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종가에서 만드는 안동국수. 제사 때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는 음식이다.
© 경북일보
안동국수의 면은 콩가루와 밀가루의 합작품이다.
안동지역은 콩 재배 면적이 1890 헥타르(2022년 기준, 농업기술센터 자료)에 이른다. 토질과 배수가 뛰어나 옛날부터 우수한 품질의 콩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바로 안동이다. 그래서 안동국수에는 콩가루가 들어간다. 콩가루가 들어간 반죽은 일반 밀가루로만 된 반죽보다 경도가 강해 뭉치고 밀 때 힘이 많이 들어가고 어렵다. 또한 밀고 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 밀가루 반죽이 말 그대로 종잇장처럼 얇게 펼친다. 안동국수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안동국수는 경상도 방언으로 국수를 ‘국시’라고 해서 안동국시라고도 부른다. 다만 따뜻한 국물로 내놓으면 (안동)국시 또는 누름국수라고 하고, 차가운 국물로 내놓으면 건진국시(건진국수)라고 한다.
안동국수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계절이나 날씨, 그날의 습도에 따라 2:1 혹은 3:1비율로 반죽한다. 건진국수는 썰어 낸 면을 다시 콩가루에 묻혀서 끓는 물에 삶는다. 삶아낸 면을 건진 다음 찬물에 행구어 한 사리씩 소쿠리에 담는다. 차갑게 씻어 놓은 면 위에 고명을 얹고 차가운 국물로 내는 것이 건진국수다. 누름국수는 면과 국물을 함께 끓이는 제물국수 방식으로 조리한다.
대부분 안동국수는 얇은 칼국수 면을 대표적인 특징으로 하는데 건진국수는 아주 얇게 썰어내고, 누름국수는 건진국수 보다는 조금 두껍게 썬다. 콩가루가 더해져서 면이 뚝뚝 잘 끊기는 특징이 있다. 면을 입에 넣고 씹으면 콩가루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국물 내는 방법은 종가마다 다르다.
안동의 건진국수 육수에는 주로 은어(銀魚)를 사용했다. 이는 안동의 명물음식으로 유명하다. 매년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안동으로 올라오는 은어는 비린내가 없고 수박 향이 나서 '수중군자(水中君子)'라고도 불린 민물 생선이다.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며, 바다에 살다가 봄에 강으로 올라와 살다가 가을에는 산란을 위해 하류로 내려간다. 양반가에서 내려오는 음식인 만큼 맛 또한 깊은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은어로 국물을 낸 안동국수는 흔치 않은 맛으로 살면서 처음 먹어보는 맛을 느끼게 된다. 멸치 육수와 비슷하지만 멸치 특유의 냄새가 없고, 국물의 목 넘김이 굉장히 깔끔하다.
전통적으로 누름국수의 국물 내는 방법은 은어, 양지머리, 닭, 꿩 등을 사용해 국물을 낸다. 이는 종가마다 다른 비법을 볼 수 있다. 낙동강과 그 지류를 끼고 있는 종가는 은어를 많이 사용하고, 강과 지류에서 멀리 떨어진 종가는 양지머리와 닭, 꿩 등을 쓴다. 국물에 참깨와 콩 등을 섞어 내는 집도 있고, 맑은 국물로 내는 집도 있다. 최근 유명한 안동국시집들은 대부분 양지머리와 소뼈로 국물을 내다보니 흰색이다. 유명 정치인들이 애용했던 서울의 유명 안동국수 집들도 고기와 사골을 우려낸 진한 맛의 칼국수라고 보면 된다.
소박한 담음새와 깔끔한 맛의 이 국수는 사실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면 결코 소박한 음식은 아닐 것이다. 귀한 밀가루와 생콩가루를 섞어 딱딱한 반죽을 만들고 밀고 치대기를 수 백 번 반복하며 창호지처럼 얇게 펴서 칼로 얇게 썰어 낸 국수와 정성껏 육수를 만들어 끓이니 그 맛에 기품이 있다.
비린내가 없고 수박 향이 나서 ‘수중군자 水中君子’라고
불리는 은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봄에 강으로 올라온다.
해마다 음력 6월 15일 유두절에 제사를 올리는 안동 도산면에 위치한 종가의 종택 수졸당
© 여행스케치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에 안동의 <수졸당 종택> 건진국수가 유명세를 타게 된다. 누들로드 ‘한강 이남의 면, 칼로 썬 밀국수’편에서 안동의 종택을 소개한 이유는 전통적인 국수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졸당의 제사 중 가장 유명한 유두절에 드리는 제사인 유두차사다.
유두천신을 지내는 유두절 풍속은 신라시대부터 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쌀을 수확하기 전 여름 무렵에 열매를 맺는 참외, 수박 등의 과일과 햇밀로 만든 국수 등이 제사상에 올랐다. 유두절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3세기 고려 명종 때이다. 김극기가 저술한 <김거사집 金居士集>에 “6월 15일을 유두절이라 하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어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기록했다. 140여 년 전 수졸당 제사 장부에 국수 기록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으며 종택의 내림음식으로 유명해졌다.
귀한 밀가루로 인해 자연스럽게 귀한 몸이 되어 버린 국수는 ‘봉제사 접빈객 奉祭祀接賓客’의 음식으로 ‘주자가례’(朱子家禮)등에 ‘제사상에 국수를 올린다’고 써있다. 유서 깊은 가문이 집성되어 있는 안동에서 국수가 명물음식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글 박현진
누들플래닛 편집인
IMC 전문 에이전시 ‘더피알’의 PR본부장이자 웹진 <누들플래닛> 편집인을 역임하고 있는 박현진은 레오버넷, 웰컴퍼블리시스,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코래드 Ogilvy & Mather에서 근무하며 20년 동안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경험했다. 켈로그, 맥도날드, CJ제일제당, 기린프로즌나마, 하이트진로 등 국내외 다수 식품 기업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였으며, ㈜한솥에서 브랜드 담당자로 근무한 경력과 F&B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