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도시대 「야키하치만 축제」, 카와가와 쿠니 사다미 作 소바를 포장마차에서 판매하고 있는 그림이다.

점포형 소바 가게를 소개하는 그림 @오타기념 미술관
막부 말, 에도의 마을에는 700채 이상의 소바 가게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음식점으로서 상당한 점포수가 있었다.
소바, 알고 먹으면 약이다
일본에서 소바는 오랜 시간 동안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지혜로운 음식으로 자리잡아 왔다. 에도 시대(1603–1867), 일본에서는 ‘밥과 반찬’이라는 구성의 식사가 일반화되었고, 기술의 발달로 백미가 널리 보급되었다. 백미는 하얗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지만, 그 뒤편에는 뜻밖의 그림자가 있었다. 영양소가 제거된 정제 쌀의 과도한 섭취는 비타민 B1 결핍을 불러왔고, 이는 ‘각기병’이라는 질병으로 나타났다. 당시 각기병은 ‘에도병’이라 불릴 만큼 에도 지역을 휩쓸었고, 이는 식문화의 전환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그때 사람들은 특별한 사실에 주목했다. “소바를 먹는 사람들은 각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입소문은 에도 거리의 입에서 입으로 퍼졌고, 소바는 곧 건강을 지키는 음식으로 떠오르며 우동을 제치고 일본인들의 식탁 중심에 우뚝 섰다. 한때는 가난한 이들의 허기를 달래던 음식이었지만, 18세기 이후 소바는 오히려 ‘기호식품’이자 ‘생활 약’으로서의 명성을 쌓게 된다.
현대에 들어와 소바가 건강식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야쿠미(藥味 ‘양념’이라는 뜻)의 존재도 있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야쿠미도 맛의 하나”라고 일컬어 왔다. 단순히 양념으로 쓰이는 것을 넘어서 음식의 본연의 맛을 살리고 건강을 보조하는 역할까지 한다. 소바를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다진 파, 간 무(오로시), 와사비는 그저 곁가지가 아니다. 파는 비타민B1의 흡수를 도우며, 와사비는 항균 작용과 소화 촉진의 효과가 있다. 특히 막 갈아낸 무는 비타민C가 풍부해 감기 예방에도 좋고, 특유의 매운맛이 소바의 단맛을 끌어올린다. 가끔은 김, 참깨, 메추리알, 차조기 잎, 생강 등도 야쿠미로 등장하며 소바의 개성을 더한다.
소바집에서의 마지막 코스, ‘소바유(蕎麦湯)’는 그야말로 영양과 전통이 만나는 정점이다. 메밀면을 삶은 물로 만든 소바유에는 비타민 P로도 불리는 루틴과 단백질이 녹아있다. 면을 끓이는 과정에서 빠져나온 이 영양분은 소바를 다 먹은 뒤에도 몸을 보충해 주는 귀한 자원이다. 물론 소바유는 메밀가루가 70~80퍼센트 이상 들어간 면을 사용하는 소바집에서만 나온다. 소바유는 그대로 마셔도 좋지만, 남은 쓰유와 섞어 마시면 입 안 가득 메밀의 여운을 남긴 채 마무리할 수 있다.

메밀을 삶은 소바유(蕎麦湯)는 물과 메밀의 영양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수분 보급에 효과적이다. 여름철의 열사병 대책에도 추천하는 이유이다.
소바,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소바는 크게 따뜻한 소바와 차가운 소바로 나뉜다.
이 가운데 따뜻한 소바의 기본형은 ‘가케소바’다. 맑고 따뜻한 국물에 면을 담아낸 단출한 형태지만, 여기에 무엇을 더하느냐에 따라 이름과 풍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달달하게 조린 유부를 얹으면 ‘기쓰네소바’가 된다. 일본어에서 여우를 ‘기쓰네’라고 부르는데, 여우가 유부를 좋아한다고 생긴 이름이다. ‘다누키소바’는 덴푸라 부스러기인 ‘덴카스’가 얹힌 형태다. ‘다네누키’, 즉 ‘덴푸라가 빠졌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튀김을 얹으면 ‘덴푸라소바’, 오리고기와 파를 더하면 ‘가모난반’, 닭고기를 얹으면 ‘도리난’이 된다.
찬 소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학이다. 대나무 발 위에 담겨 나오는 ‘자루소바’는 대표적인 차가운 소바다. 면을 시원하게 식힌 뒤, 쓰유에 찍어 먹는 이 단순한 방식은 그 자체로 정갈함의 미학을 보여준다. 여기에 간 무를 얹으면 ‘오로시소바’, 간 참마를 얹으면 ‘도로로소바’가 된다. 특히 도로로소바는 참마 특유의 끈적하고 미끄러운 질감이 면을 감싸며 목 넘김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조리법과 재료의 조합은 소바 한 그릇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맑고 따뜻한 국물에 면을 담아낸 기본형 온소바인 ‘가케소바’
© dancyu 요리를 좋아하고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잡지

