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인 중 한 명인 어느 이탈리아 셰프의 꿈은 죽기 전 모든 이탈리아 요리를 전부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탈리아 요리는 정말 다양하고 수 많은 요리법이 존재한다. 도로의 한 블럭 차이로 요리 스타일이 완전 바뀌어 버릴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역색이 강한 것이 이탈리아 요리가 가진 강점이다.
그런 이탈리아 요리에서 파스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크다. 심지어 이탈리아 요리라는 단어와 파스타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동일어 처럼 사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이나 이탈리아 요리가 한국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대중화 되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언제든 먹으러 갈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파스타는 과연, 지역별로 얼마나 다른 차이를 보일까? 우리가 이탈리아 요리를 지역으로 나눌 때에는 크게 북부와 중부, 남부로 나눈다.
Pasta in Northern Italy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의 파스타
이탈리아 북부지역은 돌로미티 산맥이 위치한 동북부와 프랑스와 인접하고 있는 서북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동북부에 속하는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베네토 지역은 척박한 환경과 산지의 영향을 받아 산의 야생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과 야생에서 얻을 수 있는 육류를 활용한 파스타가 많이 발달하였다. 베네토 지역 중에서도 바닷가에 있는 도시가 있는데 베네치아 같은 도시들은 해산물을 이용한 파스타들이 발달하였다.
반면 돌로미티 산맥을 포함하고 있는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는 알프스를 국경으로 두고 있다. 독일과 인접한 영향이 요리에 그대로 담겨있다. 곰파, 산마늘 이라고 부르는(우리나라에서는 명이) Aglio orsino(알리오 오르시노)를 이용한 페스토, 빵과 치즈 이 지역의 특산 훈연 판체타로 만든 완자 요리 Canederli(카네데를리) 등이 유명하다.
반면 서북부지역을 돌아보자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유한 이탈리아 지역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다. 버터와 치즈, 계란을 사용하여 다양한 파스타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는 피에몬테 지역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노른자만을 이용하여 만든 Tagliolini(딸리올리니)가 대표적이다. 피에몬테 지역 사투리로 Tajarin(따야린)이라고 부르는 파스타는 버터와 트러플을 이용하여 만든다. 그리고 고기로 속을 채워 만드는 Tortellini(토르텔리니)인 Agnolotti(아뇰로띠)가 대표적이다. 이 아뇰로띠는 보통 Cappone(카포네)라고 부른다. 거세 수탉으로 끓인 닭육수에 담아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금 더 내려와서 바닷가에 있는 리구리아 지역을 살펴보자. 이 지역은 제노바가 있는 지역이다. 당연히 바질을 이용한 페스토를 생각했을 것이다. 바질 페스토는 Trofie(트로피에) 파스타에 줄기 콩, 감자를 같이 넣고 섞어서 먹는다. 이것 외에도 해안가 지역인 만큼 해산물과 조개를 이용한 다양한 파스타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Ragu Genovese(라구 제노베제), 즉 제노바식 라구가 유명하다. 제노바식 라구는 캐러멜라이징한 양파를 넣고 돼지고기와 함께 만든다. 제노바를 대표하는 파스타이다.
밀라노로 대표되는 롬바르디아 지역은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리조또의 본고장이다. 이 곳에도 유명한 파스타로 Pizzoccheri(피초케리)가 있다. 이 파스타는 주로 메밀가루를 활용하여 면을 만든다. 주로 감자, 베르자(사보이 양배추), 녹인 버터와 치즈를 넣고 푹 익혀 만든 소스와 함께 곁들여 먹는다.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 만을 사용해서 만드는 파스타 생면
버터와 트러플을 이용해 만드는 피에몬테 지역의 따야린
Pasta in Central Italy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가 있는 중부지역
이제 조금 더 내려와 중부지역으로 가보자. 중부 지역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은 Ravioli(라비올리)가 가장 많이 발달한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 파르마 지역에서는 단호박이 나오는 시즌에 단호박을 이용한 라비올리 지역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리코타와 시금치를 채워 만든 Cappelletti(카펠레띠)와 닭 육수 역시 유명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는 바로 라구 볼로네제, 즉 볼로냐식 라구이다. 갈아 만든 소고기를 주 재료로 하여 만든 볼로냐식 라구는 전세계에 미트 소스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주로 계란을 넣어 반죽한 Tagliatelle(탈리아텔레)와 먹으며 라구를 활용한 라자냐 역시 유명한 요리 중 하나이다.
