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국수가 국물과 국수 품질, 두 마리 토끼를 잡기까지
2010년대 중반 이후 보통의 한국인 대부분은 하루에 한 끼를 밀국수로 해결한다. 만약 조선 후기 사람이 요사이 우리의 밀국수 애정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밀은 연간 평균 기온이 3.8℃, 여름철 평균 기온이 14℃ 이상인 지대에서 경제적인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다. 이것을 보통 봄밀(spring wheat)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세계인이 소비하는 밀 대부분은 봄밀이다. 겨울밀(winter wheat)도 있다. 늦겨울에 심어서 여름에 수확하는 밀이다. 한반도는 ‘장마’라는 우기와 한여름의 고온으로 인해서 봄밀이 재배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하는 겨울밀을 오래전부터 재배해 온다.
식민지기 만주에서 들여온 봄밀, 조선인의 입맛을 유혹하다
그렇다고 겨울밀이 한반도 전역에서 재배된 것도 아니다. 『조선총독부 농업시험장 25주년 기념지』(1931년)에는 식민지 조선의 재래종 밀인 겨울밀은 황해도·평안남도·강원도의 일부 고원지 대에서 적은 양이 생산된다고 했다. 그래도 황해도에서 그 생산량이 가장 많다고 적었다. 남부 지역의 농민들은 늦겨울에 논과 밭에 보리를 파종하여 다음 해의 보릿고개를 대비했으므로 겨울밀을 재배하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에는 그 전과 달리 만주(지금의 중국 동북 3성 일대)에서 들여온 봄밀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만주의 농민들은 18세기 이후에야 봄밀 재배를 시작했고, 20세기 초반 가을이면 다 익은 밀밭이 장관이었다. 늦가을이면 수확한 만주의 봄밀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1920년대 초반 제국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시작한 만주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만주제분회 사가 있었다. 평양의 서해 관문 도시로 개발된 진남포에는 조선제분회사가 만주에서 들여온 봄밀을 제분하여 공급했다. 1920년대 후반 이후 인천과 서울에도 일본인이 운영한 조선제분과 경성면업과 같은 회사가 들어섰다. 그 전보다 값싸고 좋은 품질의 밀가루는 서울의 부유층 가정과 일본인이 운영한 빵집과 우동집에서 소비되었다. 조선의 농가에서 는 겨울밀을 절구로 빻아서 껍질도 함께 섞인 거친 밀가루를 만들어 냈지만 식민지 조선에 들어선 일본 제분회사는 서양의 제분 기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 빻은 밀가루는 눈처럼 고왔다. 이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빵을 먹으면 입에서 부드럽게 녹는 듯한 느낌을 주어 식민지 조선인의 입맛을 유혹했다.
1937년 조선제분 주식회사의 광고 봉투 ⓒ번개장터
미국에서 들어온 공짜 봄밀, 한국의 밀국수 애정이 싹트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남한은 미군에 의해 통치되었다. 불행한 전쟁인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가난한 나라 한국에 긴급구호 물자를 원조해 주었다. 미국은 ‘상호안전보장 법(MSA)’에 근거하여 가난한 한국에 ‘잉여농산물’을 원조했다.
잉여농산물은 미국의 농촌에서 대량으로 수확한 밀·보리·콩 같은 양곡 중 자국에서 소비하지 못하고 남은 농산물을 가리킨다. 1954년 미국 정부는 자국의 농산물 가격을 유지하고 농산물 교역을 증진하는 한편, 저개발국의 식량 사정을 완화하기 위해 PL480(Public Law 480, 미공법 480호)이란 국내법을 만들었다. 미국의 PL480 법안은 미국 내 밀의 주생산지인 미네소타(Minnesota)주 출신의 휴버트 험프리(Hubert Horatio Humphrey, Jr. 1911~1978) 상원 의원과 세계적 곡물회사인 카길(Cargill)의 합작품이었다. 한국 정부는 1955년 미국농업교역 발전 및 원조법 제1관(款)에 의한 협정을 미국 정부와 체결하여, 1956년부터 잉여농산물, 그 중에서도 미국산 봄밀을 대량으로 원조받기 시작했다.
