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의 짬뽕

뜨거운 김을 뿜으며 짬뽕이 등장했다. 그릇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부터 맡았다. 조심스레 국물 한 숟가락을 떠 맛을 봤다. 얼큰한 매운맛이 먼저 혀를 자극하더니, 묵직한 감칠맛이 입안을 어루만졌다. 바다와 갯벌, 흙과 농부의 땀이 입안으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이 모든 맛을 중국식 프라이팬 웍(wok)의 무쇠가 그을려 낸 불맛이 감싸고 있었다.
짬뽕은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면 요리로 꼽힌다. 오래 고국을 떠난 이민자는 물론이고 잠시 외국에 나간 여행객도 얼큰하고 시원한 짬뽕 국물을 떠올리며 군침을 삼킨다. 그 맛을 노래로 추앙하는 음악 밴드가 있을 정도다. 황신혜밴드는 히트곡 ‘짬뽕’에서 “바람 불어 외로운 날 우리 함께 짬뽕을 먹자”고 노래했다.
‘웃기는 짬뽕’ 같은 아이러니는 이토록 한국에서 대표적 중식 메뉴로 사랑받는 짬뽕이 정작 중국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짬뽕은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한국에서 이토록 사랑받게 됐을까.
짬뽕의 고향은 일본 나가사키
짬뽕은 중국인에 의해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 귀화한 면 요리로 정의할 수 있을 듯하다. 짬뽕의 탄생지는 일본 규슈 항구 도시 나가사키가 확실한 듯하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는 “1905년 나가사키 지역 신문에 짬뽕이 처음 등장하며 이때부터 나가사키 중국집들에 짬뽕이 등장한다”고 했다. 나가사키에는 현재 1100여 식당에서 짬뽕을 팔고 있다. 19세기 말 나가사키에는 화교가 많이 살았다. 무역상 뿐 아니라 유학생도 많았다. 청일전쟁 패배와 무술변법이 실패하자, 많은 중국인이 서양 문물을 성공적으로 수용해 부국강병의 길을 걷던 일본을 배우겠다며 바다를 건너왔다.
복건성 출신 화교로 나가사키에서 중식당 ‘시카이로(四海樓)’를 운영하던 천펑쉰(陣平順)은 배 곯는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들이 안타까웠다. 유학생들이 돈 걱정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값싸고 푸짐한 음식을 고민하던 천펑쉰은 다른 요리를 만들고 남은 해물·채소 따위 채소를 국물과 함께 웍에 쓸어 넣고 볶았다. 여기에 닭·돼지 잡뼈를 우린 육수를 더하고 국수를 말았다. 1899년이었다.

일본 나가사키의 시카이로 전경

일본 나가사키의 시카이로 2층 짬뽕박물관
천펑쉰이 만드는 면 요리는 가난한 유학생 뿐 아니라 비싼 요리를 먹는 손님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그리하여 ‘찬폰(ちちちちち)’이란 이름을 얻으며 정식 요리로 발전한다. 천펑쉰의 증손자가 운영하는 시카이로는 지금도 나가사키에서 성업 중이다. 건물 전체가 식당인 5층 빌딩으로 2층에 ‘짬뽕박물관’도 있다.
‘찬폰’이란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밥 먹었느냐”는 중국어 ‘츠판(吃飯)’이 일본에서 찬폰으로 변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츠판’은 푸젠(福建) 지역 방언으로 ‘샤뽕(吃飯)’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천펑쉰이 복건 출신이고, 나가사키에서 노역하던 중국인 다수가 이 지역 출신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럴 법한 주장이다.
온갖 재료를 뒤섞어 조리한다는 의미가 있는 중국말 ‘찬펑’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일본 전통 무대극 가부키, 노가쿠, 제례의식 등에 반주 되는 음악인 하야시의 한 형식으로 ‘에도바야시’가 있다. 이 에도바야시에 쓰는 징과 북소리인 ‘참’과 ‘퐁’을 합친 이름이란 주장도 있다. 여러 다양한 소리를 섞듯, 다양한 재료가 한데 섞인 음식이라는 점에서 나름 근거가 있다. 어쨌거나 찬폰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한국인이 발음하기 편한 짬뽕으로 굳었다. 짬뽕을 비속어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엄연한 표준어다. ‘뒤섞는다’는 뜻의 명사다.
빨갛고 맵게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다
일본 짬뽕은 뽀얗고 하얗다. 후끈한 후추 맛이 살짝 느껴질 뿐, 그리 맵지 않고 시원하다. 반면 한국의 짬뽕은 새빨갛고 맵다.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을 듬뿍 넣는다. 짬뽕이 한국으로 건너온 건 늦어도 1960년대 이전, 빨갛고 맵게 변신하며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한 건 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서울 대학로 ‘중식당’ 오너셰프이자 손꼽히는 중식 전문가인 신계숙 배화여대 조리학과 교수는 “각국 화교들이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짬뽕이 한국에 전해졌다”며 “1980년대까지 국내에도 흰 짬뽕과 붉은 짬뽕이 섞여 있었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중식 요리사 중 한 명인 후덕죽 ‘호빈’ 오너셰프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맵게 먹기 시작한 것이 일반 짬뽕 메뉴로 정착했다”며 “매운 짬뽕은 한국이 원조”라고 설명했다.
원로급 중식 요리사로 꼽히는 왕육성 ‘진진’ 오너셰프는 “나가사키에서 갓 넘어온 짬뽕은 돼지뼈 육수가 한국인 입맛에 덜 맞았기 때문에 큰 인기는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짬뽕에 가느다란 실고추를 고명으로 얹어 냈죠.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한 중식당 요리사가 매운맛을 내려고 고추를 국물에 넣은 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매워진 거죠. 1970년대에 처음 빨간 짬뽕을 접하고 ‘매운탕면’이라고 불렀어요.”

오늘날 짬뽕의 초창기 버전은 ‘고추짬뽕’이다. 화교 3세대로 인천화교협회 부회장과 인천화교학교 부이사장인 주희풍씨는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이데아)에서 “고추짬뽕이 탄생한 시기를 화교들은 1968년 즈음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주씨는 짬뽕이 얼큰해진 배경으로 육개장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과 손님들이 우동과 짜장면 등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 손님들이 고춧가루를 넣어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는 설을 소개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는 떡볶이도 마찬가지로 빨갛게 됐다”며 “고춧가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린다”고 했다.
짬뽕을 조리법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고춧가루를 기름에 볶다가 고기·해물·채소를 더하는 방식으로, 고춧가루 찌꺼기가 나와 깔끔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한 게 두 번째인 고추기름을 사용해 고기·해물·채소를 볶은 방식이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워야 하는 호텔 등 고급 요리점에서 고안해낸 방식이다. 세 번째는 고기·해물·채소를 기름에 볶다가 고춧가루를 더해 볶는 방식이다. 주씨는 “첫 번째 조리 방식을 개선한 것으로, 고춧가루가 기름에 타는 것을 방지하는 조리 방식”이라며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글 김성윤 작가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2000년 입사해 기자 경력 대부분 음식 분야를 취재해왔다.
세계슬로푸드협회가 설립한 이탈리아 미식학대학(UNISG)에서 ‘이탈리아 지역별 파스타 비교 분석’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커피 이야기’ ‘식도락계 슈퍼스타 32’ ‘세계인의 밥’ ‘이탈리아 여행 스크랩북’ ‘음식의 가치’(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