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요리사로서 이탈리아 셰프와 대화를 하거나 요리책을 읽다 보면 올리브 오일에 관한 집착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겨우 오일 하나 가지고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특정 올리브 오일을 강조한다 든지, 아니면 특정 요리에 어울리는 올리브오일의 종류를 분류할 때, 결정적으로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건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야!!”라고 일갈하는 순간 등이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유럽 출신인 프랑스 셰프 들은 트러플 같은 고가 식자재가 아닌, 본인 나라의 오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요리는 프랑스 요리가 아니다’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으로 이탈리아 셰프와 인연을 맺었을 때였다. 그는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본인의 메뉴를 만드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의 식자재는 대체재를 찾아서 맛을 조정 하였지만 몇몇 식자재와 올리브 오일 만큼은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토로하곤 하였다. 그 당시 올리브 오일이라는 식자재는 일반 마트 등에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였고 수입 식자재 전문점이나, 혹은 고급 레스토랑에만 소량의 제품이 입고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그나마’ 가장 고급인 올리브 오일을 엄청나게 사용 하였지만, 그 오일을 g당 가격으로 환산 및 원가율 계산 후 한숨을 쉬며 올리브 오일의 양을 눈에 띄게 줄였다. 그러면서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한국에서 진정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거 같아”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식재료를 쓰지 않으면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라고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올리브 오일 종류만 해도 엄청난 수를 자랑한다
ONAOO는 올리브 오일 테스팅 교육 및 인증기관 중 하나이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서 올리브 오일이라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이탈리아의 문화와 정체성의 ‘영혼’이고 이탈리아 요리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액체로 된 금’이라고 표현하였던 기록이 있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식자재이다. 현재 올리브 오일의 중요성은 매년 각지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여러 가지의 올리브 오일을 맛보고 평가하는 전문 감정사도 있다. 감정사로서 정식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공인된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이들은 올리브오일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긴다. 이처럼 이탈리아에서는 엄격한 품질 관리로 우수한 올리브 오일을 지속해서 생산하고 유지한다.
이탈리아의 남과 북은 요리, 기후 및 경제와 문화 등이 여러 차이를 보이는데 올리브오일도 마찬가지다. 우선 기후와 일조량 등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지역별로 재배되고 있는 올리브 나무의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는 다양한 올리브 품종을 자랑하는 나라로, 약 500여 가지의 올리브 품종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의 미세 기후에 따라 다른 올리브가 재배되고 다양한 올리브가 나올 수 있는 원천이 된다. 그리고 이는 올리브 오일의 개성 있는 특성과 맛으로 나타난다.
올리브 오일의 맛과 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들은 온도와 일조량, 강수량, 바람, 수확시기 등이 있다. 높은 온도는 올리브의 성숙과 폴리페놀(항산화 물질)의 함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폴리페놀은 올리브 오일의 쓴 맛과 매운 맛을 결정짓는 중요한 성분이다. 그리고 일조량이 높으면 열매의 당도와 향미가 증가하게 된다. 적절한 강수량 또한 중요하다. 과도한 강수량은 올리브 오일의 맛을 희석하며 적은 강수량은 쓴 맛이 강해질 수 있다. 적절한 바람은 올리브 오일의 수분을 증발시켜 당도와 향미를 증가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확시기이다. 일찍 수확한 올리브는 더 높은 폴리페놀 함량을 가지며, 쓴 맛과 매운 맛이 강해진다. 반대로 늦게 수확한 올리브는 부드럽고 과일 향이 풍부해 진다.
남부지역의 대표적인 올리브 품종
일반적으로 남부지역은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강렬하고 풍부한 맛의 올리브 오일을 생산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강렬한 쓴 맛과 매운 맛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올리브 오일을 마셔보고 가장 놀랐던 점은 올리브 오일에서 매운 맛이 나온다는 점이었다. 먹기 전까지는 오일에서 매운 맛이 난다는 것이 어떠한 느낌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매캐하기까지 한 올리브 오일을 먹으면서 적응이 안되었던 한국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남부지역의 대표적인 올리브 품종은 다음과 같다.
1. 코라티나(Coratina)
풀리아 지역의 높은 폴리페놀 함량으로 유명하다. 이는 강한 쓴 맛과 매운 맛이 느껴진다는 소리이다. 풀바디의 강렬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2. 오글리아롤라(Ogliarola)
풀리아와 바실리카타 지역으로 부드럽고 섬세한 과일 향이 특징이다. 그리고 헤이즐넛 같은 견과류 향이 난다.
3. 노첼라라 델 벨리체(Nocellara del belcie)
시칠리아 지역으로 강한 과일 향이 특징이다. 신선한 사과, 토마토, 녹색 아몬드와 같은 향이 두드러진다.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올리브 품종
북부지방은 일조량이 남부에 비해 적고 강수량이 더 많아 올리브 나무가 천천히 자라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습하고 온화하여 올리브 나무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한다. 이는 폴리페놀의 함량을 낮추어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만든다. 그래서 과일 향과 아몬드, 허브, 꽃등의 향이 은은하게 나온다.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올리브 품종은 다음과 같다.
1. 타지아스카(Taggiasca)
리구리아지역으로 작은 크기와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과일 향과 아몬드와 허브, 꽃향기 등이 느껴진다.
2. 카살리바(Casaliva)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지역으로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가지고 있다. 과일 향, 아몬드, 허브의 향이 느껴진다.
3. 프란토이오(Frantoio)
토스카나 지방에 주로 재배된다. 균형 잡힌 맛과 향으로 과일, 아티초크, 허브의 향이 느껴진다.
올레아토는 시칠리아에서 커피에 올리브오일을 한 스푼 씩 넣어 마시는 풍습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향의 올리브 오일이 파스타와 잘 어울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열을 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섞는다’이다. 올리브 오일에 있는 향기 물질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이 있기에 코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향기 물질은 1nm(나노미터)의 아주 작은 크기로 인하여 열을 가하면 그 향이 쉽게 공중에 흩어져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고급 올리브오일은 파스타 조리의 가장 마지막에 불을 끄고 넣은 후 면과 함께 잘 섞어 주는 것이다. 만떼까레(mantecare)라고 불리는 이 테크닉은 파스타 소스와 면에 일체감을 주는 동시에 환상적인 올리브 오일의 향을 느낄 수 있게 하여 파스타의 만족감을 증폭시킨다.
재미있는 점은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고급 올리브 오일 사용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남부의 고급 올리브 오일로 만든 시저 드레싱은 선명한 녹색의 아름다운 색이었지만 역해서 도저히 먹지 못하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 당시는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메케한 올리브오일의 향이 시저 드레싱 맛의 밸런스를 깨뜨리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에 들린 스타벅스에서는 시칠리아산 올리브 오일로 만든 폼이 올라간 커피를 팔고 있었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커피에도 올리브오일이 어울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많은 특성을 지낸 올리브 오일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면 이탈리아 요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상욱
셰프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 전공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졸업
IL CUOCO (Italian Culinary Institute)에서 교육 수료
17년 경력의 베테랑, 현재 롯데호텔 Main Head Chef로 재직중이다.
Brunch에 요리에 대한 전문적인 글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