1961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잉여농산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1950년대 혼분식 권장을 쌀 절약과 미국의 잉여농산물 중 밀을 통한 식생활 개선 정책으로 바꾼 박정희 정부는 밥만 쌀로 짓게 하고, 막걸리나 가래떡 따위를 미국산 밀가루로 만들도록 통제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강력한 행정력이 동원되어 시행되었던 박정희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은 국민의 밀국수 소비를 강제했다. 그 때, 가장 날개를 달았던 분식 메뉴가 바로 한국의 ‘짜장면’이다. 정부 주도의 이 정책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의 밀국수 애정을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재건국민운동본부의 밀가루 분식활성화 운동 ⓒ요리철학 미성 Victiria
분식장려 포스터 ⓒ요리철학 미성 Victiria
일본에서 들여 온 라면, K푸드로 세계인의 입맛을 유혹하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인 대부분은 밀국수의 맛을 평가할 때 국수의 품질보다 국물 맛을 더 우선에 두었다. 1963년 9월 15일, 한국에서 처음 출시된 인스턴트 라면은 일본의 묘조식품(明星食品)에서 개발한 스프 별첨의 방식을 채용한 제품이었다. 당시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의 스프는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했으므로 한국의 첫 제품도 그렇게 만들었다. ‘라면’이란 이름도 이상했지만, 닭고기 베이스의 육수도 당시 한국인의 입맛을 유혹하지 못했다. 그러자 라면 회사에서는 스프에 고춧가루를 넣고, 닭고기에서 소고기 베이스로 스프의 맛을 바꾸었다. 1970년 소고기라면이 출시되자 인기가 폭발했다. 비록 라면의 국수는 거칠어서 품질이 좋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은 소고기 맛이 나는 국물에 푹 빠졌다. 사람들은 정해진 양의 물보다 더 많은 물을 붓고 끓인 라면에 찬밥을 말아서 국밥의 대용식으로 먹었다. 한국인의 배고픔을 달래며 한국 현대사의 큰 발자취가 된 라면은 이제 K푸드의 대표 주자가 되어 전 세계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2023년 한국의 라면 수출은 1조원대를 돌파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의 라면이 인스턴트라면을 처음 만들었던 일본 현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뀐 스프, 바로 한국 라면의 국물 맛이 이런 역전의 현상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다.
국물과 국수 품질,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해방 이후 오로지 일본에만 수출하던 마른 멸치와 김의 생산량이 1960년대 후반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국내 소비를 늘리기 위한 캠페인을 펼쳤다. 이때 유행한 음식이 바로 오늘날 한국 인이 즐겨 먹는 ‘잔치국수’다. 싼값의 밀가루로 만든 건면에 멸치 육수와 고소한 조미김이 첨가되자, 잔치국수는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했다. 칼국수 역시 조선시대 사람들은 주로 메밀로 만들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이 무상으로 공급해 준 밀 덕분에 메밀 칼국수에서 밀가루 칼국수로 변했다. 이렇게 짧은 시기에 한국인의 국수 소비 방식은 밀가루 위주로 바뀌었다. 강원도, 경기도 동부 사람들은 메밀국수를 여전히 으뜸으로 여기지만, 나머지 지역의 사람들은 국수라 하면 따뜻한 육수가 들어간 면요리를 먼저 떠올린다. 한국인이 즐기는 면요리의 핵심은 육수다. 닭이나 쇠고기를 끓인 국물, 동물의 뼈로 우린 국물은 한국인이 오래전부터 즐겨 먹었던 육수다. 심지어 뽕잎, 표고, 뿌리채소, 무와 대파, 배추 등으로 만든 채소 육수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거기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한반도의 지형은 명태, 황태, 멸치, 바지락, 보말 등을 이용한 육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에 해조류와 해산물이 더해지고 섞이며,국수의 육수 재료는 날이 갈수록 진화 중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밀가루가 다양한 재료의 국물과 만나 그야말로 국수의 랩소디가 시작된 것이다. 적어도 1990년대 후반 까지만해도 한국인은 밀국수 자체의 품질보다 국물 맛을 우선에 두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소비자들은 국수의 품질도 챙기기 시작했다. 더불어 한국의 앞선 국수 산업도 면의 품질을 끌어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면의 품질이 점점 더 발전되어 오면서 K누들의 레시피 또한 세계적 수준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오늘날 K푸드의 대표 주자인 한국의 밀국수는 국수 자체의 품질과 국물 맛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결과다.
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음식을 문화와 역사학, 사회과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문화인류학(민족학) 박사.
《음식 인문학: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2011), 《식탁 위의 한국사: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2013, 베트남 및 일본에서 번역출판),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2018, 타이완에서 번역출판), 《조선의 미식가들》(2019), 《백년식사: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2020), 《음식을 공부합니다》(2021),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2022, 중국에서 번역출판), 《분단 이전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 일제강점기 북한 음식》(2023), 《글로벌푸드 한국사》(2023)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