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며칠 전까지도 청량하게만 느껴졌던 바람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겨울에 부쩍 다가가 볼을 스쳐 가는 바람이 꽤 아리다. 오늘은 뜨끈한 게 좋겠다며 잔치국수를 먹자던 남편의 말에 부랴부랴 멸치 육수를 우려내고 국수를 삶았다. 애호박을 종종 썰어 기름에 볶고, 지단을 붙여 모양을 잡고,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니 나름대로 잔치국수 모양새를 한 면이 먹음직스러웠다. 겉절이를 그릇에 소분한 뒤 서둘러 남편을 불러 식사를 권했다. 하지만 이 양반은 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들어가 버린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국수에서 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와 허공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정제되지 못한 불만이 한숨과 함께 공기 중으로 흩뿌려졌다. 밥상만 차려놓으면 항상 다른 일을 하다 음식이 다 식은 다음에야 와서 먹는 모습이 이제는 아예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찌개나 전골이나 볶음 요리면 그럭저럭 이해나 하겠는데 붇기 좋은 잔치국수 앞에서도 저러니 요리하는 사람으로서는 속이 타들어간다.
10 분 정도 지나 비로소 개운하다는 듯한 얼굴로 나와 손을 씻고 식탁에 자리한다. 앞에 놓인 잔치국수는 이미 불을대로 불어 양이 두 배 정도는 늘어난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라도 했다가는 뭐라도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남편의 행동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국수를 한 젓가락 듬뿍 들어 올려 입안으로 우걱우걱 집어넣는다.
“맛있네.”
저 정도로 무난한 성격에 맥이 풀렸다. 앙칼진 마음이 무딘 반응에 풀이 죽어 묵묵히 국수를 한 젓가락 떠 입으로 넣었다. 푹 퍼져버린 국수가 입안에서 물컹 씹혀 입천장에 눅진하게 달라붙었다. 깔끔한 잔치국수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면이 너무 불었잖아. 좀 밥 먹자고 할 때는 바로바로 와서 먹을 수는 없는거야?”
“바로 왔잖아. 나는 먹을만한데?”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랑 더 꼬치꼬치 따지기도 애매해졌다. 예민한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이라 무던한 모습이 듬직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또 말도 못 하게 답답해지기도 한다.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이 없다지만 완벽하게 다른 사람과 맞춰가는 일도 만만치 않게 힘이 들었다. 맞은편에 앉아 다 퍼진 잔치국수 면발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담백하고도 무던하면서 모나지 않은 잔치국수가 어딘가 모르게 지금 이 사람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연애할때 회사 일이 너무 바빠 한 번은 이 사람의 생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선물은 고사하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도 미처 하지 못했었다. 밤늦게 핸드폰 알림이 떠 있는 걸 확인하고 부랴부랴 집 앞까지 찾아갔다. 미안해서 무어라 말도 못 하고 죄인처럼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나의 손을 잡고 이 사람은 조용히 근처 포장마차로 들어가 잔치국수 두 그릇을 주문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수를 후후 불어 한 김 식힌 뒤 내 것과 바꿔 자신은 다시 뜨거운 국수를 식혀가면서 먹는 모습에 눈물샘이 저항 없이 터져버렸다. 자책과 죄책감으로 점철된 마음이 빈궁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어 더 막막했다. 훌쩍이는 모습에 그만 울라며 손에 젓가락을 쥐여주고 휴지로 눈물을 쓱 닦아주는 투박한 손길에 울음은 그만 더 커져 버렸다. 그 모습에 잠깐 당황한 듯 멈칫하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는 정말 괜찮다니까. 어린아이도 아니고 생일 한 번 잊어버린 게 무슨 대수라고. 내가 좋아하는 잔치국수 한 그릇 같이 먹어 주면, 생일 다 쉰 거지. 얼른 먹어, 면 다 붇겠다.”
자신은 분 국수를 아무렇지 않게 먹으면서 나의 국수가 불을까 걱정해 주는 모습에 이 사람이라면 남은 생도 서로 의지하며 무난하게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고보니 남편은 항상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잔치국수라고 답했다. 늘 똑같은 음식이 지겨워 도대체 잔치국수가 뭐길래 이 정도 유난인가며 빈정댔던 적도 있다. 이에 남편은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무난하고 평범하면서 복잡하지 않은 음식이 잔치국수라고 답했다. 어딘가 정겹고 푸근함이 깃든 맛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남편과는 반대로 나는 오히려 잔치국수는 맛이 너무 밍밍해서 별로라고 생각했었는데 결혼생활이 10여 년이 넘어가다 보니 이제는 슬슬 그 맛에 적응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어딘가 모나지 않은 무난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성격이 다소 예민해서 싫어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나에게 남편은 흡사 잔치국수처럼 조용히 모난 곳들을 위로해 주고 보기 좋게 깎아 주는 그런 존재 같다. 가끔은 그 과정이 고통스러워도 나중에 견디고 보면 둥글둥글 순화된 내 모습이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지금처럼 짜증이 은은하게 올라올 때도 종종 있지만 이렇게 무던한 남편의 반응을 보면 또 제풀에 꺾여 모난 돌기들이 얼마 못 가 사라져 버린다.
결혼 8년 차 접어들던 해, 많이 순화된 내 모습에 친구들은 ‘너도 원체 모난 성격은 아닌데 환경이 그렇게 만든 후천적 예민함 이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잘 사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선천적으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으면 이렇게 순화될 리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한참 맴돌았다. 후천적 예민함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왠지 우리 주변에 흔히 얘기하는 ‘예민한’ 사람 중 일부는 이런 후천적 예민함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단한 삶에 이리저리 치여 살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모나고 뾰족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러 더 날을 세워가면서, 자신도 갉아먹고 주변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운이 좋아 남편 같은 무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 두루두루 순화되어 간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손칼국수처럼 번거롭지 않고, 수제비처럼 쫄깃하지도 않고, 들깨국수처럼 맛이 풍성하지 않고, 담백하고도 깔끔한 이 잔치국수의 맛이 아주 가끔은 고단한 심신에 약간의 위로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무난하고도 평범한 맛에 고된 마음을 조금이라도 기댈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나름 살만한 삶이 되지도 않을까 하는 발상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퍼진 잔치국수 면발을 한 가닥 집어 입에 넣으면서 오늘도 한 평 넓어진 마음가짐에 위로받는다.
글쓴이 : 김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