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이용하여 산맥 중심으로 그려 본 이탈리아 지형 지도
북쪽으로는 알프스 산맥이 있고 이탈리아 반도를 동 서로 나누는 아펜니노 산맥이 있다
이탈리아가 언제 분단된 적이 있었나? 글의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5세기 이후 롬바르드족, 프랑크왕국, 신성로마제국 등의 통치 하에 있다가 11세기 이후 황제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1,000년 이상 지방 영주가 통치하는 독립적인 도시국가였다. 도시는 각각 하나의 국가로 기능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도시 중심부가 주변 농촌을 지배했다.
이들 도시국가는 중세 이후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의 지배를 받아왔는데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베네치아, 교황령의 로마, 남쪽 나폴리 왕국이 대표적 도시국가였다. 18세기말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이탈리아에서도 외세를 물리치고 자유민주국가를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통일한 것은 샤르데냐 왕국이었다. 1870년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이 여러 도시국가들을 병합하고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외세를 물리쳐 이탈리아 국토를 통일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통일을 이루었지만 병합된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의 저항감이 거셌다. ‘하나의 이탈리아’에 대한 소속감을 줄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지형은 알프스 산맥이 북부 경계를 만들고, 동서를 가르는 아펜니노 산맥이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이탈리아는 통일 후에도 도시 간 왕래가 쉽지 않고, 기후와 환경은 물론 문화, 언어, 생김새까지도 서로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파스타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었다. 빵과 치즈를 먹는 다른 나라와 달리 밀로 만든 국수, 즉 ‘파스타를 먹는 민족’이라는 정서적 유대감이 ‘하나의 이탈리아’를 만들며 진짜 통일을 이루게 된다.
이탈리아를 파스타로 통일한
펠레그리노 아르투시
펠레그리노 아르투시
펠레그리노 저서
음식 문화를 통한 이탈리아의 통일, 그 중심에는 펠레그리노 아르투시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이탈리아 통일 후 20년 지난 1891년에 요리책 <요리의 과학과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자비로 출판한 이 책은 14쇄를 찍으며 이탈리아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당시 아르투시의 책에 따르면 파스타는 지방마다 생김새도 모두 달랐다 한다. 지방마다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따라 소스도 각양 각색에 천차만별이었다.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지방의 카레자 호수
이탈리아는 전체적으로 토지 형세에 굴곡이 심해 풍광과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기후와 풍토가 크게 다른 이탈리아 각지에서 수확하는 해산물과 어패류, 고기와 육류, 채소과 곡물, 치즈, 버섯, 과일 등이 이탈리아의 식탁을 장식한다. 자연 조건과 동시에 외국의 영향 또한 이탈리아 식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남부는 이슬람과 스페인의 영향을 받았고, 북부의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지방은 주로 독일, 오스트리아, 슬라브족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롬바르디아 지방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베네치아 등의 영향이 강했다. 피에몬테 지방의 요리에는 프랑스 요리의 세련미가 있다.
이렇듯 지방 특색이 매우 강한 이탈리아의 요리를 아르투시는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탈리아 각 지방을 다니며 기후와 풍토, 지형, 민속에 대해 접했던 사실에 도움을 받았다. 그는 저서 집필 시에 각 지방의 집을 직접 찾아 다니며 요리법을 들었다. 가정의 요리법을 우편으로 받기도 했다. 요리사와 함께 그 지방 요리를 재현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인들은 베스트셀러였던 그의 저서에서 각 지방의 음식 문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파스타를 발견하게 된다. 지방마다 다양한 파스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를 먹는 민족’이라는 유대감이 생기게 된 것이다.
캄파닐리스모(Campanilismo)의
대표선수 파스타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제노바
바다의 진미, 산의 진미, 들의 진미가 지방마다 다른 이탈리아에는 지역마다 특산 재료를 활용한 독특한 파스타가 존재한다. “캄파닐리스모”는 향토애, 지역 유대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탈리아 문화 정서이다. 그 대표 선수를 파스타라고 할 수 있다. 파스타에는 다양한 모양, 소스, 이름이 있으며 각 지역의 파스타는 지방, 도시, 마을과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특색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파스타의 유파를 가르는 중심은 지방 대도시다. 제노바, 볼로냐, 나폴리, 팔레르모가 옛날부터 파스타 유파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이들 유파의 차이는 밀, 물, 기후로 인해 생겨났다. 그리고 조리 기법, 파스타의 모양, 향신료, 소스, 음식을 차려 내는 법에 까지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지방 중심 도시를 대표해 온 각 지방의 파스타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는 아직도 작은 읍내나 마을마다 파스타의 변주가 아주 풍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색이 강한 이탈리아지만 파스타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은 공통의 유산인 것이다.
이탈리아는 파스타를 먹는 민족을 넘어 파스타를 사랑하고 파스타로 문화.정서를 공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음식문화의 힘은 그 어떤 문화보다 힘이 강하다. 그리고, 민족의 결속력을 단단히 묶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대한민국이 통일이 된다면 우리의 정서적 통일을 이루어 줄 음식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의 면심 麵心을 생각했다. 우리는 면요리를 사랑할 뿐 아니라 차가운 국물에 면을 말아 먹으며 즐기는 전 세계 유일의 민족이니까 말이다.
글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보, 2006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2007~2008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을 거쳐 2011~2013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30여 년간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안정을 위해 헌신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지은 책으로 《한 끼 식사의 행복》이 있으며, <인사이트코리아>에 ‘김석동이 쓰는 한민족 경제 DNA’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