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육수에 메밀향 그윽한 냉면은 무더운 여름 특히 생각나는 면요리이다. 본래 냉면은 추운 겨울이 제철이요 제 맛이다. 하지만 무더위를 식혀주는 별미로 냉면만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본래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 등 이북이 고향인 냉면이 어떻게 이남으로 내려와 자리잡게 되었을까. ‘대한민국 냉면 계보’를 정리했다.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냉면의 고향
냉면은 오래 전부터 평양사람들이 즐겨 먹는 외식이었다. 1911년 이미 ‘평양조선인면옥조합’이 생길 정도였다. 평양은 물론 평안도 전체가 ‘냉면의 나라’란 별명이 붙을 정도도 냉면은 대중의 일상 음식이었다. 평양에서는 겨울에 냉면을 즐겨 먹었다. 메밀은 가을에 추수를 하여 겨울에 가장 맛과 향이 좋았기도 했지만, 냉면 국물로 주로 사용한 동치미 국물이 그 특유의 ‘쨍’하게 시원한 맛은 낼 때도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를 이용한 고기 육수에 메밀면을 말아낸 냉면도 동시에 존재했다.
함경도에서는 1920년대 감자나 고구마로 만든 전분 ‘국수’가 대중적 외식이었다. 감자 전분 면발에 가자미회를 얹고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만든 매콤한 양념에 비빈 ‘회국수’는 1930년대 처음 만들어졌다고 음식사학자들은 추정한다. 주로 흥남 지역에서 회국수를 많이 먹었다. 현재 북한에는 국물 없는 회국수보다 국물 있는 ‘감자농마국수’를 더 즐겨 먹는다.
황해도 냉면의 역사도 평양에 뒤지지 않는다. 1928년 4월 21일 황해도 사리원의 냉면가게들은 조합원 70명으로 구성된 ‘면옥노동조합’을 결성할 정도로 세(勢)가 대단했다. 사리원과 해주가 황해도 냉면의 중심지였다. 같은 물냉면이지만 황해도 냉면은 평안도보다 면발이 굵고 돼지고기 육수를 써서 진한 고기맛을 기본으로 하면서 간장과 설탕으로 달콤짭짤한 맛을 냈다. 면발은 진한 육수 맛에 밀리지 않도록 굵게 뽑는다.
냉면, 고향 이북을 떠나 이남에 정착하다
서울에 냉면이 외식으로 등장한 건 19세기 후반이다. 그러다 1920년대가 되면서 냉면집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이때 이미 서울에선 냉면이 여름 별식이었다. 서울식 냉면집들은 분단과 전쟁 이후 대거 내려온 평안도 사람들이 만든 냉면집들에 밀려 사라진다.
6.25전쟁 이후 평안도 실향민들은 남산 일대와 남대문, 영락교회 주변에 정착했다. 평안도 출신들이 운영하는 냉면집들은 평안도에서 흔히 사용하던 동치미 국물 대신 맑은 소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재료와 기후 차이 때문에 동치미 국물만으로 제대로 맛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래옥’ ‘평양면옥’ ‘남포면옥’ ‘을지면옥’ ‘필동면옥’ ‘서북면옥’ ‘을밀대’ 등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의 평양냉면집들이다. ‘벽제갈비’에서 운영하는 ‘봉피양’과 경기도 판교에 문 연 ‘능라’가 신흥 평양냉면 강자들이다.
함경도 사람들은 중부시장과 청계천 오장동 부근 자리 잡았다. 1953년 ‘오장동함흥냉면’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함흥냉면의 질긴 역사가 시작된다. 전성기 때는 오장동에만 20여 개의 함흥냉면집이 있었으나, 평양냉면이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는 것과 반대로 함흥냉면은 최근 하락세가 뚜렸하다. ‘함흥곰보냉면’과 ‘오장동함흥냉면’이 그나마 함흥냉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황해도와 가까워서였을까, 인천에서는 6.25전쟁 이전부터 냉면이 성행했다. 1936년 인천의 ‘냉면배달조합’ 기사가 신문에 실릴 정도였다. 6.25가 터지자 황해도 사람들은 백령도로 피난한다. 실향민이 많이 정착하면서 백령도에 냉면문화가 꽃핀다. 백령도 냉면이 유명해지자 백령도 출신들이 인천에서 냉면을 팔게된다. 백령도식 냉면은 육수에 까나리 액젓을 넣는 게 특징이다. 인천 ‘부평막국수’ ‘변가네 옹진냉면’과 백령도 ‘사곶냉면’이 백령도식 냉면 명가들이다.
경기도 양평 옥천면은 인천 백령도와 더불어 ‘황해도식’ 혹은 ‘해주식’ 냉면 문화가 뿌리 내린 곳이다. 1952년 황해도 출신 이건협씨가 옥천에 ‘황해냉면’이란 상호를 걸고 시작해 현재는 예닐곱 개의 냉면집이 성업 중이다. 황해냉면은 지금은 ‘옥천냉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옥천고읍냉면’도 꽤 잘 한다.
대전 냉면의 역사는 평양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던 가문의 후손인 박근성씨가 6.25 때 월남해 차린 ‘숯골원냉면’이 시작이다. 대전 숯골은 평안도 출신 피란민들이 대거 자리잡은 지역이다. 닭육수와 동치미를 섞은 육수를 사용한다.
의정부와 동두천 일대에는 1952년부터 미군 기지와 함께 많은 실향민이 정착했다. 평양 출신 실향민이 1953년 창업한 동두천 ‘평남면옥’은 평양 장터에서 팔던 것과 비슷한 냉면을 파는 집으로 알려졌다. 얼음이 둥둥 뜬 육수는 서울 마포 ‘을밀대’와 비슷하다. ‘의정부평양면옥’은 1.4 후퇴 때 평양에서 피란 온 홍진권씨가 1970년 경기도 전곡에서 냉면집을 열었다가 1987년 의정부로 옮겨 지금까지 성업 중이다.
