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등치기 국수’라는 게 있다. 강원도 정선이 내놓는 대표 음식이다. 손으로 밀어서 만든 100% 메밀 칼국수를 ‘훅’ 하고 빨아당기면 뻣뻣한 국수가락이 콧등을 한 번 툭 치고 입으로 쏙 빨려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콧등 한번 때리고 후루룩 넘어가던 그 슬픈 면발
누가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아우라지역 앞 ‘청원식당’ 방순옥(70) 할머니는 현재 정선아리랑 연구소장을 하는 진용선(46)씨가 붙였다고 했다. 방 할머니는 1988년 콧등치기 국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처음 국숫집을 낸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진씨는 손사래를 친다. “할머니 기억이 틀렸어요. 20년 전쯤 청원식당에서 처음으로 콧등치기 국수를 먹었을 때도 그렇게 불렀어요. 나는 단지 재밌는 이름이기에 시로 쓰고, ‘월간 태백’ 등 잡지와 텔레비전에 소개해 알린 것뿐이죠.”
당시 진 소장을 식당으로 데리고 간 정선아리랑 기능 보유자 김남기(73)옹도 “우리 아버지 세대들도 콧등치기 국수라고 불렀어. 오래전부터 정선 사람들은 그렇게들 알고 있었지”라고 한다.
원래 이 국수는 ‘느름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메밀로 빚은 반죽을 칼국수처럼 눌러서 늘여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꼴뚜국수’ ‘깔뚝국시’라고도 했고, 메밀로 만들어서 그냥 메밀국수라고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이름도 많은 콧등치기 국수는 알고 보면 ‘슬픈 음식’이다. 정선은 오지다. ‘무릇 나흘 동안 길을 걸었는데도 하늘과 해를 볼 수 없는 지역’(『택리지』)이고 ‘해 뜨자 해 넘어가는 두메산골’이다.
70년대 이전까지 정선 사람들은 배고픔을 숙명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산비탈에 심은 감자와 옥수수·메밀로 만든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쌀밥’은 기억 속에서 지워진 단어였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사치였을 정도였다. 김남기옹은 “차례상에도 쌀밥을 못 올리는 집이 대부분이었어. 보리나 옥수수로 지은 밥에 겉에만 쌀밥을 입혀 올려 놓았지”라고 했다.
쌀밥은 남자들도 좀처럼 먹지 못했던 음식이었고, 여자들에게는 그저 ‘눈으로만 먹어야 했던’ 음식이다. 방순옥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정선 처녀들은 시집갈 때까지 쌀밥 3그릇을 못 먹었어. 옥수수밥이나 산나물 죽만 먹었어. 조금 형편이 나은 집이 그나마 메밀로 음식을 해먹었지”라고 한다. 오죽했으면 정선 사람들이 ‘딸 낳거든 평창에 시집 보내 이밥(쌀밥) 실컷 먹이라’고 했을까. 쌀밥을 구경하기 힘든 시절, 메밀로 만든 콧등치기 국수는 허기를 ‘속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된장국에 푼 콧등치기 국수 한 그릇이면 금방 배가 불렀다. ‘꼬르륵’ 소리는 간 데 없고 포만감에 배를 두드렸다.
그러나 쉬 배부르면 쉬 꺼지는 법. 김내식 시인은 이런 콧등치기 국수의 특징을 시로 표현했다. ‘정신없이 먹다보면/ 뱃가죽이 벌떡 솟아/ 올챙이 배가 되나/ 참으라던 오줌을 누고 나니/ 도로 푹 꺼지더라.’(『콧등치기 국수』·2008년)
국수 국물이 된장인 것도 가난 때문이다. “지금은 멸치가 흔하지만 어릴 때 멸치가 어딨었어. 구하기 쉬운 것이 된장이어서 그냥 된장을 물에 풀어서 말아 먹었지.” 방순옥 할머니의 기억이다. 모두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정선 여자들에게는 더 가혹하게 다가왔고 ‘한’이 됐음을 물론이다
그런데 요즘은 다이어트를 한다며 일부러 찾아오는 여자 손님들이 부쩍 늘었단다. 또 메밀이 웰빙 식품이라며 건강을 위해 일부러 찾는다는 것이다.
방순옥 할머니는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었는데 살 빼겠다고 먹겠다고 찾아오니 말이야. 참 재미있는 세상이 됐지”라며 웃었다.
글 이석희 기자
사진 조용철 기자
(사진설명 :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역 앞에서 청원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방순옥 할머니가 콧등치기 국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조용철 기자] )
출처 : 중앙일보, 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⑦ 콧등치기국수
링크 : http://news.joins.com/article/3679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