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먹는 겨울면
한국의 겨울은 매섭다.
한국의 여름은 뜨겁고 무덥기로 유명하며 이어지는 겨울 또한 만만치 않다.
그 뜨거운 여름 우리가 냉면으로 더위를 식히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겨울이 닥치면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국숫집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날씨가 아무리 춥다 한들 뜨거운 국물에 말아먹는 한 그릇 국수는 그 추위를 한껏 덜어준다.
한국인의 서민 메뉴 우동
일본의 우동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동은 근대화 시기를 거쳐 6·25 이후 밀가루가 대량으로 공급된 이후 에야 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식단이 되었다.
서민들의 한 끼 식사의 공간인 ‘포장마차’하면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우동이다. ‘추운 날’이면 ‘따끈한 우동‘이 떠오를 정도로 우리에겐 친숙한 음식이다. 우동은 포장마차마다 있고 분식집 등 일반 가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메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먹지 않고 돌아섰을 때 섭섭한 마음이 드는 메뉴가 바로 우동이다.
하지만 우리 우동은 면이나 국물은 원산지 격인 일본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추위에 손을 마주 비비며 포장마차 비닐을 걷으며 들어가 “우동 한 그릇 주요”해서 먹던 추억이 그리운 것인지 진짜 너무 맛있어서 그리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우동에 더욱 정감이 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인가 우리식 우동 맛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소면小麵이 아니라 소면素麵 입니다만
소면의 대중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형 제분공장들이 한국에 공장을 세우며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 해방 이후 공장이 줄었다가 6·25 당시 시설이 거의 파괴되었다. 미국의 원조로 제분공장을 다시 세우고 밀가루가 대거 공급되면서 국수요리가 우리나라 식문화를 바꾸기 까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즐겨먹는 소면의 역사적 배경이라 할 수 있겠다.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가느랗다’와 ‘작다’를 연결 지어 소면을 小麵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자사전에는 소면이 素麵으로 되어 있다. ‘素’는 보통 ‘흴 소’로 읽는다. 면이 ‘하얗다’라는 뜻인가? 아니다. ‘소박하다’는 의미다. 국어사전에서도 ‘소면’은 하얗다고 언급된 부분이 없으며 ‘고기붙이를 넣지 않은 국수’로 정의 되어 있다.
그래서 일까? 누가 겨울철에 소면을 즐기기 좋은 조리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동치미 얼음 국물에 말아먹는 소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겨울이면 따뜻한 잔치국수도 좋지만 제철 무로 담근 동치미 국물에 휘리릭 삶아 건져 놓은 소면을 말아 먹는 맛에 비할 수 있을까?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말은 소면을 즐기는 순간은 상상만으로도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한 끼 식사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겨울에 제 맛을 내는 동치미 국수
찬바람의 계절이 권하는 칼국수
우리나라 사람들의 칼국수 사랑은 유난하다. 이유를 물으면 할머니와 어머니를 떠올린다. 우리나라 겨울의 면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가 바로 칼국수다. 소면은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칼국수는 우리 어머님들의 안방에서 나온다. 우리가 기억하는 칼국수는 반죽을 치대고 밀고 써는 과정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기다리는 추억의 한 끼 식사다.
많은 이들이 과거 어머니가 별미로 만들어 주시던 음식으로 기억하는 칼국수는 원래 여름 음식이었다. 칼국수는 우리나라 남쪽지방에서 여름에 수확하는 햇밀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 북쪽지방에서는 가을에 수확하는 메밀로 냉면을 만들기 때문에 원래 냉면은 겨울음식이라 한다. 북쪽에서는 추운 겨울에 냉면을 먹고 남쪽 지방에서는 더운 여름에 뜨거운 칼국수를 먹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어쨌거나 지금은 여름에 냉면이 잘 팔리고 겨울에 뜨끈한 칼국수가 생각나는 게 정석이다. 칼국수는 면과 육수를 함께 끓이는 제물국수라는 점이 잔치국수와 다르다. 그래서 어떤 육수와 함께 끓여도 모두 잘 흡수하며 어울리는 특징이 있다. 지난 11월호의 제호가 칼국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자세한 설명은 11월호를 다시 정독 할 것을 권하며 이만 총총 필자는 칼국수 한 그릇 하러 집을 나서기로 한다.
글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보, 2006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2007~2008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을 거쳐 2011~2013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30여 년간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안정을 위해 헌신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지은 책으로 《한 끼 식사의 행복》이 있으며, <인사이트코리아>에 ‘김석동이 쓰는 한민족 경제 DNA’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