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제 2회 테마 겨울면

칼국수와 함께한 영혼의 단짝 (최옥숙)

By |2025-12-1|Categories: Noodle Lovers, 에세이 제 2회 테마 겨울면|Tags: , , , , |

“고소한 닭육수랑 쫄깃한 칼국수 면은 함께 있을 때 더 돋보이는 영혼의 단짝이야. 꼭 너랑 나처럼 말이지.” 우리의 오랜 단골 칼국수 집에 올 때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친구의 얼굴엔 소녀 같은 풋풋한 미소가 걸린다.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목소리도 한껏 달뜬다. 친구는 김이 폴폴 올라오는 칼국수를 김치에 싸 먹기도 하고, 입안에 한껏 면발을 우겨넣고 국물을 마시기도 한다. 쫄깃한 면발은 고소한 닭육수와 만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어 결국 먹는 이의 마음까지 들썩이게 한다. 친구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만났다. 동갑에 사는 동네도 같았던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어느새 퇴근 후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신입 직장인이 경력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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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뜨거운 우동 한 그릇 (채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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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우동집이 있다. 1986년에 문을 연 작은 우동집. 낡은 간판 위에는 ‘동경우동’이라는 글자가 아직 선명하다. 2호선을 타고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옆에 보이는 그곳은 어릴 적 내게 처음으로 겨울의 맛을 알려준 곳이다. 처음 아빠 손을 잡고 그 가게를 찾았을 때, 아마도 우동이 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40년 세월이 흘러 5,000원이 되었지만, 이제는 이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도 흔치 않아여전한 가성비 식당이다. 좁지만 아늑한 테이블에 앉아 오뎅우동을 주문하자 주인아주머니는 깍두기와 피클, 단무지를 내어주셨다. 그리고 곧 주문한 우동이 나왔다. 아주 뜨겁고 진한, 각종 비법 재료가 들어간, 아마도 생선과 가쓰오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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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오렌지, 겨울 (조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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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K의 황당한 표정. 그걸 여름에요? 그럼요, 당연히 여름이죠. 내 말을 들은 K의 입꼬리가 비실비실 올라간다. 그 사이로 킥, 하고 새어 나오는 짧은 웃음소리. 담장 무너지듯 웃음이 터진다. 당황한 그녀, 애써 얼굴을 가리지만 역부족이다. 그나저나 정말 찡긋, 하고 웃는구나. 웃을 때의 찡긋, 과 보조개가 섞여서, 겨울이지만 어디에선가 여름의 오렌지 향이 나는 것 같았어.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웃지. 내가 딱히 무례라고 할 만한 것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단지 신기하네요, 잔치국수는 여름 음식인데, 라고 말했을 뿐. 그럼 직전의 대화 맥락이 뭐였더라. 아마, 추워서 잔치국수요, 라는 K의 대답이었고, 그럼 그 전에는? 식사로 뭘 드셨나요, 라고 내가 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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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칼국수 (정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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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오래된 단골 칼국수집이 하나 있다. 4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칼국수 한 가지만을 팔아온 노포(老鋪)로, 칼국수를 한 그릇 달게 먹고 나면 한동안 용기를 내어 열심히 살아볼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곳이다. 그 흔한 TV에도 한번 소개된 적 없고, 구석진 골목길 맨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항상 오랜 단골들만 찾는 조용한 가게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을 따라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때면 늘 이 가게에 들러서 칼국수를 먹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입장에선 온 가족이 따뜻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에 칼국수보다 더 좋은 메뉴는 없었던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이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 때면 “먹을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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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칼국수가 있어 행복했던 그 시절 (정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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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칼국수. 잔칫상에 오르지도 않고, 고급 식당에서 다루는 음식도 아니다. 혀를 사로잡는 기교도 없이 그저 투박하고 평범한 음식일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손칼국수는 참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다. 과거 아내가 즐겨 해주던 음식이 손칼국수였기 때문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지금, 손칼국수와 마주할 때면 나는 시시때때로 추억 속에 빠져들곤 한다. 아내는 어린 나이에 내게 시집와 무던히도 고생을 했다. 일 때문에 한 달 중 절반 이상 집을 비웠던 나를 대신해 시부모와 시동생을 보살피며 자식들까지 묵묵히 키워냈다. 대가족을 이끌면서 눈물 한번 토해내고 싶은 날이 왜 없었을까. 주름살이 깊어지고 한숨이 밀려와도 아내는 불평 한 번,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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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의 눈, 그리고 차우멘 한 접시 (장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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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일, 보스턴은 기록적인 폭설에 휩싸여 있었다. 