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도 자장면이 있는 걸까? 있다면 한국 자장면과 맛이 같을까?’ ‘면발이 굵은 일본 우동을 어떻게 겉을 퍼뜨리지 않고 속까지 쫀득하게 삶아낼 수 있을까?’ ‘태국 사람들은 왜 쌀국수를 만들어 먹을까?’ ‘이탈리아 스파게티와 우리나라 칼국수는 뭐가 다를까?’ 면(麵)이 궁금하다.
거리마다 이탈리아 스파게티집.베트남 쌀국수집.일본식 우동전문점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1백년 넘은 철가방 속의 자장면도 신선한 해산물이 올라간 고급 스타일로 탈바꿈 중이다. 백화점 식품 코너엔 세계의 온갖 면이 상품화돼 장바구니를 유혹한다. 일반인들도 면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week&’이 면 탐험에 나섰다. 면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을 필두로 지구촌 곳곳을 찾아 궁금증을 풀어간다. 중국 다음은 라면과 우동의 나라 일본, 밥보다 쌀국수를 즐겨먹는 베트남과 태국, 파스타를 즐기는 이탈리아의 순. 뒤이어 칼국수와 냉면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국수의 뿌리를 추적한다. 5회에 걸쳐 연재되는 심층 취재는 면과 면소스 제조업체 ‘면사랑(www.noodlelovers.com)’과 아시아나항공의 협찬으로 진행된다.
면의 고향에서 맛본 우육면
지난 20일 중국 란저우(蘭州) 시내에 있는 ‘홍빈루(鴻賓樓)’의 주방. 흰 납작모자를 쓴 조리사의 손에 밀가루 반죽이 쥐어졌다. 적당히 물을 먹어 윤기가 반질반질한 덩어리다. 크기는 홍두깨 절반 만하다. 스테인리스 작업판에 올려 놓고 밀가루를 뿌린다. 이어 양 손을 벌려가며 손바닥으로 두어번 밀었더니 반죽이 팔길이만큼 길어졌다. 양쪽 끝을 잡고 부드럽게 팔을 벌린다. 반죽이 쭉 늘어나 양팔 길이만해졌다. ‘휘릭’ 이번엔 공기를 가르며 반을 접는다. 양손으로 다시 잡고 가볍게 당긴다. 이번에도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늘어난다.
‘휘릭 쭈욱, 휘릭 쭈욱’ 몇차례 더하고 나니 볼펜심만한 면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중국집 수타면을 뽑는 모습과 흡사한데, 국수 가닥을 작업판에 때리지 않고 쉽게 면을 뽑았다. 1인분을 뽑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중국 서북부 지역이 면의 본고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면을 뽑는 법, 조리하는 법, 먹는 방법도 무척 다양하지요. 쌀이 많이 나는 남쪽 지역과 달리 기온이 낮고 건조해 밀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면식(麵食)문화가 발달할 수밖에요.” 이 음식점 부사장 멍수칭의 설명이다.
잠시 뒤에 깍뚜기처럼 썬 쇠고기 덩어리를 얹은 국수 한그릇이 식탁에 올라왔다. 방금 전에 뽑은 면을 삶아 쇠고기 탕국에 말아서 낸 것으로, 란저우의 대표 국수인 우육면(牛肉麵.사진)이다.
육수는 검은 소인 야크 품종으로 맑은 국물을 낸다. 여기에 하얗게 삶은 무, 빨간색 고추기름, 녹색의 샹차이, 쇠고기 덩어리를 고명으로 얹었다. 샹차이 향이 심했지만 고춧가루를 푼 우리나라 쇠고기 무국에 국수를 만 것 같은 맛이다.
“면발의 굵기는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혁대처럼 넓적한 면도 뽑을 수 있고, 면의 단면을 삼각형 모양으로 가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실처럼 가는 면도 가능하지요.” 시범을 보인 조리사 장츠장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즉석에서 그 면들을 만들어 보였다.
