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겨울,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잔치국수의 따스한 온도와 풍경을 추억합니다.
주인공이 잊고 지낸 시간과 감정을 다시 회복해가는 과정, 그리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국수 한 그릇의 깊은 의미를 되새긴 에세이입니다. ”

어떤 기억은 증기처럼 피어오른다. 자영업으로 늦은 밤에야 들어오던 부모님을 대신해, 우리 남매를 키운 것은 할머니의 젖은 손이었다. 그 손에서는 늘 멸치나 밀가루, 혹은 끓어오르는 거품 냄새가 났다. 할머니는 모든 종류의 면을 사랑했다. 특히 겨울이면 투박한 칼국수와 맑은 잔치국수를 자주 상에 올렸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잔치국수였다. 사실 우리 집은 잔치와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의 피로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저녁, 적막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잔치’는 가장 이질적인 단어였다. 잔치란 본디 왁자지껄한 소리, 많은 사람의 발걸음, 풍성한 나눔과 웃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끓여주신 잔치국수는 그 모든 것을 생략한, 단출한 축제였다. 어쩌면 그 단어의 명랑함이 집안의 고요함을 잠시 잊게 해주었기에, 그 이름을 좋아했는지 모른다.
할머니의 잔치국수는 단순했다. 오래 끓여 맑게 우러난 멸치육수에, 달걀 지단과 검은 김 가루, 신김치를 송송 썰어 참기름에 무친 고명이 전부였다. 그것은 화려한 ‘맛’이라기보다, 텅 빈 속을 채우는 온기에 가까운 형태였다. 국수는 할머니 손에서 태어났다가 우리들 입속에서 소멸했다. 할머니는 후루룩, 국수를 먹는 내 등을 말없이 쓸어주었다. 그 따뜻한 국물이 내 몸 중심부를 통과할 때, 비로소 내가 단단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맛의 기억 이전에, 온도의 기억이다. 겨울바람에 실컷 휘둘려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부엌에 들어서면, 할머니는 이미 국수를 삶고 있었다. 뿌연 김이 서린 부엌에서 할머니는 거대한 우주를 관장하는 신처럼 보였다. 끓어 넘치려는 국수 냄비에 찬물 한 컵을 붓는 그 단호한 손짓, 건져낸 면을 차가운 물에 헹궈 탱글탱글한 생명력을 불어넣던 그 손길. 그 모든 과정이 빚어낸 한 그릇의 온기는, 단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세상 모든 냉기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작지만 완벽한 성채였다. 주름진 손으로 그릇을 감싸 쥐고 내 앞에 놓아주던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존재가 되었다.
시간은 단단한 모든 것을 닳게 하고, 맑은 모든 것을 흐리게 한다. 할머니의 시간도 그랬다. 할머니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서울에 터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할머니의 치매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왔다. 할머니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견고한 ‘면의 세계’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국물 간이 어떤 날은 소태처럼 짰고, 어떤 날은 물처럼 싱거웠다. 결국 할머니는 부엌을 떠났고, 더 이상 그곳에선 어떤 잔치도 열리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두었다. 명절이나 연휴가 아니면 고향집에 내려가는 일이 점점 드물어졌다. 할머니의 시간은 과거로 퇴행하며 허물어지고 있었고, 나의 시간은 미래를 향해 질주하느라 할머니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부품으로 살아가던 나는, 할머니의 부서져 가는 시간을 애써 외면했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보지 않는 쪽을 택했다. 고향집에 내려가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해 겨울, 회사 회의실에서 ‘권고사직’이라는, 차갑고 네모반듯한 단어가 적힌 종이를 받았다. 그 종이 한 장에 나의 몇 년이 지워졌다. 네 글자의 낙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도망치듯 내려온 고향집에서 며칠을 그림자처럼 지냈다. 그러던 오후, 멍하니 창밖을 보던 내 등 뒤로 익숙한 온기가 다가왔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그저 가만히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텅 비어 있던 할머니 눈에 아주 잠깐, 맑은 빛이 고였다. 할머니는 나를 어린 시절의 나로 기억해 냈다.
“어여 국수 묵고, 학교 가야제.”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치국수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내온 그릇 속 면은 퉁퉁 불어 있었고, 국물은 턱없이 싱거웠다. 고명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할머니가 기억해 낸 마지막 잔치였다. 울면서 그 국수를 먹었다. 면발이 끊어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는 여윈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학교에 가기 싫어 떼를 쓰던 어린 나를 달래듯이. 그 순간 나는 완벽하게 초등학생 아이였다. 할머니의 묽어진 기억 속에서, 나는 잠시나마 가장 안전했던 시절로 돌아가 위로받았다.
얼마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장례가 끝나고 오랫동안 잔치국수를 먹지 않았다. 그 음식이 환기하는 기억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잔치라는 이름이 주는 들뜸은 이제 나에게 가장 서러운 역설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또 한 번의 겨울이 오고 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애도는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을. 할머니가 끓여주던 잔치국수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지만, 그 온기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이번 겨울에는, 기어이 잔치국수를 먹으려 한다. 혼자서라도 멸치육수를 내고, 색색의 고명을 부쳐 올릴 것이다. 울지 않겠다 다짐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눈물이 흐른다면 슬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살아있는 사랑의 온도이며, 가장 빛나던 잔치의 기록일 테니까. 그 가느다란 온기를, 이제는 내 안에서 길어 올리려 한다.
글쓴이 : 류한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