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칼국수. 잔칫상에 오르지도 않고, 고급 식당에서 다루는 음식도 아니다. 혀를 사로잡는 기교도 없이 그저 투박하고 평범한 음식일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손칼국수는 참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다. 과거 아내가 즐겨 해주던 음식이 손칼국수였기 때문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지금, 손칼국수와 마주할 때면 나는 시시때때로 추억 속에 빠져들곤 한다.
아내는 어린 나이에 내게 시집와 무던히도 고생을 했다. 일 때문에 한 달 중 절반 이상 집을 비웠던 나를 대신해 시부모와 시동생을 보살피며 자식들까지 묵묵히 키워냈다. 대가족을 이끌면서 눈물 한번 토해내고 싶은 날이 왜 없었을까. 주름살이 깊어지고 한숨이 밀려와도 아내는 불평 한 번,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든든한 남편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의욕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감정 표현에도 서툴러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도리어 매번 나를 위로하고 힘이 돼주었던 건 아내였다. 아내는 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내 고단한 삶을 굳건하게 떠받쳐주었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려울 만큼 곤궁한 형편이었지만, 아내는 이른 새벽마다 분주하게 잠을 털어내며 얼마 안 되는 생활비로 그 많은 식구들을 다 거두고 보듬었다. 그런 아내가 가족들을 위해 주로 만들었던 것은 손칼국수였다.
“칼국수는 손이 많이 가도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도 얼마 안 드니까 이만한 음식이 없어! 무엇보다 추운 날 속이 따끈해지잖아!”
아내의 말 속에는 오로지 가족의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고자 했던 올곧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와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 아내는 뜨끈한 손칼국수를 준비했다. 늘 산더미처럼 쌓인 밀가루를 치대고, 방망이로 밀고, 땀을 닦아가며 면을 척척 썰었다. 가마솥에서 칼국수가 끓기 시작하면 온 가족이 구들방에 모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놓았다.
아내가 솥에서 펄펄 끓여낸 손칼국수는 온 가족의 배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푸짐했다. 우리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순도순 국수를 먹을 때의 따스함과 포만감은 어떤 진수성찬도 흉내 낼 수가 없었다.
화려한 고명이나 비싼 해산물은 들어있지 않았지만 멸치 육수의 깊은 맛과 투박하게 썰린 감자와 호박은 거친 면발과 어우러져 세상 어떤 고급 요리보다도 깊은 맛을 자아냈다. 손칼국수를 먹는 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시원하다고 외치는 부모님의 감탄사가 연신 끊이질 않았다.
손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뱃속이 든든하고 마음속까지 따뜻했던 건, 밀가루와 육수가 특별한 맛을 낸 것이 아니라 칼국수에 아내의 땀과 희생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집에 여럿이 모여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섭섭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더러는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이 서고 서운한 감정들은 칼국수를 먹는 동안 함께 웃고 떠들다 보면 이내 사라져버렸다.
아내는 종종 나를 위해 따로 막걸리를 챙겨주었다. 추운 겨울날 손칼국수의 따끈한 국물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잔 기울이면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아내의 손칼국수는 바깥일로 몸과 마음이 지친 나에게 아내가 건네는 무언의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손칼국수 하나면 온 가족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행복은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우리의 밥상 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던 나날이었다.
이후 자식들은 대학에 진학하며 집을 떠났다. 아내는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식들이 집에 돌아올 때마다 예전처럼 손칼국수를 끓여주었다. 손으로 직접 밀가루를 치대야 맛있다며 시중에서 파는 칼국수 면을 사지 않고 늘 직접 칼국수 면을 만들어 끓였다.
아내는 칼국수가 보글보글 끓는 사이 자식들이 풀어놓는 일상 얘기 듣는 걸 유독 좋아했다. 손칼국수가 만들어낸 식사 자리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단절되었던 우리 가족들의 시간을 다시 하나로 이어주었다. 대도시의 화려한 음식에 익숙해진 자식들도 아내의 투박한 손칼국수만큼은 항상 맛있게 잘 먹었다. 자식들에게 손칼국수는 그리운 엄마의 맛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몇 년 전, 은퇴를 하면 같이 손칼국수 전문점을 하나 차리자고 농담 삼아 얘기하던 아내가 홀연히 내 곁을 떠났다. 젊어서부터 수많은 식구들을 건사하며 사느라 정작 자신의 몸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까닭이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해서 후회되고 미안했다.
얼마 전에는 아내의 기일이었다. 자식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어쩐지 아내가 우리를 반기며 손칼국수를 끓이고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했다. 실제 어딘가에서 감칠맛 가득한 손칼국수 냄새가 풍겨오는 듯도 했다.
손칼국수는 아내의 사랑이었다. 가족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칼국수를 살뜰히 끓여내던 아내의 뒷모습이 떠올라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내가 손칼국수를 푸짐하게 내어주며 살포시 웃어줄 것만 같아 가슴도 저렸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있어 따뜻했고, 손칼국수가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아내에게서 나던 밀가루 냄새는 우리 가족을 사랑으로 이끌던 치열한 삶의 냄새였고, 아내가 만들어낸 손칼국수는 우리 가족을 한데 묶어주던 연결고리였다.
글쓴이 : 정승권

