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을 잇는 음식’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냉면’이다. 냉면은 남북 교류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자 실향민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소울 푸드’로 불린다. 어쩌다 냉면은 한반도 분단의 역사를 간직한 음식이 되었을까.
평양냉면이 서울에 진출한 시기는 대략 1920년대 말로 추정된다. 당시 종로의 평양루와 부벽부,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등 대규모 냉면집이 자리를 잡았다. 냉면은 서울의 모던보이, 모던걸, 유한층들이 즐겨 먹는 별식이었으며 기생들이 겨울 밤참으로 먹는 음식이기도 했다.
평양냉면이 대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한국 전쟁 전후라고 할 수 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냉면을 만들어 먹었고, 먹고 살기 위해 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실향민들이 많이 거주했던 오장동, 필동, 장충동, 동대문 등지에 냉면집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평양 출신의 장원일씨가 문을 연 우래옥이 그중 한 곳이다.
한국 전쟁 이후, 냉면은 남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강원도 속초 청호동의 아바이마을은 실향민들이 자리 잡은 대표적인 도시다. 8·15 광복 당시 북측에 속했다가 한국 전쟁 이후 남한으로 수복된 지역이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함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실향민들은 북한과 가까운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정착하며 자연스럽게 이북의 음식 문화가 퍼졌다. 개성만두·아바이순대·함흥냉면 등 북쪽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당들은 현재 관광산업의 대표적인 상품이 됐다. 자연환경이 다르니 음식은 지역에 맞춤해 변화해 왔다. 함흥냉면은 가자미식해를 쓰지 않고 속초에서 많이 잡히는 명태로 식해를 만들어 올린다.
1930년대 신문에 실린 아지노모도의 냉면 관련 광고
냉면은 남하할수록 옛 맛 대신 새 맛을 찾아냈다. 부산에는 냉면의 사촌인 밀면이 있다. 부산 밀면도 한국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만든 음식이다. 메밀가루 대신 보급품으로 흔해진 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섞어 면을 만들었다. ‘밀냉면’ ‘부산냉면’으로 불리다 부산밀면으로 이름이 굳어졌다. 밀면의 원조 격으로 꼽히는 집이 부산 남구 우암동의 내호냉면이다. 이곳은 함경도에서 냉면 장사를 하던 고 정한금 할머니가 부산으로 피난 와 차린 냉면집이다. 3대 사장인 이춘복씨의 딸 유미옥씨는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밀면을 만들어 판 게 1959년”이라면서 “밀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들어 팔던 음식”이라고 했다. 얼음 동동 띄운 차가운 밀면은 쇠고기 육수로 맛을 낸다.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 면은 메밀면보다 하얗고 쫄깃하다. 고명으로는 돼지고기 편육, 오이, 양념 무, 다진 양념 등이 올라간다. 육수는 시거나 쏘는 맛이 없어 밍밍하다. 전쟁 뒤 시장통에서 먹던 피난민의 음식답게 맛도 가격도 소박하다. 피난처에서 고향의 맛을 흉내 내 만든 밀면은 전쟁이 남긴 음식이다.
1954년에 촬영된 부산 중구 남포동의 자갈치시장 옆 함흥냉면. 클리포드 제공
남한의 냉면이 실향민들이 뿌리내린 지역에 맞게,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진화했다면 북한의 냉면도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평양음식점 옥류관 냉면을 맛본 이들은 우리가 알던 정통 평양냉면과 달리 냉면의 색이 검은색에 가깝고 전분이 섞여 질기며, 국물이 새콤달콤했다고 공통으로 전한다. 옥류관은 대동강변의 옥류바위 위에 세워진 음식점이다.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61년에 문을 열었다. 옥류관은 평양을 방문하는 국빈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까지 꼭 들러야 하는 식당으로 정평이 나 있다. 평양에는 “옥류관 랭면을 먹어보지 못했으면 평양에 갔다 왔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평양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보니 옥류관 냉면은 남북 교류 협력사업이 펼쳐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만찬에 등장했다. 분단 55년 만인 2000년 6월, 평양에서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평소 꼭 가봤으면 했던 곳”이라며 방북 첫날 옥류관에서 냉면을 맛보고 감격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연 노무현 대통령도,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을 연 문재인 대통령도 옥류관 냉면을 맛봤다. 남북 사이의 어색함을 풀어주는 화해와 평화의 음식으로 냉면만 한 게 없었다. 옥류관 냉면의 높은 인기는 2000년에 제작된 영화 <옥류풍경>으로 짐작해 볼 만하다. 북한에 서 만든 이 영화는 은반 위를 달리는 빙상 무용수와 옥류관 주방에서 국수와 씨름하는 남자 요리사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준다. 옥류관 평양냉면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영화인데 주제가인 ‘평양랭면 제일이야’ ‘냉면찬가’ 등의 노래도 북한에서 인기를 얻었다. 북한의 평양냉면 자부심은 ‘평양랭면 제일이야’ 노래가사에서 엿볼 수 있다.
“랭면 랭면 평양랭면 천하제일 진미로세
젊은이도 늙은이도 먼저 찾는 랭면일세
야 참 맛도 좋다 한 그릇은 너무도 적어
왓하하하 옥류관은 평양의 자랑일세”
대동강변 옥류바위 위에 지어진 옥류관 ⓒ조선신보
한참 건설 중인 옥류관 ⓒ조선신보
옥류관의 현재 내부 ⓒ조선신보
오늘날 냉면은 남북한에서 고루 사랑받는 음식임이 틀림없다.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을 먹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분단의 역사와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실향민들이 운영하는 전통의 냉면집들은 단순한 식당을 넘어 실향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그들의 아픔과 추억을 나누는 공간이었다. 고향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삶에서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냉면만큼 평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참고문헌
-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깊은 나무)
- <평양랭면,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되갔구나>(폭스코너)
- <음식이 있어 서울살이가 견딜 만했다>(따비)
글 김미영
한겨레신문 영상소셜팀 기자
<한겨레21> <한겨레신문>에서 경제부, 문화부, 사회부 등을 거친 21년 차 기자다. 면발 뽑듯 많은 기사를 쓰며 ‘선주후면(先酒後麵, 먼저 술 마시고 국수를 먹는다)’을 생활화하다 <대한민국 누들로드>라는 책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