전세계 미트 소스의 대명사로 알려진 볼로냐식 라구
이탈리아 중부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달된 라비올리 만드는 과정
일반 마늘에 비해 10배 더 큰 코끼리 마늘
토스카나 지역은 넓은 평원과 산지가 적절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평년기온이 포근하여 식재료가 풍부한 지역이다. 토스카나 지역 내륙지방에서는 멧돼지, 토끼, 소, 돼지 등을 활용한 다양한 라구가 존재하며 이를 활용한 파스타가 존재한다. 또한 토스카나의 발디끼아나 지방에서는 Pici(피치) 파스타 면이 유명하다. 피치 파스타는 손으로 밀어서 한가닥 한가닥 만들어내는 굵은 파스타로 도톰한 만큼 좋은 식감을 가지고 있다. 마치 우동면과 비슷하다. 발디끼아나 지방의 특산품인 코끼리 마늘과 토마토를 이용하여 만드는 Pici all’agione(피치 알 알리오네)는 이 지방의 유명한 파스타 요리이다.
로마가 주도로 있는 라치오 지역! 이 곳은 목축업이 발달한 영향으로 치즈, 특히 양과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발달하였다. 대표적으로 Pecorino(페코리노 ; 양젖으로 만든 치즈)와 후추로 만든 Cacio e pepe(카쵸 에 페페), 거기에 Guanciale(관찰레 ; 돼지의 턱살이나 볼살을 절인 육가공품)를 추가한 Gricia(그리치아) 파스타가 있다. 아직도 그 기원에 대한 논란이 있는 그 유명한 Carbonara(까르보나라) 역시 이 지역의 대표 파스타이다. 그리고 Gnocchi alla romana(로마식 뇨끼)가 유명하다.
로마식 뇨끼에 대해 개인적으로 첨언하자면, 한국에서 감자 뇨끼를 팬에 지져서 로마식 뇨끼 혹은 구운 뇨끼로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오류로써, 로마식 뇨끼는 감자가 아닌 세몰리나로만 만들며 팬에서 구운 후 치즈를 뿌려 그라탕하여 완성해야만 한다.
뇨끼를 만드는 과정, 하나씩 손으로 빚어낸다
Pasta in Southern Italy
파스타의 발상지 이탈리아 남부
남부지역은 건파스타의 발상지 답게 건파스타 혹은 세몰리나와 물을 이용한 반죽으로 만든 파스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계란을 반죽에 활용한 파스타 역시 사용하지만 비율로 보자면 세몰리나와 물을 섞는 반죽이 압도적이다.
라치오에서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면 있는 캄파니아에는 그 유명한 나폴리가 위치하고 있다. 피자의 도시로도 유명한 나폴리 역시 해안가이기에 항구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봉골레 스파게티, 해산물 파스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의외일 수도 있지만, 나폴리식 라구 역시 유명하다. 나폴리식 라구는 소고기, 살시챠, 돼지고기의 다양한 부속 부위(껍데기, 머리, 족 등)을 활용하여 토마토 소스에 장시간동안 푹 삶아낸 것으로 볼로냐식 라구와는 완전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다. 라구가 있다면 으레 그렇듯 라자냐가 존재하는데, 나폴리식 라자냐도 유명하다. 또한 소렌토, 카프리 지역에서 유명한 레몬 파스타 역시 대표적이다.
이제 좀 더 밑으로 내려와 풀리아에 도달하였다. 풀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파스타는 단연 orecchiette(오레키에떼)이다. 세몰리나와 물 반죽으로 만들어진 이 파스타는 Cime di rapa(치메 디 라파), 즉 무청과 마늘, 엔초비와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가장 유명한 파스타이다.
