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우물물에 면을 씻어 건져 놓고 새콤달콤하게 비벼먹을 것인가? 시원한 콩물에 말아 먹을 것인가? 얼음 동동 육수에 냉면 돌돌 감고 고명 얹어 멋 드러지게 먹을 것인가?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이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전 세계에서 국물을 가장 사랑하는 우리나라는 차가운 국물 음식을 즐기는 독특한 식문화를 갖고 있다. 더운 날 차가운 국물 음식을 먹는 건 우리에겐 상식인데,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 차가운 음료는 마셔도 차가운 국물 음식을 먹는다는 상상은 못한 듯 하다. 소바를 좋아하고 소바 메뉴가 다양하게 발전되어 있는 일본도 냉소바 앞에는 ‘한국풍’이라는 수식어를 달 정도이다. 차가운 국물요리의 종주국 대한민국의 콩국수, 막국수, 냉면이 대표적이고 막국수와 냉면은 차가운 국물로도 맛있지만 비빔면으로도 먹을 수 있어 메뉴판을 받아 보는 우리에게 즐거운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 면인 콩국수와 막국수의 역사와 유래를 살펴 보았다. 숟가락 젓가락 번갈아 가며 음식을 집어 들기도 귀찮은 여름에 차가운 국물과 함께 후루룩 먹을 수 있는 냉국수는 사막 같은 더위에 행복을 선사하는 하늘의 선물인 듯 하다.
한국의 독특한 여름 면, 콩국수는 언제부터 먹었을까?
콩은 우리 민족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예로부터 그 쓰임을 제대로 받고 있는 귀한 재료이며 콩국수는 단백질과 지방질을 섭취할 수 있어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몸을 보해주는 좋은 음식이다. 콩을 간 물에 국수를 말아서 먹는 방법은 일본이나 중국에는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식문화이다. 우리나라에서 콩국수를 먹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680년경의 조리서인 『요록(要錄)』에는 태면(太麫)이라는 이름으로, 1800년대 말에 나온 저자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깨국수와 함께 ‘콩국’ 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콩국수가 서민들의 기호식품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은 다 귀현(貴顯 : 존귀하고 현달함)한 자 에게로 돌아가버리고 가난한 백성이 얻어먹고 목숨을 잇는 것은 오직 이 콩 뿐이다.”라고 전제한 뒤, “맷돌에 갈아 정액만 취해서 두부로 만들면 남은 찌끼도 얼마든지 많은데 끓여서 국을 만들면 구수한 맛이 먹음직하다.”라고 콩의 이용법을 설명하고 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 기록에 양반들은 잣을 갈아 만든 국물에 면을 말고, 서민들은 콩을 갈아 만든 국물을 면에 말았다는 기록이 있다고도 한다. 잣이나 콩을 갈아낸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어쩌면 일찍부터 발달된 우리나라 맷돌의 힘이 아니었을까? 콩이나 면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흔히 먹어온 식재료지만 콩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다는 개념은 의외로 찾기 드물다.“콩을 물에 불려 살짝 데쳐서 가는 체에 밭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밀국수를 말고, 웃기는 밀국수와 같이 한다.”라고 19세기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 여기서 웃기란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아름답게 꾸며 식욕에 도움을 주는 식품을 말한다. 고명 또는 꾸미라는 것은 알지단·미나리초대·석이버섯·표고버섯·실백·은행·호두·실고추·통깨·완자 등으로 음식의 일부분을 차지하면서 장식하는 것이고, 웃기는 음식의 윗부분을 전체적으로 덮어서 장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콩국수 먹는 신문기사 ⓒ네이버 블로그 바베큐 마스터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경향신문>1987년 8월 21일자
- <동아일보>1975년 7월 30일자
- 성호사설(星湖僿說)』
- 한국의 맛』(강인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지금 막 만들어서 막국수, 대충 막 갈아서 막국수
막국수 이름에 대한 설은 크게 2가지가 있다. 먼저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지금 막 만든 국수’라는 뜻에서 막국수라고 불렀다고 하는 설이다. 막국수, 막걸리, 막과자 등 음식명에 들어간 ‘막-‘에 대하여 쓴 이병기의 2017년 논문이 있는데 여기서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의 의미의 ‘막’ 쪽에 의미를 두고 있다.
또 하나의 설은 ‘그냥 대충 갈아서’막국수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막국수의 색이 검은 이유 와도 같다. 제대로 제분하는 것은 돈과 공수가 드니 그냥 대충 갈아서 먹는 게 막국수였다는 이야기다.
