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장인을 찾아서
파올로 데 마리아
기순도, 강순옥. 이들의 공통점은 이름 앞에 ‘장인’이 붙는다는 점이다. 장인은 오랜 시간 한 분야에 천착해 실력을 갈고 닦아 존경 받는 이를 말한다. 기순도 장인은 된장을 중심으로 우리 장 전통을 수 십 년째 이어왔다.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의 소울(영혼)인 고추장 맛을 지켜온 이는 강순옥 장인이다. 이렇듯 한국에는 수많은 먹거리 ‘장인’들이 포진해 있다. 이탈리아 음식의 대명사 파스타도 ‘장인’이란 타이틀을 붙일 이가 많은 음식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말이다. 한국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식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에도 이탈리아 파스타 장인 못지않은 근사한 맛을 내는 셰프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장인’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의구심이 든다. 파스타는 이탈리아인들의 소울 푸드다. 그들의 정서가 깊이 밴 먹거리다. 다행히 국내에 한 사람 있다. 이탈리아인이다. 그를 파스타 장인으로 꼽는 이유는 3가지다. 이탈리아 전통 파스타 맛을 한국에서 고집스럽게 이어 온 점이 첫 번째 까닭이다. 두 번째는 한국에 잘못 알려졌던 파스타 맛을 교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이다. 무릇 ‘장인’이라 하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법이다. 세 번째는 땅의 소중함을 아는 농부의 마음으로 한국 식재료 탐구에도 몰두해 파스타의 한국 정착에 기여한 점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 ‘파올로 데 마리아’를 한국인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이탈리아 셰프 파올로 데 마리아(58)가 그 주인공이다.

이탈리아 셰프 파올로 데 마리아(58)
그의 고향, 피에몬테주 토리노
그는 13살 때부터 파스타 면을 빚었다. 그의 고향은 이탈리아 피에몬테주(州)에 있는 토리노다. 국제 슬로우푸드대회가 열리는 미식 도시다. 피에몬테주 일대는 질 좋은 식재료 산지가 수두룩하다. 3대 진미 중 하나인 트러플(송로버섯)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치는 ‘화이트 트러플’도 이곳이 주 생산지다.
“토리노는 프랑스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 맛 수준이 높죠. 왕도 거주했던 곳이기에 미식이 발달했어요.” 지난달 만난 그가 고향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정말 운이 좋았지요. 기초부터, 요리의 뿌리부터 배웠으니까요. ‘기본’을 배운 게 정말 좋았어요. 피에몬테주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 기본적으로 피에몬테 요리를 먼저 배워요. 그 다음에 전반적인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게 되죠. 그런 점이 좋았어요.” 그가 이어 말했다. “요리는 늘 진화합니다. 제가 요리를 처음 배웠을 당시와 ‘기본’은 같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변화되었지요.” 그는 기초가 단단하다. 그래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요리 철칙은 반드시 지킨다. 그래서, 과감한 시도도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산맥 기슭에 위치한 토리노는 사계절이 습한 온난습윤기후가 특징이다.
프랑스 알프스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다.
그가 한국에 뿌리를 내린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2004년에 한국에 왔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인이 ‘모셔왔다’. 이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가 ‘최애’하는 삶의 소중한 것 중 하나가 한식이다. “전라도 음식에 반했고 사찰 음식의 독특한 관점을 사랑하며 궁중 음식의 섬세하고 우아한 풍미에 감동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국 장터와 맛집을 다녔다. 그곳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창조한 파스타 맛은 이탈리아 디엔에이(DNA)와 한반도 땅의 기운이 섞여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쿠킹클래스에서 이탈리아에서 공수해 온 밀가루 세몰리나로 생면 파스타를 반죽하고 만드는 과정을 직접 교육하고 있는 셰프
Ⓒ 희토리홈
그의 파스타 얘기를 더 해보자. 밀의 한 종류인 듀럼밀을 잘게 쪼갠 세몰리나로 만드는 파스타는 과장하자면 지구의 사람 수만큼 면 종류가 많다. 변주된 면까지 합치면 말이다. 푸실리, 탈리아텔레 등 나선형 톱니바퀴처럼 생긴 면, 길고 납작한 면, 하염없이 길게 늘어지는 면 등 모양도 색도 다양하다. 그저 면을 삶고 소스를 적당히 버무리면 우리네 국수처럼 뚝딱 완성되는 음식으로 아는 이가 많다. 아니다. 본래 단순해 보이는 게 사실 가장 복잡하다.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건 더 어렵다.
변화무쌍한 모양의 면에 소스가 겉돌면 안 된다. 찰떡처럼 붙으려면 셰프의 실력이 중요하다. 그가 만드는 파스타 특징은 면과 소스가 죽마고우처럼 잘 어우러진다. 서로를 이겨 먹으려 하지 않는다. 조화롭다. 심지어 면의 겉에 수더분하게 장착된 소스는 겸손해 보이기까지 한다. 겸허한 삶의 태도가 결국 마음의 평화를 선사하는 세상사와 닮았다. 욕심내면 결국 탈이 나는 이치가 담긴 듯한 맛이다.
