피양옥, 논현동 진미평양냉면 순으로 하루에 모두 맛봤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김인복씨,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와 함께 시식했다.
잡내 없이 깔끔한 한우 육수
굵은 면발이 단단하게 휘감아
‘정인면옥’ 여의도점
1972년 경기도 광명에서 시작해 3년 전인 2014년 서울에 입성했다. 식당에 들어선 시각이 오전 11시였는데 이미 전체 테이블의 3분의 1이 차 있었고, 11시 30분이 되자 만석이 됐다.
세 사람은 “최고 수준의 냉면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데 동의했다. 맑고 투명한 육수를 들이켰을 때 잡내 없이 깔끔한 맛은 좋았으나, 육수를 목으로 넘긴 다음 올라오는 냉면 육수 특유의 구수한 육향(肉香)이 별로 없었다. ‘우래옥’처럼 동치미 국물을 섞지 않고 한우(사태·양지) 육수만을 사용한다는데, 구수하다 못해 텁텁하달 정도로 짙은 우래옥 냉면 육수의 육향이나 감칠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면은 굵은 편인 데다 단단해 입안과 식도를 부드럽게 감치는 쾌감이 적었다. 만두는 두부를 많이 넣어 담백한 평안도 만두 전형적인 맛이었다.
가격
평양냉면(물·비빔) 9000원 / 순면(물·비빔) 1만원 / 만둣국 9000원 /
암퇘지 편육 2만원 / 접시만두 9000원
주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76길 10, (02)2683-2615
평가
김인복 ★★ / 박정배 ★★☆ / 김성윤 ★★
꿩 육수로 초계탕 같은 느낌…
들기름 메밀순면의 강렬함
마포 ‘청춘구락부’
양·곱창구이 전문점인데 특이하게 냉면도 소문났다. 차갑게 식힌 닭 육수에 국수를 말아 먹는 초계탕 비슷한 맛도 나는데 냉면 국물에 꿩 육수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냉면집마다 어떤 재료로 육수를 내고 어떤 비율로 섞는지가 다르다. 청춘구락부에서는 한우 양지와 사태를 끓인 육수에 돼지 육수와 꿩 육수를 섞어 국물을 완성한다.
육수가 품고 있는 감칠맛이나 육향이 괜찮은 편이었으나, 들이켜기 힘들 정도로 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밤새 냉장 보관 과정에서 얼음이 끼면서 육수가 짜진 걸 확인하지 않고 그냥 따라 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면이 꽤 좋아서 육수 관리 실패가 더 아쉬웠다.
이 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들기름 메밀순면’이 아주 괜찮다. 100% 메밀로만 뽑은 순면에 들기름과 간장을 버무려 먹는 독특한 국수다. 저온 압착한 들기름의 고소한 풍미와 순면의 강한 메밀향이 조화롭게 강렬하다.
가격
평양냉면·평양 비빔냉면·들기름 메밀순면 각 1만1000원 /
특양냉면 1만3000원 / 특양구이 2만8000원 / 대창구이 2만7000원 / 홍창구이 2만4000원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로 308, (02)702-1399
평가
김인복 ★★★☆ / 박정배★★★ / 김성윤 ★★★☆
新평양냉면 열풍의 진원지
메밀향·육향 등 수준 높아
‘능라도’ 분당 본점
냉면을 맛보니 어째서 이 집이 최근 평양냉면 열풍의 진원지가 됐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번 맛본 다섯 집의 냉면 중에선 최고였다. 김인복씨는 “균형감이 너무 좋다”고 상찬했다. “면에서 피어오르는 메밀향, 육수의 감칠맛과 마시고 난 다음 올라오는 육향, 면을 익힌 정도와 굵기 등 어느 요소 하나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박정배씨는 “차가운 냉면이지만 그 속에서 온기(溫氣)가 느껴진다”며 “이러한 기운은 좋은 식재료와 기술, 시간, 노력이 들어가야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면이 부드럽지만 퍼지지 않았고, 입안을 부드럽게 맴돌다가 매끄럽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육수는 묵직하지만 무겁지 않고, 가볍지만 들뜨지 않고 상쾌하다. 냉면뿐 아니라 만두, 제육, 불고기, 녹두 지짐 등 전체적으로 고르게 수준이 높다. 강남점은 분당 본점 수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
가격
평양냉면 1만1000원 / 접시만두 1만1000원 / 만둣국 1만1000원 /
온반 1만1000원 / 불고기 3만원 / 어복쟁반 6만·10만원
주소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산운로32번길 12, (031)781-3989
평가
김인복 ★★★★★ / 박정배 ★★★★☆ / 김성윤★★★★☆
소·돼지·닭으로 만든 맑은 육수
10여 종류 고기의 어복쟁반 별미
청담동 ‘피양옥’
지난 5월 말 오픈한 ‘따끈따끈’한 새 식당이지만 벌써부터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다. ‘피양’은 평양의 평안도 사투리. 투명하달 정도로 맑은 육수나 가느다란 면발은 을지면옥을 떠올리게 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삶은 육수와 닭 육수를 배합한 국물을 사용하는데, 묵직하면서도 명랑한 감칠맛과 오래도록 여운지는 육향이 훌륭하다.
