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
K의 황당한 표정. 그걸 여름에요? 그럼요, 당연히 여름이죠. 내 말을 들은 K의 입꼬리가 비실비실 올라간다. 그 사이로 킥, 하고 새어 나오는 짧은 웃음소리. 담장 무너지듯 웃음이 터진다. 당황한 그녀, 애써 얼굴을 가리지만 역부족이다. 그나저나 정말 찡긋, 하고 웃는구나. 웃을 때의 찡긋, 과 보조개가 섞여서, 겨울이지만 어디에선가 여름의 오렌지 향이 나는 것 같았어.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웃지.
내가 딱히 무례라고 할 만한 것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단지 신기하네요, 잔치국수는 여름 음식인데, 라고 말했을 뿐. 그럼 직전의 대화 맥락이 뭐였더라. 아마, 추워서 잔치국수요, 라는 K의 대답이었고, 그럼 그 전에는? 식사로 뭘 드셨나요, 라고 내가 물었고. 애초에 그런 질문을 왜 했던 거지? 맞아, K는 대학 동기의 고향 후배였고 스물한 살 동갑내기였던 우리는 소개팅을 하고 있었지.
K와 나는 파스타집에 나란히 앉아서, 각자 크림과 토마토소스가 묻은 스파게티 면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어색한 포크질로 돌돌 말았지. 나는 단답으로 끝나지 않을 대화 주제를 초조하게 뒤지다가, 어색한 침묵을 못 이기고 오늘 뭐 드셨어요, 라고 물었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던 거지. 하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야. 네가 웃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그때는, 솔직히 기분이 아주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안 맞구나, 라고 생각해서 애프터도 청하지 않고 쌩하게 나간 것도 사실이지만, K는 나와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다음날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깨우듯 산뜻하게 툭 하고, 내게 ‘같이 잔치국수 먹으러 가요. 저도 그거 좋아해요.’라는 문자를 보냈으니까.
2016년 초겨울, 우리는 잔치국수를 핑계로 국현미를 가고, 안국에서 솥밥을 먹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까지 본 후 추운 거리로 나왔다. 실은 이미 국수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백열등을 나란히 켜놓고 어둡게 북적거리던 종로 삼 가 포장마차 거리에서 국수를 사 먹었다. 엉망이었을 게 뻔했을 국물도 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잔치국수가 김이 날 정도로 뜨거웠다는 것. 겨울 실외 포장마차의 영하에 근접한 쌀쌀함에 힘입어, 기관차처럼 증기를 뿜어 대는 잔치국수를 처음 봤을 때의 생경함이란.
우리는 플라스틱 멜라민 그릇을 놓고 잔치국수를 나란히 먹기 시작했다. 연기 너머 국수를 먹는 네 볼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문득 그게 네 빨간 목도리와 검정 코트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디에선가 또다시 오렌지 향이 나는 것 같았고,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 들었지. 단순히 예쁘다, 좋다, 라는 건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거기에는 마땅한 단어가 없어. 그건….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넌 내 처음이었지.
네 짐을 우리 집으로 옮긴 첫날, 좁아터진 집 여기저기에 놓인 네 짐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나는 우리의 첫 끼니로 고향의 잔치국수를 만들었다. 냉수에 멸치장국을 타서 소면에 붓고, 김가루와 신김치 썬 것을 올리고 참기름을 뿌린 간단한 음식이었어. 이게 우리 고향에서는 잔치국수야, 라고 내가 말했지. 너는 그 음식을 꽤 좋아했다. 겨우내, 나는 네가 웃는 게 좋다는 핑계로, 한편으로는 간편하고 싸니까 종종 잔치국수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해 찬 잔치국수를 많이 먹었다. 그 이후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잔치국수를 만들어 주고는 했지. 서울 토박이인 너는 때로 뜨거운 국수를 만들기도 했어.
그러다 그 맛에 익숙해진 내가 뜨거운 잔치국수를 만들고, 네가 차가운 잔치국수를 만들 때쯤에, 그러니까 서로에게 서로가 충분히 녹아들어 갔을 때쯤에, 우리는 세 번의 겨울을 보내고 스물네 살이 됐다. 그때, 장녀였던 네가 대학도 졸업하기 전 그토록 바라던 직장에 합격한 날, 명륜동 좁은 옥탑방에서 펑펑 울며 내게 안겼던 겨울밤에도 우리는 잔치국수를 먹었지.
그리고 이듬해,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담배를 너무 자주 피워서, 취업에 대한 내 초조함과 불안을 자꾸만 네게 투사해서, 네 직장 상사와 너와의 술자리를 질투해서, 그런 것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그 중 어느 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고, 모두 맞을 수도 있다. 애초에 우리가 그렇게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거나. 그 겨울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하며 미안하다고 울던 네 얼굴만 기억날 뿐.
이 년 후 겨울, 내가 한 신문사의 수습기자로 일할 때, 겨우 일을 끝내고 퇴근할 무렵의 오후 열 시 반에 문자 한 통이 왔다. 부고 문자. 상보. K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 함께 해 주시면…. 그다음 기억은 택시 안. K의 지인들에게 정신없이 돌리던 전화. 이해하지 못해 멍하게 앉아 있던 나.
아, 그날 새벽, 용인시에 있는 작은 장례식장, 나는 거기 있었네. 해야 할 말, 하고 싶었던 말, 나중으로 미뤄둔 말들 다 놓쳐 버리고, 오직 울음만 놓아주지 못한 채, 거기에 있었네. 상주가, 딸을 잃은 내 아버지뻘의 상주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어깨를 감쌌다. 그는 목 놓아 울지 않았지만 어깨가 떨렸고 배어 나오는 그의 눈물이 내 싸구려 양복에 스며들어서 축축했다.
멍하게 앉은 내 앞에 육개장과 수육, 오렌지와 절편이 차려졌다. 일회용 종이 그릇에 담긴 채. 문득 나는 어쩐지 네 아버지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육개장 말고, 잔치국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전에 고인이 그걸…좋아해서…. 그렇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지. 하필 오늘 같은 날에, 하필 음식 이름이 잔치국수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건 어쩐지 우리만 아는 비밀 같아서.
그래도 나는 육개장에 만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밀어 넣었지만 한 입도 삼키지 못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그까짓 잔치국수가 생각나다니. 캐비아도 스테이크도 참치회도 아니고 그깟 잔치국수라니. 그게 미안해서 펑펑 울다가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추운 겨울이었고, 도시 외곽, 가로등이 몇 개 겨우 켜진 화장장 앞 거리가 조용하게 밝았다. 나는 빨개진 코로 훌쩍이며 그 거리를 걷다가 조용히 알았다. 나는 평생 그걸 먹지 못하겠구나. 아파서 못 먹겠구나. 아, 세상에는 아파서 못 먹는 음식이라는 게 있구나.
겨울이 돌아와서 다시금 네게 편지를 쓴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K에게
너와 먹던 잔치국수를 생각하다
문득 오렌지 향을 맡은 날에.
글쓴이 : 조수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