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소한 닭육수랑 쫄깃한 칼국수 면은 함께 있을 때 더 돋보이는 영혼의 단짝이야. 꼭 너랑 나처럼 말이지.”
우리의 오랜 단골 칼국수 집에 올 때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친구의 얼굴엔 소녀 같은 풋풋한 미소가 걸린다.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목소리도 한껏 달뜬다. 친구는 김이 폴폴 올라오는 칼국수를 김치에 싸 먹기도 하고, 입안에 한껏 면발을 우겨넣고 국물을 마시기도 한다. 쫄깃한 면발은 고소한 닭육수와 만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어 결국 먹는 이의 마음까지 들썩이게 한다.
친구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만났다. 동갑에 사는 동네도 같았던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어느새 퇴근 후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니게 되었다.
신입 직장인이 경력직이 되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긴 세월이 흘러 칠십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기까지 우리는 6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왔다. 요즘말로 찐우정을 이어오면서 추억보따리를 차곡차곡 채워왔던 것이다. 새침데기 숙녀였던 나는 친구를 만나면서 일찍 철이 들었고, 그녀의 조언 덕분에 인생의 크고 작은 풍랑들을 무탈하게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단골 칼국수집도 그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 가보게 되었다. 뽀얀 국물 안에 담긴 푸짐한 칼국수 면발, 볶은 양파와 다진 고기, 작은 만두가 한데 어우러진 푸짐한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만족스러움을 선사했다.
맛 또한 어디에서도 접해보기 힘든 독특함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칼국수에는 멸치나 사골 육수를 쓰는데 반해, 이 가게는 닭육수를 쓴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국물을 한 모금을 떠 마시면 깊고 농후한 닭 육수의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지며 속이 뜨끈하게 데워졌다.
우리는 이 칼국수 집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서로의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향했다. 훗날 나는 친구가 소개시켜준 남자와 이 가게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데이트를 했고, 결국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뿐만 아니라,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늘 이 단골 칼국수 집에서 친구를 만나 칼국수를 먹으며 긍정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녀는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던 진한 닭육수 같은 존재였고, 우리의 우정은 닭육수와 면발의 조합만큼이나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나의 소중한 벗을 제 나이인 칠십대가 아닌 이십대 어디쯤으로 데려다 놓았다. 몇 년 전에 받아든 친구의 초기 치매 판정은 나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처음 그녀가 택시에 지갑 놓고 내리거나 은행 ATM기에 돈을 놓고 왔다고 했을 때만해도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건망증이라고 생각해 가볍게 웃어 넘겼다. 그러나 이후로 집을 찾지 못하거나 방금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하는 등 시간의 길을 잃고 기억 속을 헤매는 모습을 보고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의 치매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차츰 가족들의 얼굴과 존재를 잊기 시작했다. 때때로 온순했던 미소를 잃어버린 채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했다.
신기했던 건 그녀가 이따금씩 손자나 남편의 얼굴을 잊는 등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상황 속에서도 내 존재만큼은 결코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와 함께 했던 추억들만큼은 오히려 나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수많은 일들 중에서도 그녀는 유독 단골 칼국수 집에서 함께했던 추억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 기억을 거슬러 이십대 숙녀로 돌아간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꼭 단골 칼국수 집에 가서 칼국수를 먹자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친구가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얼마 전에도 친구와 단골 칼국수 집에서 만났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구수한 닭육수 냄새와 코끝을 톡 쏘는 마늘 김치 냄새가 뒤섞인 익숙한 향이 우리를 감쌌다. 우리의 메뉴는 늘 똑같았다. 칼국수 두 그릇과 만두 한 접시.
오늘도 칼국수 한 그릇을 맛나게 비워낸 친구가 나를 향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친구야, 고마워!”
“뭐가?”
“그냥, 전부 다! 너는 내 영혼의 단짝이야.”
친구의 말에 코끝이 찡해지면서 가슴이 찌르듯이 아팠다. 언젠가는 친구가 나도,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추억들도 모두 잊어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은 나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네가 앞으로 어떻게 변한다고 해도, 설령 나를 못 알아본다고 해도 내가 너를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할게. 네 옆에는 늘 내가 있을 거야.’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친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절대 잊지 않게 해달라고, 단골 칼국수집의 칼국수 맛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글쓴이 : 최옥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