일하는 곳에서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는데, 아들이 갑자기 이가 아프다며 동동거렸다. 이미 눈은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었고, 도시 전체가 숨을 죽인 듯 조용했다. 그러나 아픈 아이를 두고 집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아내도 허둥지둥 준비했고, 우리는 결국 눈보라를 뚫고 다시 시내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차를 몰고 가기엔 위험했다.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히고 트램에 올랐다. 차창은 성에로 뒤덮여 바깥 풍경이 뿌옇게 보였고, 창문마다 김이 서려 희미한 불빛만 새어 나왔다. 눈에 파묻힌 가로등은 빛을 제대로 내지 못했고, 어둑한 건물들이 설원처럼 이어졌다. 승객들은 젖은 외투를 털며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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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불맛이 그리움을 지핀다 (유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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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중국집들이 많다. 불과 1킬로미터 반경 안에 전국 3대 짬뽕으로 불리는 「진흥반점」이 있고, 탕수육으로 이름난 「덕성반점」 그리고 깔끔한 불맛으로 손님을 모으는 「현짬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삼국지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짬뽕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특히 겨울에 먹는 맛은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현짬뽕의 불맛은 거칠지 않다. 맑게 타오르는 불처럼 입안에서는 칼칼함이 감돌지만 속은 편하게 정리된다. 면과 국물이 따로 놀지 않고 감칠맛은 끝까지 따라온다. 겨울의 찬 공기는 그 깊은 불맛의 해상도를 높인다. 춘장에 찍은 양파로 환기를 시키고 다시 국물을 마시면 짧은 휴식이 불맛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겨울에 먹는 짬뽕만큼 맛있는 음식은 아마 바지락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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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칼국수의 온도 (백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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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정법원 건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손에 쥔 판결문은 차가웠다. ‘이혼 인용’. 이 네 글자가 내 지난 몇 년을 정리해버렸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마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발걸음은 저절로 움직였다. 법원 근처 낡은 간판의 칼국수집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붉어진 얼굴을 감쌌다. 들깨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묘하게도 그리워하던 냄새 같았다. 구석 자리에 앉아 들깨칼국수를 주문했다. 주인아주머니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먼저 내밀었다. 물을 마시는 동안 뜨거운 솥에서 들깨물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보글보글.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골프장 캐디로 일하던 그때. 뜨거운 태양 아래서 손님들의 가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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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차린 칼국수 한상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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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우리집엔 눈이 내렸습니다. 창밖의 겨울 왕국이 아닌, 따스함 가득한 거실 한복판에 말입니다. 이십년도 더 지난 기억이지만 뼛 속까지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그 날의 밀가루 눈은 어김없이 제 마음 속에 소복하게 쌓여 내립니다. 성인이 된 두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의 겨울날이었습니다. 연일 이어진 한파에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집안의 공기를 위태롭게 들썩이게 했습니다. ‘무엇을 하며 이 지루한 오후를 보내야할까?’ 고민끝에 제가 꺼내 든 것은 거창한 장난감이 아닌, 주방의 수납장 속에서 꺼낸 뽀얀 밀가루 한 봉지였습니다. 거실에 커다란 비닐을 깔고 밀가루를 쏟아부어 주자, 그 순간 작은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사리 같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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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도 담백한 위로 (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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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며칠 전까지도 청량하게만 느껴졌던 바람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겨울에 부쩍 다가가 볼을 스쳐 가는 바람이 꽤 아리다. 오늘은 뜨끈한 게 좋겠다며 잔치국수를 먹자던 남편의 말에 부랴부랴 멸치 육수를 우려내고 국수를 삶았다. 애호박을 종종 썰어 기름에 볶고, 지단을 붙여 모양을 잡고,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니 나름대로 잔치국수 모양새를 한 면이 먹음직스러웠다. 겉절이를 그릇에 소분한 뒤 서둘러 남편을 불러 식사를 권했다. 하지만 이 양반은 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들어가 버린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국수에서 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허공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정제되지 못한 불만이 한숨과 함께 공기 중으로 흩뿌려졌다. 밥상만 차려놓으면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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