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이게 다 파스타 때문이다.
기자 일을 그만두고 무작정 이탈리아로 날아가 요리를 배우고, 운 좋게도 음식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요리하며 먹고 살고 있는 게 말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한낱 면 요리가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해지지만 사실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맛본 파스타가 너무 감동적이었다든가, 어머니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는 것 같은 그런 극적인 사연은 없었다. 오히려 생존과 연관된 처절함이 발단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자취를 하게 되면서 생긴 골칫거리 중 하나는 먹는 일이었다. 밖에서 충분히 사 먹을 정도로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았고, 그렇다고 매 끼니를 만들어 먹는 것도 혼자 사는 게으른 남자에겐 쉽지 않았다. 자취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어머니가 계신 집에 있을 땐 마치 마법처럼 냉장고 속 반찬이 단 한 번도 바닥을 보이지 않고 늘 가득 채워졌는데 집을 떠나면 냉장고는 더 이상 기적을 부리지 않는다는 걸. 그럴싸한 집밥처럼 준비해 먹으려면 꽤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일단 밥을 지어야 하고, 적어도 서너 가지 이상의 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밥 그릇, 국 그릇, 반찬 용기 등 그릇을 많이 쓰니 뒷정리도 번거롭다. 혼자 사는 이십 대 게으른 남학생에겐 집밥 스타일의 끼니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다.
특별히 면 요리를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좋아하지 않음’은 정말 좋은 걸 경험하지 못했을 때 갖는 선험적 편견에서 비롯된다. 나에게 면 요리는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지도 않는 그런 존재였다. 딱히 맛있는 파스타를 맛본 경험이 없었는데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가난하고 게으른 그 자취생은 파스타를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요즘이야 손가락질 몇 번이면 맛있는 파스타 만드는 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 때는 정보가 너무 없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여러 재료를 넣어 가며 만든 파스타의 맛은 꽤 먹을 만했다. 파스타를 만드는 방법이야 라면을 끓이는 것과 별반 다른 게 없지만 훨씬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아마 그 때 처음으로 스스로 요리라는 걸 해 보았고, 그 결과물이 맛있었을 때 얻는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요리하는 즐거움의 세계로 가는 길을 터준 게 바로 파스타였던 셈이다.
파스타를 비롯한 면 요리는 면 자체만으로 요리가 되지 않는다. 소스나 국물이 더해졌을 때 하나의 요리로 완성된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면과 소스만 있으면 다른 게 필요 없다는 말과 같다.
반찬을 여러 개 구비해 두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물을 끓일 냄비와 팬, 그리고 접시 하나만 있으면 된다. 뒷정리도 깔끔하다. 입맛대로 요리해 먹는 재미도 있고, 간편하고, 그리고 집밥보다 뭔가 있어 보인다는 무형의 만족감도 선사해 준다. 뭔가 많은 걸 넣지 않아도 일단 잘 말아 놓으면 그럴싸해 보인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 초대해서 같이 먹기에도 좋다. 이보다 더 적합한 자취 요리가 또 있을까.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도 파스타는 집에서 해 먹는 유일한 요리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수 없이 만든 파스타들이 과연 제대로 된 파스타였을까. 애초에 제대로 된 파스타라는 게 무엇일까. 파스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해 보아도 호기심은 쉽게 충족되지 않았다. 급기야 파스타의 고장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을 가서 쿠킹 클래스를 듣고 오면 될 걸 굳이 직장을 그만두고 갈 필요까진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때는 그게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토록 고대했던 진짜 파스타와 마주하게 될 기대로 부푼 나는 그렇게 파스타의 본고장으로 날아갔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짧은 시간 동안 각지의 대표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보고 맛을 보았다.
아마도 원래부터 요리사 였다면 파스타의 기술적인 부분, 그러니까 면과 소스는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 어떤 재료의 조합이 맛을 내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전 직업 때문인지 파스타가 가진 문화적 배경에 오히려 더 매료되었다. 왜 이 지역과 저 지역의 파스타 스타일은 다른 지, 왜 이 지역에서는 이런 재료가 사용되는지, 어째서 면의 형태가 다른 지가 궁금했다. 그 동안 알고 있던 파스타가 이탈리아의 역사 문화적인 맥락에서 어떤 지위를 누렸고 전통이 어떻게 현대에 와서 변형되고 또 보존 되었는지 공부하는 적은 파스타를 만드는 것 못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흔히 해외에서 변주된 파스타를 퓨전 파스타, 현지식으로 재 해석된 파스타 등으로 부르지만 넓은 의미에서 정통이나 오리지날리티는 해외에서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 있다. 이탈리아 파스타가 가진 진짜 힘은 이탈리아의 식재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밖으로 나오는 순간 파스타는 정통성을 잃는다. 이탈리아가 고집하는 정통이란 이탈리아산 치즈, 이탈리아산 건조 파스타, 이탈리아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이탈리아산 토마토홀 등 반드시 ‘이탈리아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여야 한다. 이탈리아의 것이 아닌 게 들어가는 순간 정통성은 혼탁해진다. 정통성의 강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이면서 동시에 농산물과 식재료 수출을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하다. 얄밉지만 인정할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적어도 이탈리아 음식은 늘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된 파스타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에 다녀왔건만 요즘은 예전만큼 파스타를 자주 만들어 먹진 않는다. 어설프게 배워 와서 잘 할 순 없어도 어떤 게 잘못한 것인지는 아는 눈이 생겨버린 탓일까. 현지에서 배우고 맛보며 생긴 기준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걸까. 잘 모를 땐 여러 가지 식재료로 실험도 하고 기준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파스타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요리가 즐거웠고 파스타를 먹고 나누는 일은 몹시 황홀했다.아무 것도 없는 주방에서 두 세 가지 재료로 만든 어설픈 파스타였지만 주린 배를 채우는 끼니로도, 친구와 함께 하는 안주로도,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특식으로 한 시절을 채워준 오랜 친구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가끔 그 때 만든 말도 안 되는 파스타가 그립다는 지인들이 종종 있다. 그냥 하는 말 이겠지 하며 웃어 넘기지만 스스로도 그때의 파스타가 문득 그리워진다. 오랜만에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파스타를 말아야겠다.
글 장준우 셰프
셰프 겸 푸드라이터
기자 시절엔 세계를 누비며 요리하고 글 쓰며 사진 찍는 삶을 꿈꾸었다. 지금은 그 꿈을 이루는 중이다. 현재 홍은동에서 와인 비스트로 “어라우즈(arouz)”를 운영하며 다시 음식 방랑길에 오를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며 집필한 저서로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플레이버 보이』, 『장준우의 푸드오디세이』가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수요미식회], [선을 넘는 녀석들] 등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