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세 나라는 같은 듯 다르다. 계절에 따라서 먹는 시식(時食)이 발전했고, 여름이면 더운 밥보다는 시원한 면 요리를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얼마나 시원 하느냐, 즉 온도차가 존재한다.
이가 시리도록 차가워야 제 맛,
한국의 여름면
한겨울 장독대에서 꺼낸 동치미는 지금 우리가 김치냉장고에서 꺼내는 그 맛과 다른 맛, 다른 느낌을 준다.
뭐든 확실해야 하는 한국인에게 여름 면 요리는 이가 시리도록 차가워야 한다. 대표적 여름 국수인 평양냉면이 그렇다. 육수 표면이 살얼음으로 덮여 나와야 만족하는 손님이 다수다. 냉면이 이토록 차가울 수 밖에 없는 건 본래 겨울 음식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수확한 햇메밀로 뽑은 국수를 동치미 국물과 소·돼지 등 고기 국물을 섞은 육수에 말아서 냈다.
냉면을 일부러 차갑게 식혀 먹은 건 아니다. 혹독한 이북 겨울 날씨에 자연적으로 차가워졌다. 평안도, 황해도 등 이북 출신 어른들은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뜨거운 아랫목에 앉아 냉면 육수를 들이켜면, 차가운 육수와 면발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몸이 부르르 떨리는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종종 말한다.
겨울이 제철이던 냉면이 여름 음식이 된 건 20세기 들어서다. 더 정확하게는 1910년대부터다.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드는 근대적 제빙기술과 얼음을 녹지 않게 보관하는 냉동·냉장시설이 1800년대 말 독일과 미국에서 개발됐고, 1900년대 초 한반도에 소개됐다. 여름에 얼음을 구할 수 있게 되자 냉면은 사시사철 먹는 음식이 됐고, 특히 여름에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됐다.
냉면이 여름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은 후로 한국의 여름 면 요리는 넉넉하게 담은 차가운 육수에 국수가 잠겨 나오는 스타일이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냉면, 냉소바가 그렇다. 중화냉면이라 부르기도 하는 중국냉면은 분명 중국집에서 파는 중식이지만, 정작 중국에는 없다. 중식 전문가들도 중국냉면의 기원을 딱 떨어지게 설명 못하지만, “한국 화교들이 여름에 팔려고 만들어낸 것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짜장면이나 짬뽕처럼 한국사람 입맛에 맞춰 토착화한 한국형 중식이라는 것이다.
간장 맛으로 먹는
일본의 여름면,
국물은 마시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쯔유를 면과 함께 들이켜지는 않는다. 메밀국수 끄트머리를 쯔유에 살짝 찍어서 먹는다.
메밀국수를 차가운 쯔유에 말아내는 냉소바 역시 일본 본토에서는 찾기 힘들다. 물론 일본에서는 우리처럼 쯔유를 면과 함께 들이켜지는 않는다. 메밀국수 끄트머리를 쯔유에 살짝 찍어서 먹는다. 메밀 고유의 풍미를 최대한 즐기도록, 쯔유는 살짝 맛만 내는 정도로 자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소바집에서 내는 쯔유는 한국보다 훨씬 진하고 짜다. 국물 좋아하는 한민족 입맛에 맞춰 국내에서 판매되는 소바에 나오는 쯔유는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심심하게 염도를 낮춘다.
일본과 중국의 여름 면 요리는 한국처럼 차갑지 않다. 일본 여름 국수는 시원한 정도다. 일본에서 여름철 가정에서 즐겨 먹는 국수를 꼽으라면 흔히 소면을 말한다. 삶아서 식힌 소면을 얼음이 들어간 달착지근한 간장을 기본으로 한 국물에 찍어 먹는다. 국물에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그릇을 들고 들이켤 정도로 양이 많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다.
히야시추카는 ‘차게 한 중국음식’이라는 뜻이지만, 한국의 중국냉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볼 수 없는 일본에서 개발된 음식이다. 차가운 라멘 면발에 가늘게 채 썬 채소가 올라간다. 깔끔한 간장 맛과 참깨를 넣어 고소한 맛이 대표적이다. 히야시 다누키 우동은 차갑게 식힌 우동 면을 튀김 부스러기, 미역, 채 썬 오이 등 채소와 함께 쯔유의 살짝 찍어 먹는다. 하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냉우동’처럼 차가운 육수에 풍덩 빠져나오진 않는다.
삼복 더위를 이기는 음식,
중국의 여름은 면이다
더운 여름날에도 뜨거운 면을 즐기는 중국인
ⓒ 바이두 이미지 (百度图片)
중국인들은 더위를 이기는 음식으로 국수를 즐긴다. 한여름 면을 즐기는 식습관 때문에 국수 요리에 ‘푸몐(伏面)’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다. 푸(伏)는 초복·중복·말복을 일컽는 ‘삼복(三伏)’의 통칭이고, 몐(面)은 국수(麵)의 간체자다. 중국 여름 면 요리는 덥지 않은 정도로, 삼국 중 가장 덜 차갑다.
량몐(涼面)은 특히 수도 베이징을 대표하는 여름 국수다. 참깨로 만든 소스에 산초유를 살짝 뿌리고 면을 넣은 후 채 썬 오이와 함께 비비면 완성되는 간단한 요리다. 당(唐) 고종의 황후이자 무주(武周)의 여제였던 측천무후가 입궁 전 연인과 뜨거운 국수를 먹다가 혀를 덴 이후로 국수를 차갑게 먹은 데 기원을 두고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재미있지만 믿을 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자장몐(炸醬面)은 베이징에서 먹기 시작해 지금은 톈진(天津),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랴오닝(遼寧) 등 중국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모든 중국인에게 사랑 받는 국수다. 여름에 주로 먹는다. 기름에 볶은 된장을 각종 채소 고명과 함께 비벼 먹는다. 여름에는 채 썬 오이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단맛이 거의 없고 매우 짜서 한국의 짜장면과 비슷할 거라 지레짐작해 주문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셴탕얼몐(鹹湯兒面)은 특히 여름에 별미인 볶음면이다. 채소를 소금에 절인 짠지 국물에 면과 파, 생강, 두부를 함께 볶는다. 볜더우먼몐(扁豆燜面)은 기름에 볶은 고기와 제비콩(扁豆)에 물을 넣고 자작해질 때까지 끓인 뒤 면과 다시 볶는다. 산허유반몐(三合油拌面)은 화자오(花椒) 를 기름에 볶다가 간장, 참기름, 식초를 넣고 볶아 만드는 소스를 삶아둔 면과 비벼 먹는다. 기호에 따라 실파, 마늘, 땅콩, 참깨를 함께 넣고 비비기도 한다. 화자오는 얼얼하게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로, 마라탕 양념의 주 재료다.
글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 기자
2000년 조선일보 입사 후, 기자 경력 대부분에 음식 분야를 취재해왔다. 세계슬로푸드협회가 설립한 이탈리아 미식학대학(UNISG)에서 ‘이탈리아 지역별 파스타 비교 분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커피 이야기’, ‘식도락계 슈퍼스타 32’, ‘세계인의 밥’, ‘이탈리아 여행 스크랩북’, ‘음식의 가치’(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