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와 식초를 넣으면 평양식이 아니다?
북한에 가서 풍물과 관광지를 취재해 유튜브에 올리는 서양인들이 있다. 그 비디오를 보면 평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채로운 외식거리가 있다. 햄버거는 물론이고 피자도 있다. 피자가게의 직원을 인터뷰한 영상은 흥미롭다. 본토의 맛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유학가서 배웠다고 자랑한다. 화면에서 보이는 실력은 그다지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식은 맞아 보인다. 냉면에 대해 취재하는 서양인에게 설명하는 관광안내원도 있다. 물론 유창한 영어를 쓴다. 그 장면이 아주 특이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양냉면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개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내원은 육수에 겨자와 식초, 매운 양념을 마구 친다. 그래야 진한 맛이 난다고 직접 먹어본 남한사람의 증언과 일치한다. 북한의 냉면집은 전세계에 있다. 특히 중국에 많다. 그 식당에서 냉면을 맛본 남한 관광객의 증언과도 역시 일치한다. 생각보다 면이 질기고 메밀 함량이 낮아보였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에서 평양냉면을 상징하는 이미지와 동떨어져 있다.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가르치려 드는 행위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평양냉면은 맑고 슴슴한 육수의 맛을 가져야 한다. 면은 쫄깃하지 않고 메밀함량이 높아서 툭툭 끊기는 게 정상이다.
북한의 냉면이 원래 어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남북이 각기 정권을 세운 1940년대 이후로 왕래가 적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냉면이 역사적으로 오래된 레시피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북한은 인민의 음식까지도 국가적으로 통제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여러 요리책을 보면 냉면 레시피가 많은데, 다 다르다. 동치미를 넣는 레시피는 드물다. 평양냉면의 고정된 이미지, 즉 동치미와 고기 육수의 배합이라는 관념과 다르다. 여러 역사적인 문헌(신문기사와 잡지)를 보면, 이미 평양의 냉면은 1930년대 이후 크게 성공하면서 동치미의 배합을 지양한 것 같다. 평양냉면은 원래 겨울음식이었는데(요즘 날씨를 생각해보시라), 시원한 면이 있으면 너도나도 먹지 않겠는가. 그래서 본디 겨울에 먹던 음식인 냉면이 여름으로 이동해버린 것이다. 이때 제빙산업이 활발해진 것도 중요했다. 전기나 암모니아 등으로 얼음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냉면은 여름음식으로 굳어져 갔다. 자, 이렇게 동치미에 만 메밀면을 설설 끊는 아랫목에 앉아 이빨 시리게 먹었다는 겨울 냉면의 전설은 희미해져 갔을 것이다.
MSG와 고기가 만든 새로운 냉면의 세계
자, 문제는 여름에 얼음을 구할 수 있었는데 동치미는 없었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저장시설이 좋거나, 품종개량과 재배기술의 발달로 사철 배추와 무를 공급할 수 없던 시절이다. 시원한 김칫국물, 동치미가 없으니 어쩐다? 이때 해결책이 나왔다. 고기로 만 육수를 내서 감칠맛을 뽑고, 그 부족한 맛을 MSG로 보강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아지노모토’라는 브랜드의 상품이 당시 식민지이던 조선 땅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엄청난 마케팅으로 우리 음식시장을 공략했다. 아지노모토 한 숟갈이면 모든 요리를 맛있게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냉면도 그 혜택(?)을 봤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이든 남한이든 냉면가게에서는 대개 이 물질을 넣는다.
앞서 면스플레인을 말했는데, 평양냉면 중독자(?)를 평뽕이라고 부른다. 마약에 비견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절대 육수에 겨자와 식초, 다대기라고 부르는 매운 양념을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양냉면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한다. 자, 그럼 앞서 밝혔듯이 현재 평양의 냉면은 다 엉터리란 말인가. 그들은 서양인 취재진에게 친절하게 겨자와 식초, 양념을 넣어 먹으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에서 현재 가장 오래된 냉면집인 우래옥(1946)의 산 증인인 김지억 전무는 내게 이렇게 권했다. “냉면은 게자(겨자)와 식초를 쳐서 먹어야디 딘짠디.”
그는 직접 시연도 보여주었다. 겨자와 식초(매운 양념은 넣지 않음)를 넉넉히 쳤다. 평양에 있을 때 그렇게 드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차가운 냉면의 성격을 누그러뜨려 탈이 안 난다고도 했다.
모리오카, 일복 벽지의 특별한 우리식 냉면
일본 동북지방은 몇 년 전 크게 쓰나미가 몰려와서 난리가 났던 지방이다. 일본 열도에서 북동쪽에 위치한다. 그 곳에 모리오카라는 인구 10만이 겨우 넘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이 도시에 자그마치 20여 개가 넘는 한국계(조선계) 냉면집이 있다. 조선계라는 것은 북한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명칭이다. 해방 이후 일본과 미국의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일본에 살던 조선사람들은 국적이 없어져 버렸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과 수교 전이라 한국 국적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굳어진 국적이 실체가 없는 조선이라는 국적이다. 1965년 한일수교가 이루어지고 한국국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한국도 북한도 국적을 받지 않고 여전히 조선국적을 고수하고 있다. 어쨌든 이 작은 도시에 우리 냉면집이 아주 많고, 우리 냉면을 파는 가게는 450여 곳이나 된다. 심지어 카페에서도 파는 집이 있다. 모리오카의 인기 전통음식인 것이다. 이 도시 바깥에는 거의 먹는 이가 없다. 그래서 모리오카를 오사카와 함께 한국 냉면의 성지라고 한다.
이 곳을 취재했는데, 상당히 특이한 냉면을 냈다. 국물은 소뼈를 써서 무겁고 달고 진했다. 일본이의 취향과 이 냉면이 생기던 1950, 60년대 당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소뼈를 넣은 까닭이다. 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아주 다르다. 쫄면에 가깝다. 메밀은 넣지 않는다. 원래는 메밀로 만들었는데, 메밀 넣은 소바를 즐겨먹는 일본인에게는 이상한 음식으로 비친 것이다. 그래서 밀가루와 전분으로 만들자 좋아하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우리식 냉면 중에서 가장 독특한 냉면이 만들어진 사연이다.
이들도 면에 겨자와 식초를 쳐서 먹으라고 권한다. 그러고보니, 겨자 식초를 넣으면 평양냉면이 아니라는 ‘면스플레인’은 오직 남한에만 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냉면의 세계다.
글 박찬일 셰프
1965년 서울 출생.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아 요리를 만들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서울 서교동의 ‘로칸다 몽로’와 종로의 ‘광화문 몽로’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광화문국밥’에서 국밥과 냉면을 팔고 있다.
<한겨레 신문>, <경향신문> 등에 음식 칼럼을 연재 중이며 <스님, 절밥은 왜 그리 맛이 좋습니까>, <미식가의 허기>, <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등 다수의 책을 출판하였다.
글 박찬일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