그 외에 풀리아에서는 식용 말미잘을 활용하여 스파게티를 만든다. 사르데냐에서도 소비되는 식용 말미잘은 Orziadas(오르지아다) 혹은 Anemone di mare(아네모네 디 마레)라고 불리는데 그 맛이 전복의 내장을 농축해 놓은 것과 같은 진한 바다 맛이 난다. 간단하게 튀겨서 먹거나 파스타 소스로 활용한다.
라구와 토마토 소스, 치즈가 흘러 넘치는 나폴리 라자냐
두툼한 할머니의 손으로 오레키에테를 만드는 숙련된 모습
이탈리아 최남단의 칼라브리아에서는 페페론치노를 활용하여 모든 요리를 매콤하게 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곳에서는 페페론치노를 가득 넣어 스프레드처럼 발라먹을 수 있는 햄 Nduja(은두야)가 생산되며 이를 활용한 스파게티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보석과 같은 두 섬,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살펴보자.
시칠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파스타를 꼽자면, 해산물을 활용한 것을 제외하고 Pasta alla norma(파스타 알라 노르마)가 있다. 튀긴 가지와 토마토 소스에 Mezza maniche(메짜 마니체)나 Paccheri(파케리)를 이용하여 만든 파스타 위에 염장하여 단단하게 굳힌 Ricotta salata(리코타 살라타 ; 리코타를 가염하고 숙성시켜 만든 비교적 단단한 치즈)를 그레이터로 듬뿍 갈아 얹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 리코타 살라타가 없다면 Norma(노르마) 파스타의 완전한 맛을 절대 느낄 수 없을 만큼 핵심 재료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시칠리아는 역사적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특징으로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요리를 꼽자면 바로 Couscous(쿠스쿠스)를 꼽을 수 있다. 세몰리나를 이용하여 만든 파스타의 한 종류로써 작은 좁쌀 크기의 면이다. 주로 차갑게 먹는 전채 요리로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사르데냐에는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화려한 요리는 없지만 투박한 요리가 발달하였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Culurgiones(쿨루르지오네)다. 라비올리의 한 종류로 빚는 모양이 마치 우리나라의 만두와 같은데 라비올리 속으로는 찐 감자, Pecorino(페코리노) 치즈와 민트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스파게티요리로 sardina (사르디나 ; 정어리)와 야생 펜넬 줄기를 활용하여 만드는 Spaghetti with sardine(사르디네 스파게티)가 있다.
좁쌀 크기의 파스타 면인 쿠스쿠스는 주로 전채요리에 샐러드와 함께 쓰인다
Spaghetti with sardine(사르디네 스파게티)
이렇게 간단하게 이탈리아 북부, 중부, 남부지역에 따른 대표적인 파스타 요리를 들여다보고 이를 통한 지역적 특성을 알아 보았다. 내륙지방에서는 각 지역 스타일의 고기를 활용한 다양한 라구가 존재하며 항구도시에서는 공통적으로 봉골레 파스타, 해산물 파스타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형적인 특색을 제외하고 본다면 지역별로 파스타를 만드는 재료부터 방법까지 각양각색으로 나뉘는 것이 이탈리아 파스타의 특징이자 가장 큰 매력이며, 이것이 파스타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글 김밀란(본명 김민석)셰프
이탈리아 AlMA 요리학교 졸업 / 이탈리아 밀라노 미슐랭 2스타 셰프
누구보다도 파스타에 진심. 삼시세끼 파스타만 먹을 정도로 파스타에 미쳐 살았다. 내가 만든 파스타가 더 맛있길 바라는 마음, 더 잘 만들고 싶은 욕심에 모은 돈 끌어 모아 이탈리아로 직행했다. 알마(ALMA) 요리학교 졸업 후 현재는 이탈리아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서 7년째 셰프로 일하며 여전히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20만 구독자들의 랜선 요리 형님 〈김밀란〉으로 활약하며 영상을 통해 그간의 내공을 분출하는 중이다. 누구나 실패 없이 맛도 영양도 듬뿍 담긴 파스타를 즐길 수 있도록, 이탈리아 본토의 맛을 당신의 식탁에 전달하고자 한다. 저서로는 <김밀란 파스타>, <김밀란 리조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