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우동집이 있다. 1986년에 문을 연 작은 우동집. 낡은 간판 위에는 ‘동경우동’이라는 글자가 아직 선명하다. 2호선을 타고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옆에 보이는 그곳은 어릴 적 내게 처음으로 겨울의 맛을 알려준 곳이다.
처음 아빠 손을 잡고 그 가게를 찾았을 때, 아마도 우동이 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40년 세월이 흘러 5,000원이 되었지만, 이제는 이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도 흔치 않아여전한 가성비 식당이다.
좁지만 아늑한 테이블에 앉아 오뎅우동을 주문하자 주인아주머니는 깍두기와 피클, 단무지를 내어주셨다. 그리고 곧 주문한 우동이 나왔다. 아주 뜨겁고 진한, 각종 비법 재료가 들어간, 아마도 생선과 가쓰오부시, 다시마가 들어갔을 묵직하고 깊은 맛이었다. 난 아직도 이보다 맛있는 우동을 먹어본 적이 없다. 면은 부드럽게 풀리면서도 탱글탱글하니 힘이 있었고, 국물 속에는 무르게 익어 말캉하고 달큰한 무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그 무를 제일 좋아했다. 아빠는 그걸 보며 “넌 꼭 무만 골라 먹더라.” 하고 웃으셨다.
그 시절 아빠는 우동집과 몇 걸음 떨어진 세무사 사무실에 근무하셨다. 퇴근길이면 엄마를 불러 나를 데리고 종종 그곳으로 향했다. 겨울의 찬 바람을 뚫고 가게 문을 열면 김 서린 유리창 안쪽으로 따뜻한 세상이 펼쳐졌다.
작은 주방에서는 육수 끓는 소리가 뽀글뽀글 들리고, 가게 안엔 진한 우동 국물 냄새와 모락모락 피어나는면을 삶는 하얀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아빠는 우동 국물을 한 모금 마실 때면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 커서 이해하게 되었는데, 뜨거운 우동 한 그릇이 아빠의 고된 하루를 다독여 주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손이 시리게 추운 겨울날이면, 고달픈 하루 끝에는 뜨거운 우동 한 그릇을 먹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 겨울,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 추웠던 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아이들이 면을 후루룩 삼키며 “뜨거워!” 하고 웃을 때, 그 웃음 속에 어린 시절의 내가 겹쳐졌다. 내가 아빠와 함께 갔던 곳을 아이들과 다시 찾은 것도, 아이들이 너무 맛있다며 엄지척을 하는 것도 뭔가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젊고 건강하던 그때의 아빠가 나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수년 전, 아빠는 치매가 발병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신 지 오래다. 지금 아빠는 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겨울날 함께 먹었던 그 뜨거운 우동의 맛은 잊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한다. 몸으로 기억하는 따뜻한 국물의 온도, 겨울 저녁의 공기, 그리고 작은 가게 안의 소박한 웃음들. 그 모든 게 아직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동경우동의 우동은 특별히 화려하지 않다. 그저 꾸밈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늘 같은 맛으로 한결같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한 그릇에는 계절이 담기고, 시간이 스며 있고, 누군가의 추억이 끓어오른다. 한 입 떠먹을 때마다 그 시절의 온도, 그 얼굴, 그 공기의 냄새가 되살아난다. 맛이란 이 모든 것의 총합인 것이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그 맛이 그립다. 이 도시의 오래된 골목과 함께, 그 우동집이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란다. 세월이 변해도 변치 않는 단 한 가지, 그 따뜻한 국물의 기억 덕분에 나는 추운 겨울을 기다린다.
글쓴이 : 채정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