면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가 란저우의 우육면이나 한국의 수타 자장면처럼 반죽을 잡아당겨 만드는 방법. 둘째는 밀대로 넓게 펴 칼로 자르는, 우리나라 칼국수와 같은 방법이다. 마지막은 구멍이 난 실린더에 반죽을 넣어 피스톤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중국의 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냉면이나 이탈리아 파스타 중 일부가 구멍으로 밀어내 국수가락을 뽑는다.
중국의 면은 밀가루 이외에 귀리.옥수수.조 등을 갈아서 만들기도 한다. 손바닥으로 비벼 올챙이.고양이 귀 등의 모양을 만들어, 삶지 않고 찜통에 쪄서 탕소스에 찍어 먹는 요우면(모양국수)이 대표적이다. ‘면사랑’의 정세장 사장은 “중국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지역별로 특이한 면 요리가 많다”고 설명했다.
산시성의 도삭면과 일근면
베이징(北京)시내엔 면 요리 전문점이 드물다. 북서부 지방과 달리 쌀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이다. 천안문광장에서 차로 20여분 달려 도착한 진상대원(晉商大院)은 산시(山西)성 요리점. 그나마 북서 지방을 표방한 음식점이라 산시의 면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산시성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면을 만드는 도삭면(刀削麵)이 인기란다.
왼손에 반죽을 들고, 오른손엔 칼을 쥐고, 왼손 반죽을 외곽부터 버들잎처럼 싹싹 깎아낸다. 한올 한올 바로 바로 끓는 물에 쏙쏙 빠진다. 손놀림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다. 알맞게 익으면 뜰채로 건져낸다.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아 밀 자체의 맛이 풍부하다. 원하는 소스를 주문하면 탕면으로 만들어준다.
베이징 시내에 있는 서북면촌(西北麵村)이란 서북 지방의 면 요리 전문점에선 일근면(一根麵.사진)이란 국수를 만들어낸다. 식탁에서 조리해 먹는 우리나라 돌솥 샤브샤브 스타일이다. 돌솥의 육수가 끓으면 손가락 굵기의 면가닥을 조리사가 쭉쭉 당겨 돌솥에 밀어넣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는다. 이 식당의 치리창 지배인은 “일근면은 1천5백여년 전에 펴낸 ‘제민요술(劑民要術)’이라는 농사.요리책에 등장하는 제면법”이라고 말했다.
본토 자장면을 맛보다
중국의 자장면은 여러가지 고명과 볶은 장을 국수에 얹어 먹는데, 베이징과 톈진(天津)에서 주로 즐기던 음식이다. ‘원조 베이징자장면(老北京炸醬麵)’이라고 써놓은 베이징의 한 자장면집을 찾았다. 자장면만 주문하자 종업원이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동행한 한국수출보험공사 베이징대표부 임영호(林英虎)소장은 “중국의 자장면은 우리나라처럼 한끼 식사로 먹는 메뉴가 아니다”고 말하고 몇가지 요리를 추가 주문했다.
중국의 자장면은 주요리를 먹고 난 뒤에 먹는 음식인데 디저트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단지 작은 그릇에 면.자장소스.야채가 따로 따로 나온다. 면의 굵기와 색깔이 우리나라 칼국수와 흡사하다. 소스는 고기가 들어간 것과 안 들어간 것, 그리고 고소한 땅콩으로 만든 것 등 세가지. 그 중에 서 원하는 것을 주문해야 한다. 야채는 오이.배추.빨간무의 생채와 숙주나물.메주콩.완두콩을 데친 것이 한접시에 담겨 나온다.
임소장은 “무턱대고 소스를 면에 부으면 먹기 어려울 정도로 짜니 야채와 면의 양에 맞춰 조금씩 넣어 비비는 게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야채가 상큼하게 씹히는 맛은 특이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먹는 춘장의 간이 적당히 밴 자장면만은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글 유지상 (前 중앙일보 음식전문 기자)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