의정부평양면옥은 대한민국 냉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집이다. 서울의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이 홍씨의 딸들이 운영하는 집들이니, 홍씨 집안이 대한민국 냉면의 큰 흐름을 만들고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지머리를 삶아 기름을 걷어낸 다음 차갑게 숙성시켜 동치미 국물을 약간 더하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게 의정부평양면옥 계열 냉면집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평택은 전쟁 중이던 1951년 피란민 수용소와 미군 기지가 들어섰다. 전쟁이 끝난 뒤 황해도와 평안도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냉면이 자리잡았다. 평안도 강서에서 냉면가게를 운영하던 실향민이 1953년 ‘강서면옥’을 시작했다. 강서면옥은 1958년 서울로 이전했다. 1930년대 평안도 강계에서 ‘중앙면옥’을 운영하던 고학성씨의 아들이 1974년 ‘고박사냉면’(고복례냉면으로 상호 변경)을 개업한다. 강서면옥과 고박사냉면은 모두 양지머리와 사태를 삶아낸 육수를 기름을 제거해 맑헤 한 뒤 동치미 국물을 섞고 간장을 살짝 쳐 갈색이 도는 육수를 만든다.
대구 최초의 평양식 냉면집은 1951년 평양 실향민이 창업한 ‘강산면옥’이다. 이후 1960년대 중후반 부산 ‘안면옥’ 창업주의 아들이 ‘대동면옥’을, 1969년에는 안면옥이 부산에서 옮겨와 ‘부산안면옥’을 차리면서 냉면이 대구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다. 소기기 양지를 중심으로 끓여낸 맑은 육수에 간장으로 감칠맛을 더하고 식초를 조금 쳐 동치미처럼 약간의 신맛이 감도는 게 대구식 평양냉면의 특징이다.
풍기는 경상북도에서 실향민이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다. 휴전 후 풍기에 모여든 실향민들은 ‘풍기인견’으로 유명한 견직물 사업으로 큰 돈을 번다. 이들과 함께 평양식 냉면집들도 번성했다. 1970년대 이후 풍기 견직물 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냉면집들도 대부분 문 닫았다. 지금 풍기를 대표하는 냉면집으론 ‘서부냉면’을 꼽을 수 있다. 평북 운산 출신 창업주가 1973년 문 연 집이다. 평안도에서 육수로 즐겨 사용하던 꿩과 돼지고기 국물을 경상도 사람들은 싫어했고, 그래서 현재의 소고기 육수가 만들어졌다.
강원도 속초에는 휴전 이후 함경도 실향민들이 모여들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이던 청호동과 그 건너편인 중앙동, 금호동에 피란민들이 둥지를 틀었다.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함흥냉면집으로 알려진 ‘함흥냉면옥’이 1951년 중앙동에 자리 잡았다. 함흥냉면옥은 ‘속초식’ 함흥냉면을 만들어냈다. 면의 주재료였던 감자 전분이 고구마 전분으로 바뀌었고, 냉면에 올리는 꾸미가 가자미회에서 명태회로 바뀌었다. ‘함흥냉면옥’ ‘양반댁’ ‘단천식당’ ‘대포함흥면옥’이 속초의 함흥냉면 명가로 꼽힌다.
함흥냉면이 현지화한 부산 ‘밀면’, 독자적으로 탄생한 ‘진주냉면’
함흥 실향민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간 함흥냉면은 부산의 번성했던 면(麵)문화와 만나 밀면이라는 새로운 면요리로 재탄생한다. 1954년 부산 남구 우암동에서 흥남철수 당시 내려온 실향민들의 대규모 피란촌이 형성된다. 함경도 내호에서 냉면집을 하던 실향민이 고향 이름을 따 1954년 ‘내호냉면’을 개업한다. 고향과 다른 기후와 재료 때문에 밀가루 70%에 고구마 전분 30%를 섞은 밀면을 1959년 만들어낸다. 밀면은 초기에는 ‘밀냉면’ ‘부산냉면’ 경상도냉면’으로 불렸다. 밀면이 얼마나 냉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탄생하게 됐는 지 알 수 있다. ‘내호냉면’ ‘시민냉면’ ‘개금밀면’ 등이 밀면 원조집으로 꼽힌다.
경남 진주는 평안도나 황해도, 함경도로부터 영향 받지 않은 자생적 냉면문화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진주만의 냉면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진주냉면’이라 불린다. 진주냉면은 19세기 말 시작됐다고 짐작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옥봉동을 중심으로 ‘은하식당’ ‘평화식당’ 같은 냉면집이 6~7개 있었지만 1960년대 말 거의 명맥이 끊겼다. 최근 진주냉면이 다시 명성을 얻고 있다. 새롭게 각광받는 진주냉면은 해물 육수를 기본으로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면을 사용하며 소고기 육전을 고명으로 올린다. ‘하연옥’이 진주냉면 명가로 꼽히나, 아직은 맛의 완성도가 조금 떨어진다. 진주 바로 밑 사천에는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냉면집인 ‘재건냉면’이 있다. 1948년 일본에서 귀국한 창업주가 만든 냉면집이다. 돼지고기 육전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평양냉면은 오랫동안 나이 지긋한 이북 출신 어르신들이나 먹는 음식으로 치부됐으나, 최근 젊은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새로운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중이다. 이에 맞춰 판교 ‘능라’, 서울 논현동 ‘진미평양냉면’ 등 신흥 평양냉면 맛집이 속속 문 열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함흥냉면과 황해도식 냉면의 재기도 기대된다.
글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