그의 레스토랑에선 파스타가 코스의 일부로 구성돼 있다. 프랑스처럼 이탈리아 음식도 코스가 있다. 안티파스토(전채), 프리모 피아토, 세콘도 피아토(고기나 생선), 돌체(디저트) 순이다. 파스타나 리조토가 두 번째 코스에 해당이 된다. 물론 단품 파스타 주문도 가능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은 이탈리아 식재료만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파스타 브랜드 ‘가로팔로’를 쓴다. 가로팔로(Garofalo)는 1789년 생산을 시작한 고급 파스타 브랜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파스타 제조 공장을 운영한다. 심지어 올리브오일도 주요 산지인 스페인산이나 그리스산을 쓰지 않는다. 오직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오일만을 고른다.
한국에 생면을 소개한 최초의 이탈리아인
생면은 매일 직접 빚어 만든다. 지금은 생면 내는 레스토랑이 많지만 20년 전만 해도 흔치 않았다. 한국에 생면을 최초로 소개한 이탈리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수도 직접 우려낸다. “큐브 모양으로 만든 닭 육수 제품과 (이탈리아 음식에 중요한 재료인) 올리브오일 대신 식용유를 쓰더라고요. 그것으로는 제대로 된 파스타 맛이 날 리가 없죠.” 그가 20년 전을 회상했다. 마치 프랑스나 뉴욕에 있는 한식당의 요리사가 된장이나 간장 대신 일본식 미소 된장이나 동남아 피시소스로 비빔밥을 만드는 꼴이다. 이뿐만 아니었다고 그가 말을 이었다.
“파스타를 내놓으면 불평하는 손님이 많았어요. 피클을 달라고 했고요. 이탈리아에서는 피클을 먹지 않아요. 먹어 보지도 않고 소스 양이 적다면서 더 달라는 이도 많았죠.” 흥건한 국물에 파스타 면이 춤추듯 노는 우리네 국수 같은 스파게티가 이탈리아 요리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는 고정관념을 깨려고 했다. “소스를 더 원하시면 드릴 순 있지만, 먼저 ‘그냥 한 번 드셔 보세요’라고 집요하게 권했지요. 이탈리아에선 소스가 파스타 안에 스며드는 것이지 밖으로 흐르진 않거든요.” 그의 인내력이 열매를 맺었다. 손님들의 요구는 점차 사라졌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탈리아 음식의 정통성과 본질을 지키는 레스토랑을 검증하여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라는 인증을 수여하는데 파올로 데 마리아에서도 그 인증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식자재를 이탈리아에서 공수하고, 파스타 면은 물론 살루미, 프로슈토 등 육가공품도 이탈리아 정통 방식으로 셰프가 직접 만든다.
요리사는 자연을 지키는 파수꾼
그는 정통 파스타를 알리기 위해 강연이나 저술 활동도 했다. 자문은 셀 수 없이 많다. 파스타 전문 서적도 출간했다. 아내가 말했다. “국내에서 외국인이 쓴 거의 최초의 요리책일 겁니다. 이탈리아 음식의 시작은 파스타잖아요.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가 됐죠. 서울 특급 호텔 셰프들의 필독서가 된 거로 알아요.”
지금 그는 이탈리아 쿠킹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조리법만 가르치는 데가 아니다. 음식은 그 나라의 정신과 역사, 문화를 담는다. 이탈리아 문화에서 출발한 그의 강의는 인기다. 건축가, 패션디자이너, 요리사 지망생 등 다양한 직업군이 모인다. “그들이 이탈리아 음식 맛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습니다.” 내년엔 수강생들과 이탈리아 시칠리아 미식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수강생들의 요청이 빗발쳐서다. 그는 여전히 바꾸고 싶은 고정관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이탈리아 요리를 ‘엄마가 해주는 집밥’으로 생각해 프랑스 요리처럼 ‘고급’이 없다고 여깁니다. 아닙니다.”
요리사는 자연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건강한 자연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요리사의 식탁은 완성되지 않는다.
파올로 데 마리아는 여전히 그 여정에 있다. 파스타가 자연 생태계의 일부임을 자신의 손끝으로 증명하고 있다.

글 사진 박미향 기자
한겨레신문 음식문화 및 여행 담당 기자
ESC팀장, 문화스포츠부장을 거쳐 현재 매주 맛깔 난 ‘먹고 마시고 흥겹게 노는’ 기사를 쓰고 있다. 2000년 맛 얘기를 처음 쓰면서 음식문화와 인연을 맺었다.
음식 책 출간, TV나 라디오 출연, 강연, 자문위원, 심사위원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해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