어복쟁반은 여태 먹어본 어복쟁반 중 최고. 보통 냉면집에선 육수 내려고 삶은 고기를 어복쟁반에 쓴다. 이 집은 어복쟁반용으로 따로 삶는다. 사태·양지·살치·유퉁·우설·차돌양지·곱창 등 10여 가지 부위를 각각 가장 알맞은 시간으로 삶아 얇게 썰어서 냄비에 돌려 담고 육수를 부어 바글바글 끓여 먹는다.
육수가 기막히다. 각 부위에서 우러나온 맛이 육수에 섞여 냄비 이쪽을 맛보면 사태 맛, 저쪽을 맛보면 곱창 등 미묘하게 다른 국물 맛을 즐길 수 있다.
가격
물냉면 1만1000원 / 비빔냉면 1만1000원 / 동치미냉면 1만1000원 /
만두 1만1000원 / 만둣국 1만1000원 / 녹두전 8000원 / 어복쟁반 6만·9만원
주소
강남구 삼성로133길 14, (02)545-9311
평가
김인복 ★★★★ / 박정배★★★☆ / 김성윤 ★★★☆
평양면옥 20년 장인이 독립…
군내 없는 만두는 감칠맛 커
논현동 ‘진미평양냉면’
지난해 가장 뜨겁게 화제가 됐던 냉면집. 서울 강남 평양면옥과 의정부 평양면옥에서 20년 근무한 장인이 독립해 차렸다.
모양새는 서울 평양면옥과 같은데, 육수는 짠 편이다. 물론 평소 평양냉면을 즐기지 않는다면 무미하달 정도로 심심하다. 하지만 두 평양면옥이나 필동면옥, 특히 을지면옥과 비교하면 염도가 꽤 느껴진다. 육향은 우래옥을 연상케 하나 훨씬 가볍다. 박정배씨는 “특색이 없어 보이지만 그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 집 냉면의 수준이 높다는 뜻”이라고 했다.
만두는 어떤 냉면 명가보다 낫다. 만두피는 쫄깃하고, 속은 군내가 없다. 숙주가 안 들어가는데, 군내의 주원인이 되는 김치도 다져 넣지 않은 듯하다. 김인복씨는 “평양냉면집 만두가 대개 심심한데, 이 집은 고기와 지방 비율을 높이고 간을 더 해서 감칠맛과 고소함을 끌어냈다”고 했다.
가격
냉면·비빔면·만둣국·접시만두 각각 1만원 /
편육(소고기) 2만5000원 / 제육 2만4000원 / 불고기 2만3000원 / 어복쟁반 5만·8만원
주소
강남구 학동로 305-3, (02)515-3469
평가
김인복 ★★★★ / 박정배 ★★★★ / 김성윤 ★★★★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편집=뉴스콘텐츠팀
출처 : 조선일보 (2017년 7월 14일 게재)
원문링크 : http://life.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3/20170713019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