차가운 소바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자루소바 © MIZKAN
소바를 먹는 데에도 나름의 순서와 방식이 있다. 먼저 면만 먹어 향과 삶은 정도를 확인하고, 쓰유는 조금씩 종지에 따르며 진한 맛을 조절한다. 와사비는 쓰유에 풀지 않고 면에 얹어야 본연의 향이 살아난다. 와사비를 쓰유에 풀지 않는 건, 와사비의 향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히 다진 파는 나중에 소바유에 넣기 위해 조금 남겨두는 것이 좋다. 소바는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는다.
보통 일본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조용하게 먹지만, 소바 같은 면류를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것이 보통이다. 먼저 한입 분량의 면을 들어 3분의 1 쯤을 쓰유에 담가 한번에 ‘후루룩’ 소리를 내며 입에 넣는다. 그러면서 면의 풍미와 쓰유의 맛을 함께 느낀다. 끝으로 소바유를 맛본다. 메밀의 영양분이 녹아 있는 소바유는 그대로 마셔도 되고 남은 쓰유에 소바유를 부어서 마셔도 된다. 보통 쓰유 20~30퍼센트에 소바유 70~80퍼센트를 더해주는 것이 좋다. 다진 파를 약간 넣어 먹어도 색다른 맛이다. 이처럼 먹는 법 하나에도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 소바이며, 메밀향 가득한 따뜻한 국물이 입안에 감돌 때, 비로소 식사가 완성된다.
소바, 알고 먹으면 예술이다
소바의 진가는 재료의 구성에서 절정을 이룬다. 메밀가루의 함량에 따라 ‘나나와리(七割)(70%)’, ‘하치와리(八割) (80%)’, ‘규와리(九割)(90%)’, ‘주와리(十割)(100%)’ 소바로 나뉘며, 숫자가 올라갈수록 메밀 본연의 향이 진해진다. 10할 소바는 ‘기코우치(生紛打ち)’, 또는 ‘기소바(生蕎麦)’라고도 부른다.
글루텐이 없는 메밀가루만으로 반죽해서 면을 빚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밀가루와 같은 쓰나기(繫ぎ)(반죽 등의 찰기를 주기 위해 넣는 재료)를 사용하는데, 소바의 쓰나기로 사용되는 밀가루를 ‘와리코(割り紛)’라고 한다.

칸다야부소바의 세이로 소바 글쓴이의 순서대로 먹을 수 있는 상차림을 그대로 보여준다.
쓰나기를 주로 밀가루로 사용하는 이유는 구하기 쉽고 반죽이 편하며 가격도 싸기 때문이다. 또한 밀가루는 메밀 고유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밀가루와 같은 쓰나기를 많이 넣으면 소바 특유의 풍미가 떨어진다. 메밀가루가 많이 들어갈수록 소바 고유의 향과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메밀 100%의 주와리 소바는 소바 애호가들 사이에서 최상급 소바로 손꼽히며, 일본 전국의 유명 소바집에서는 주와리 소바, 또는 적어도 하치와리 소바(니하치 소바)를 내놓는다.
이런 소바의 깊이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소바마에(蕎麦前)’다. 이는 소바를 먹기 전에 간단히 한 잔 술을 곁들이는 에도풍의 식사 예법이다. 당시 에도의 멋쟁이들은 소바만 먹고 가기엔 어딘가 허전하다고 느꼈고, 소바 전에 술 한 잔 곁들이는 것을 하나의 ‘이키(粋, 멋)’로 여겼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도 도쿄의 에도풍 소바집에 살아 숨쉬고 있다.
소바집에서 제공되는 안주는 양보다 정취에 방점을 둔다. 구운 김, 어묵에 와사비를 곁들인 이타와사, 계란말이, 튀김, 된장을 살짝 구운 야키미소 등은 술잔과 절묘한 호흡을 맞추며 ‘소바’라는 무대 위에서 조연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술 한 잔을 기울인 뒤, 세이로소바나 가케소바로 메인을 즐기고, 마지막에 소바유로 마무리하는 이 흐름은 그 자체로 완성된 ‘식사의 구성’이며, 소바라는 장르가 가진 절제의 미학을 드러낸다.

글 이기중 교수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
새롭고 색다른 음식을 찾아 세계를 누비는 ‘푸드헌터(Food Hunter)’이자 식도락가다. 수년간 ‘한국의 맛 연구회’와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서울 반가음식과 궁중음식을 전수받았으며, 맥주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맥주통(通) 이기도 하다. 그동안 160여개 나라를 여행했고, 여행과 음식에 관한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는 ‘지적 보헤미안’이다.
여행 작가로서 <동유럽에서 보헤미안을 만나다>, <북유럽 백야 여행>, <남아공 무지개 나라를 가다>를 냈고, 술과 음식에 관한 책 <유럽 맥주 견문록>, <맥주 수첩>, <크래프트 비어 펍 크롤>, <일본, 국수에 탐닉하다>, <위스키 로드>, <위스키에 대해 꼭 알고 싶은 것들>, <밥 먹으로 일본 여행>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