막국수는 화전민과 관련이 있다. 메밀은 척박한 땅, 양분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화전으로 땅을 일구고 3년~4년 후에 땅이 척박해지면 메밀 씨를 뿌리고 그 메밀로 국수를 해먹은 것이다. 막국수는 화전민들이 끼니를 때우려고 뽑은 거친국수였다. 막국수의 유래에 관하여 <춘천 백년사>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19세기 말 을미사변을 계기로 춘천 지역에 의병들이 일어났고 이들은 일본군을 피해 가족과 함께 깊은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었다. 조, 메밀, 콩으로 연명한 것이다. 그들이 수확한 메밀을 읍내로 들고 나와 팔기 시작하면서 춘천에 메밀을 이용한 막국수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화전민이 많았던 춘천이 막국수의 원조는 아니다. 19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막국수는 강원도 지방 사람들만 아는 음식이었다. 원래는 다소 기름진 닭고기 육수를 부어 먹다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보편적인 동치미 육수로 바뀌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동치미 육수보다 닭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막국수집이 더 주류였으며, 이를 잊지 못하는 강원도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지금 막 만들어서 이든 대충 막 갈아서 이든 우린 여름이면 막국수를 찾게 된다. 지금 막 더워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막 막국수의 계절이 온 것이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병기(2017), “음식명(飮食名)에 붙는 접두사(接頭辭) ‘막-’에 대하여”,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춘천 백년사
비빔국수도 빼면 안되는데…
우리나라 비빔국수는 조선 후기 연중행사와 풍속을 설명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조선 말기에 나온 요리책『시의전서(是議全書)』· 부녀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1908년 순 한글로 필사한 『부인필지(夫人必知)』 등에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국수비빔’ 또는 ‘골동면(骨董麵)’이라고 했으며 골동이란 뒤섞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조 정조의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보면 “골동면”이란 국수가 나온다. 골동면은 궁중에서 먹었던 음식으로 메밀국수에 쇠고기, 돼지고기, 배, 버섯, 밤, 채소 같은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간장 양념에 비벼 먹었던 것이다. 원래 골동(骨董)은 “오래되었거나 희귀한 옛날의 기구나 예술품”을 말하는데 또 다른 뜻으로는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이 한데 섞인 것”을 말하기도 한다. 비빔밥의 또 다른 이름이 골동반인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부인필지(婦人必知)》에는 골동면 조리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골동면은 지금 우리가 즐겨먹는 새콤달콤하고 매콤한 비빔국수와는 조금 다른 것이며 특히 골동면은 요즘 비빔국수처럼 밀가루 국수가 아니라 메밀가루로 만든 것에 차이가 있다.
마른 국수를 삶아 건져 물기를 뺀 다음 준비한 재료들을 섞어 간장·참기름·깨소금·설탕 등을 넣고 비빈 다음 그릇에 담고 위에 지단·실고추·볶은 석이버섯채 등을 얹는다. 메밀국수·밀국수 등 어느 것이나 이용할 수 있고, 비빔 재료도 계절과 기호에 따라 쓸 수 있다. 겨울철에는 순 메밀국수에 김치를 섞어서 비비기도 한다. 비빔국수는 동짓달에 먹는 시식(時食)이며, 점심 때 손님대접을 할 경우 알맞은 음식으로 맑은 국인 완자탕이나 맑은 장국을 곁들이고, 국물이 많은 동치미나 나박김치를 차려 놓으면 더욱 좋다고 한다. 국수를 비비지 않고 대접에 담아 위에 여러가지의 재료를 색색으로 얹어서 상에 올리는 방법도 있다. 함흥의 회냉면도 비빔국수의 일종인데, 감자 녹말로 국수를 만들어 국숫발이 질기고 오돌오돌 하며, 육회나 생선회 등을 고명으로 얹어 얼큰하게 비벼낸 것이 특징이다.
그 옛날 선조들의 골동면을 즐길 수 있는 면 맛집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우리 어머니가 찬물에 국수를 헹구어 꼭 짜서 고추장 양념과 김치나 시원한 야채들을 섞어 만들어 주셨던 비빔국수가 생각난다.
집집마다 다른 레시피로 우리의 여름을 매콤새콤달콤하게 해주는 비빔국수
서관면옥에서 판매하고 있는 골동면 조선시대 문헌을 공부하여 제대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문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시의전서(是議全書)』
- 『한국요리문화사(韓國料理文化史)』(이성우, 교문사, 1985)
- 『한국음식(韓國飮食)』(윤서석, 수학사, 1980)
글 박현진
누들플래닛 편집인
IMC 전문 에이전시 ‘더피알’의 PR본부장이자 웹진 <누들플래닛> 편집인을 역임하고 있는 박현진은 레오버넷, 웰컴퍼블리시스,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코래드 Ogilvy & Mather에서 근무하며 20년 동안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경험했다. 켈로그, 맥도날드, CJ제일제당, 기린프로즌나마, 하이트진로 등 국내외 다수 식품 기업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였으며, ㈜한솥에서 브랜드 담당자로 근무한 경력과 F&B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