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의 대사부를 만나다
대한민국 중식계의 어른 왕육성 셰프는 한국의 중식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2015년 서교동에 중식당 ‘진진’을 오픈하며 미쉐린 1스타를 획득, 중식당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깔끔하고 정갈한 성격과 친절한 미소 뒤에는 셰프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다. 고객을 위해 매일 거울을 보며 미소를 연습한다는 거장의 말씀 앞에서 두 손을 다시 모으고 무릎을 붙여 앉게 되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식의 전통과 현대화를 동시에 이끌어 온 왕육성 셰프의 철학과 그의 푸드스토리를 들어 보았다.
Q1.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는데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것은 21살 때 였어요. 그때는 좀 늦은 나이었죠. 홀보다는 본격적으로 요리 기술을 배우기 위해 1975년 중식당 ‘홍보석’에 입사했어요. 홀 캡틴을 맡으면서 중국요리 명칭과 만드는 법 등은 충분히 익혀 놓았던 터라 주방장의 눈에 들어 웍을 차지할 수 있었고 만다린을 거쳐 정식 사부가 되었습니다.
Q2. 부모님이 중국에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화요리 셰프의 길을 걷는데 큰 도움이 되셨을 듯합니다.
네 맞습니다. 부모님이 중국 톈진에서 넘어오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집에서 음식 하는 것을 보고 또 거들면서 기본적인 칼질은 할 줄 알았죠. 특히 톈진은 만두가 유명해 어머니가 만두 빚을 준비를 하면 온 가족이 각자 역할을 담당하며 음식을 만드는 데 동참했어요. 실제로 주방에서 요리를 배울 때 남들보다 몇 배는 빨리 배울 수 있었어요.
Q3. 호텔에서 오랫동안 주방장과 경영까지 맡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근무하셨나요?
1979년 당시 최초의 호텔 중식당인 사보이 호텔 호화대반점, 프라자호텔 도연 등에서 일했어요. 1986년 코리아나 호텔에서 중식당 대상해를 새로 오픈할 때 주방장으로 스카우트 되었구요. 제가 주방장으로 있을 때 영업이 잘 되었습니다.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1998년에 호텔 사장이 ‘직접 운영해보지 않겠나’고 제안해서 경영까지 하게 됐습니다.
1975년부터 2013년 까지 열심히 달려 왔고 60세의 나이에 대상해를 나왔습니다. 남들처럼 정년퇴직 했던 셈이죠.
Q4. 2015년에 대상해에서 같이 근무하셨던 황진선 셰프님과 중식당 ‘진진’을 오픈하셨습니다. 진진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나요?
저는 평상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맛있는 중화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호텔에 근무할 때도 5~7가지 코스메뉴를 만들어 1만3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렴한 가격에 좋은 재료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식당을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진진(津津)은 아버지 고향인 톈진(天津)의 ‘진’과 마포의 옛 이름 양화진(楊花津)의 ‘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이름을 지었습니다. 코리아나 대상해부터 10여 년간 함께 호흡을 맞춘 제자 황진선을 비롯해 지금껏 함께 일하며 열심히 따라 준 5명의 제자가 있어서 진진을 오픈하는데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Q5. 중식에서 사부와 제자는 부자 관계보다 더 진하다고 들었습니다. 오픈 당시부터 제자들을 위해 계획한 것이 있었는지요?
저는 중식을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중식은 정형화된 레시피로는 맛을 낼 수가 없어요. 주방의 상황과 요리 재료에 따라 물의 양과 기름의 온도, 나트륨의 함량 등이 달라져야 하고, 순간의 판단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만큼 중식은 ‘순간의 느낌(feel)’이 중요한 생명이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주방장의 역할이 중식의 9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 한 명에게 하나의 매장을 차려주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이 책임지는 주방이죠. 그렇게 5명 제자를 키웠고 다들 오픈해서 영업도 잘하고 있습니다.
Q6. 중식에서는 면요리가 빠질 수 없습니다. 면 요리에 대한 철학이 있으신지요.
중식은 크게 3가지 판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칼판, 불판, 면판이죠. 칼판은 재료를 다듬고 썰고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요리 시간의 대부분이 칼판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불판은 볶고 끓이는 조리를 말합니다. 칼판에서 다듬어진 재료들을 불판에서 조리하는데 한 가게에 한 명만 조리하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주방장의 키가 달라지면 중식의 맛이 달라집니다. 불과 웍의 위치가 달라지니까요.
제가 칼판과 불판은 모두 공부했는데 면판은 아직 공부를 다 못했어요. 면을 뽑기 위해 직접 반죽하고 면을 치는 인건비가 많이 들거든요. 사실은 저희도 면은 면사랑에서 구입합니다. 면사랑 같은 회사에서 잘 만들어 주시면 그만큼 시간도 절약되고 인건비도 덜 들죠.
면 요리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만족감을 주는 특별한 음식입니다. 국물(소스)과 면이 조화를 이루고 한 그릇 안에 어울리는 멋진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Q7. 제자 사랑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직접적으로 가르친 제자가 아니더라도 업계에서 일하는 후배 셰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가요?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예술이 빛을 발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될까 말까 하는 그 일을 우리가 하는 겁니다. 보통 중식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어렵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불 관리만 1년, 그릇 닦기 1~2년, 채소 다듬기 1년, 면 솥 관리 1~2년 등 요리하는 것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 수 년씩 흘려 보내기 일쑤였어요. 초심 잃지 말고 내가 처음 불 앞에 섰을 때 그 때의 감격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게 다 에요. 요리사의 성공은 손님을 만족시키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웃는 연습도 많이 하세요. 손님을 처음 맞을 때 웃으면 그 집 요리도 더 맛있어집니다.
Q8.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말씀해 주세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저는 요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이 차갑고 지쳐 있으면 음식의 맛도 그렇지 않을까요? 매일 웃고, 생각도 더 많이 하고, 연구하고 또 생각하고, 또 웃고…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거죠.
손님들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자주 웃으라는 왕육성 사부의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여운이 남는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남을 즐겁게 하는 일. 우리에겐 웃음 만큼 중요한 레시피는 없다는 생각도 드는 건 그의 백만불 짜리 미소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웃음과 미소를 오늘도 연습하는 왕사부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